[사이언스프리즘] 잎 위의 작은 반점은 식탁까지 이어집니다
2026.07.01 22:46
여름철 농작물에 ‘조용한 습격’
기후변화 시대 갈수록 예측불허
농업 생산 흔드는 위험 요소로
여름이 가까워지면 농촌의 풍경은 빠르게 바뀐다. 논과 밭의 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기온은 올라가며, 장마를 앞둔 공기는 무거워진다. 이 시기 농민들이 가장 예민하게 살피는 것은 날씨만이 아니다. 잎의 색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작은 반점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벌레가 보이기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매일 확인한다. 병충해는 이렇게 아주 작은 변화로 먼저 다가온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병충해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농작물에 벌레가 생겼거나, 병이 퍼졌다는 소식은 농업 뉴스의 한 장면으로 지나가기 쉽다. 그러나 병충해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병충해가 확산되면 작물의 수확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지며, 방제 비용이 늘어난다. 그 결과는 결국 시장의 가격과 식탁의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채소와 과일, 학교 급식과 식당의 식재료 가격 뒤에도 농업 현장에서 벌어진 작은 생물학적 재난이 숨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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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
기온은 병충해의 속도를 바꾼다. 온도가 낮으면 병원균과 해충의 활동은 느려지고, 일정한 범위에 들어오면 번식과 확산이 빨라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더울수록 위험한 것도 아니다. 생명체마다 활동하기 좋은 온도 범위가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오히려 생장이 제한된다. 문제는 작물이 자라는 계절과 병해충이 좋아하는 온도 조건이 점점 더 자주 겹칠 수 있다는 점이다.
습도와 물은 병충해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많은 병원균은 건조한 조건보다 습한 조건에서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쉽게 퍼진다. 잎 표면에 물기가 오래 남아 있거나, 공기가 눅눅하고, 토양에 수분이 충분하면 감염과 확산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그래서 비가 온 뒤 작물이 젖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병해의 가능성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오랫동안 건조했던 밭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작물 주변의 환경은 짧은 시간에 크게 바뀐다. 병충해는 비가 왔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비가 작물 주변의 온도와 수분 조건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반응한다.
그래서 병충해의 중요한 단서는 피해가 눈에 보이기 전의 시간에 있다. 잎에 반점이 생기고 벌레가 눈에 띄는 순간은 사람이 문제를 알아차리는 시점이다. 그러나 병원균과 해충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앞서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온도와 수분이 맞고, 비가 지표와 토양 환경을 바꾸며, 작물이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병충해는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갑작스럽게 보이는 피해도, 생물과 환경의 시간표 속에서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결과일 수 있다.
물론 농업 현장은 단순하지 않다. 같은 지역에서도 작물의 종류, 품종, 재배 방식, 방제 이력, 주변 식생, 배수 조건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병원균과 해충의 생태도 모두 같지 않다. 따라서 하나의 지표가 모든 병충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시기에, 어떤 지역에서, 어떤 환경 조건이 위험을 키우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대응의 방식은 달라진다. 예측은 더 빨라질 수 있고, 방제는 더 정확해질 수 있으며, 불필요한 약제 사용과 농가 피해도 함께 줄일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의 재해는 더 이상 태풍이나 홍수, 가뭄처럼 큰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확산, 작은 해충의 번식도 농업 생산을 흔드는 중요한 위험이 된다. 특히 고온, 잦은 강수, 높은 습도, 불안정한 계절 변화가 겹치면 병충해의 발생 양상은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병충해를 단순히 “농작물에 벌레가 생긴 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병충해는 농업 현장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작은 벌레와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변화는 결국 기후가 우리의 식탁에 남기는 흔적이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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