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전
[단독] “내 일은 내가 정한다”… 돌봄 넘어 ‘삶의 주도권’ 회복 [심층기획-죽어야 끝나는 돌봄]
2026.07.01 20:02
캠핑장 개조해 숙소·넓은 텃밭 보유
자연 속 자유 만끽하니 행동 좋아져
주민과 함께 농사 짓고 수익도 올려
교사 40명에 성인 장애인 16명 살아
부모 8명이 교사로 활동 폐쇄성 극복
지난달 충북 제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20여분 달렸을까. 시랑산 초입 푸른 녹음 사이로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의 자립공동홈, ‘희망그린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매미와 새소리 사이로 정체 모를 커다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도시였다면 당장 거센 민원이 빗발쳤을 법한 괴성이지만 드넓은 숲 속에서는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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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그린마을 본관 전경. |
◆제천 시골에 자리 잡은 자립 공동체
공용공간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동료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청년은 ‘시한부 아버지’ 전경철씨의 피터팬 아들 제원(27)씨였다. 키 180㎝, 몸무게 93㎏의 거구인 데다 심한 도전행동(자해·타해 등) 탓에 여러 시설로부터 거부당했던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정이 밝아진 모습이었다.<세계일보 3월3일자 24면 참조> 마을 관계자는 “제원이가 매번 제약과 통제 속에서만 살다가, 공기 좋은 자연에서 자유를 만끽하니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숙소동 아래 위치한 비닐하우스와 텃밭은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꾸려졌다. 이른바 ‘실수해도 괜찮은 농사’가 진행형이다. 장애인들은 주민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자립을 배우고,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마을 운영비를 충당한다. 그동안 ‘소비적 복지’나 ‘부모의 희생’으로만 여겨진 돌봄이, 농촌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상생의 선순환 구조’로 재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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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대진 희망그린마을 대표가 사무실에서 마을의 철학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마을을 일군 방대진 대표는 지난 30년간 발달장애인 돌봄을 연구한 현장 전문가다. 20여년 전 제천에 내려와 이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가 말하는 자립이란 “내가 살 곳을 스스로 선택하고, 나의 일과를 내가 결정하며, 공동체의 주체로 존중받는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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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그린마을 주민이 된 전경철씨의 아들 제원(가운데)씨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다. |
방 대표는 “아프리카 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느냐”며 “희망그린마을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을 돌봄의 대상이라기보다 ‘마을 아이’로, 선생님들은 ‘마을 어른’으로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것”이라고 마을을 소개했다.
그의 철학은 교사들의 구성에서도 묻어난다. 미술 활동을 돕고 있던 이승연(60)씨 역시 30대 최중증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이자 이곳의 ‘선생님’이다.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그는 아들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뒤 20여년 만에 사회복지사로 새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씨는 “제 나이에 아이를 돌보면서도 보람 있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희망그린마을의 선생님 40명 중 8명은 이씨처럼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부모다. 발달장애자녀의 부모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기존 시설들의 고질적 문제인 ‘폐쇄성’을 자연스럽게 극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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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대진 대표와 생활지원사, 발달장애인 2명이 아파트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아파트에는 발달장애인 4명과 생활지원사가 함께 거주하며 편의점이 도보 3분 거리에 있다. |
방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부모들이 ‘도덕적 죄책감’ 없이 발달장애 자녀를 독립시킬 수 있는 세상이다. 선행조건은 마을을 이끌 다수의 리더 양성이다. 방 대표는 “운영자들에게 임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긍지’를 줄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다”며 “국가에서 ‘복지 리더’ 양성을 위한 매뉴얼과 학위를 만들어 국비 지원하고 전문성을 부여하는 식으로 의지를 가진 인재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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