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구마모토 기적, 호남 희망고문
2026.07.01 22:47
속도전 예고에도 물 등 난제 수두룩
용인부터 완성해 신뢰 쌓는 게 우선
빈틈없이 실행하되 불황 대비하길
3년 전 일본은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서 반도체 공장을 착공한 지 22개월 만에 가동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통상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대만 TSMC의 투자를 유치한 후 ‘원스톱’으로 까다로운 행정절차와 규제를 걷어내고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부은 결과다.
2년 이상 걸리던 농지전용 용지가 4개월 만에 공장용지로 변경됐고 환경영향평가, 용수 사용 등 복잡한 인허가도 단박에 해결됐다. 자국 기업도 아닌데도 건설비의 절반 수준인 4조원의 보조금이 지급됐고 대만 인재를 위한 국제학교와 전용 은행 창구까지 생겨났다. 수년 전까지 채소밭이 무성했던 이곳은 ‘실리콘 아일랜드’라 불리며 첨단산업 메카로 변신했다. 구마모토 기적은 1980년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 부활을 알리는 상징으로도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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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춘렬 논설위원 |
호남은 딴판이다. 광주를 포함한 영산강 유역은 용수자립도가 20%대에 그치고 수질도 주요 5대 강 중 최하위다. 간헐적인 재생에너지로는 반도체 가동이 어렵고 소부장 생태계도 황무지나 다름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 “서남권에 400조원을 투자하겠다”면서도 ‘많은 인센티브’와 ‘제반 요건 충족’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공을 정부에 넘긴 셈이다.
입지여건이 나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순탄치 않다. 공장 가동에는 최신 원전 10기 이상에 해당하는 15기가와트(GW) 전력이 필요한데 발전소 건설이나 송배전망 구축은 오리무중이다. SK하이닉스가 지자체 갈등과 토지보상, 물·전기 분쟁 탓에 첫 삽을 뜨기까지 6년이나 걸렸다. 오죽하면 기업들이 대통령 앞에서 “원스톱 행정지원이 절실하다”(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8월 시행되는 반도체 특별법 혜택에 용인 산단이 빠져 있다”(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고 하소연했을까.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연구개발(R&D)인력만이라도 주52시간 족쇄를 풀어달라는 읍소조차 모른 척했다. 이런데도 용인국가산단(삼성)과 일반산단(SK) 공장 완공 시기를 7년, 12년 앞당기겠다고 하니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 말 2047년까지 700조원을 들여 반도체 생산 팹(공장) 10기를 신설해 세계 최대·최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 구상에는 광주 패키징(후공정)과 부산 전력반도체, 구미 반도체 소재·부품을 잇는 남부권 반도체 벨트를 구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6개월 사이 호남권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는 ‘제2의 생산기지’로 돌변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용인산단계획에는 호남권의 태양광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로 전력부족분을 채운다는 대책이 담겨있다. 그러고도 호남 반도체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는지 용인·호남 병행 투자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사이클 산업이다. 지금처럼 반도체 가격이 마냥 오를 리 만무하다. 국제금융가에서 AI발 거품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는다. 정치논리나 관치경제에 기댄 투자는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국가 경제와 지역사회를 망가뜨리는 재앙의 불씨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발등의 불은 용인에 건설 중인 SK의 메모리 팹 4기와 삼성의 파운드리 팹 6기를 완성, 조기에 가동하는 일이다. 호남 반도체는 대내외 여건과 비용·편익 등을 꼼꼼히 따져 긴 호흡으로 정교한 실행대책을 빈틈없이 짜야 한다. 예기치 않은 불황에도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대체불가 K반도체 강국’이 희망고문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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