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업소” “순조 왕비 순원왕후”…무너진 언어, 사라진 창극 ‘효명’ [고승희의 리와인드]
2026.07.01 00:12
파편화된 서사·무너진 언어·배우 지운 연출
창극 전성기, 국립창극단이 다시 묻는 질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4m 돌산처럼 올라야 하는 상승형 무대. 그 꼭대기에 이 땅의 ‘존엄’을 상징하는 왕세자, 그보다 더 높은 권세를 지닌 세도가가 선다. 마치 신의 꾸짖음이라도 되는 듯 왕권을 집어삼킨 제상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춤을 왜 추는가. 천한 기생이나 추는 춤을 왜 추는가.”
문화 군주를 꿈꾼 효명의 답은 힘이 없다. “좋으니까.”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이며, 한국전쟁 중 어진이 반쯤 타버려 얼굴의 생김새도 남지 않은 왕세자. 정조를 닮아 이마가 반듯하고 ‘용의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3년간 대리청정을 했던 실질적 국왕이다. 조선의 젊은 왕세자 효명(1809~1830)의 이야기가 창극으로 태어났다.
국립창극단의 ‘효명’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 창극은 지난 10여년간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에 머물지 않고 셰익스피어와 브레히트, 그리스·로마 비극부터 웹툰까지 끌어들이며 장르의 외연을 넓혔다.
지난 3년 사이 실험은 더 적극적이었다. 무속을 품은 창극(‘만신 : 페이퍼 샤먼’), 연희와 만난 창극(‘이날치’)을 통해 융복합을 시도한 것이다. 세 번째 타자는 ‘효명’이었다. 이번 창극에서 담은 것은 궁중 정재였다. 전통예술을 동시대 언어로 번역해 보여주는 시도는 국립창극단의 책무이기도 하다.
효명세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무대는 지금껏 없었다. 선택은 탁월했다.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를 꿈꾸며 예악으로 왕권을 회복하려 했던 정치가 효명은 K-컬처 시대에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효명’은 그러나 창극도, 무대극도, 궁중정재도 완성하지 못했다. 빈약한 서사와 산만한 연출은 효명이 꿈꾼 예악정치를 하나의 언어로 끝내 통합하지 못했다. 작품은 효명을 정치가보다 예술가로 소비하며 그의 핵심인 예악정치를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장르간 융합은 있었지만, 중심은 사라졌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끝내 창극은 보이지 않았다.
‘효명’인데 효명이 없다...취미 생활자로 전락한 개혁 군주
19살의 효명의 어깨에 ‘조선이 국운’이 달려있었다. 세도정치가 창궐하던 시대, 순조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의 마음으로 효명에게 대리청정을 맡긴다. 국립창극단 ‘효명’은 바로 그 시기의 이야기다. 쇠락하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3년의 대리청정을 하다 세상을 떠난 ‘문화 군주’ 효명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었다.
무대는 ‘춤을 사랑한 왕세자’로 알려진 효명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했다. 알맹이가 빠진 대화가 오가고, 경사형 무대를 메운 앙상블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춤을 추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웠고, 마지막까지 작품의 핵심이었어야 할 예악 정치의 당위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지 못했다. 첫 장면이었을지라도 ‘춤을 왜 추는가’로 시작하는 문답에 물음표가 생긴 것은 여기에서부터 효명의 본질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효명세자는 ‘춤과 예술을 사랑한 왕세자’로 기록되나, 이는 결과로서의 역사일 뿐 배경에 대한 온전한 설명은 아니다.
창극이 지워낸 역사에선 효명세자가 꿈꾸던 예악 정치의 진짜 모습이 담겨있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장악원에 호통을 치며 ‘예악 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세도정치로 추락한 왕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궁중정재를 ‘정치의 언어’로 삼은 개혁가였다. 춤은 왕세자의 ‘취미 활동’이 아닌 통치의 수단이었고, 연경당은 공연장이 아닌 정치 무대였으며, 예악은 미학적 요소가 아닌 질서 회복을 위한 국가 운영 철학이었다. 그러니 효명을 이해하는 것은 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이해하는 일이다.
실제로 조선은 유교국가로 대대로 예악으로 나라를 다스려왔다. 조선의 궁중 연회는 단순한 예와 악이 아니라 왕 중심의 지배 질서와 위상을 높이는 정치적 의식이었다. 연회를 통해 대신들은 왕에게 머리를 조아려 충성 서약을 맺고, 만수무강을 비는 치사를 낭독한다. 연회는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내세우고, 군신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효명은 1부 중반에 다다라서야 “예악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작품은 ‘예악 정치’의 의미와 효명의 의도를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들의 대사를 통해 뜻풀이하듯 “예는 예의와 질서, 악은 노래”라고 언급할 뿐, 왕세자의 ‘정치철학’은 생략한다.
효명은 할아버지인 정조가 화성원행 잔치에 친위부대를 동원한 것처럼 순조의 사순 잔치를 자신의 친위부대가 준비하도록 했다. 연회를 통해 군권을 장악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내적으론 왕권을 바로 세우고, 외적으로는 단합된 조선의 모습을 외세에 보여주는 ‘예악 정치’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자, 효명은 그저 ‘춤을 사랑한 왕세자’에 머물러 작품의 메시지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대본의 구조적 파탄…인과관계 실종된 에피소드의 무덤
‘효명’은 창극은 물론 그 어떤 ‘극(劇)’ 작품과도 다르다.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의 서사 없이 에피소드를 병렬로 나열한다. 이 작품을 가로지르는 서사는 세도정치에 무너진 왕권을 바로 세우는 효명의 예악 정치여야 했다. 하지만 작품은 중심을 떠받치는 중심 서사가 실종되니 장면만 열거한 형국이 됐다. 플롯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옆으로만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에피소드는 필요성조차 입증하지 못했다.
대본은 파편화의 연속이었다. 효명의 대리청정 시기는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외척 세력과 팽팽한 정치적 암투와 왕실의 생존 투쟁이 교차하는 서사적 보고였다. 그러나 대본은 긴박한 정치 현실과 세자의 적고뇌를 유기적으로 엮어내지 못했다. 극은 전체를 관통하는 갈등의 인과관계 없이 효명의 정재 창작 에피소드, 묘묘의 궁궐 잠입, 순조의 병약함, 입시 브로커, 기생들 등을 단편적인 조각으로 기워 붙였다.
1막 초반부 입시 브로커와의 장면은 ‘공평한 인재 등용’을 꿈꾸며 한 해 동안 무려 50차례나 과거 시험을 본 효명의 철학을 보여줘야 할 장면이어야 했다. 창작진은 그러나 꽤나 길게 이 장면을 만들면서도 효명이 추구한 세계와의 연결 고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불필요한 입시 코미디로 작품의 초반 10여분을 할애한 것이다.
대본이 개연성을 갖지 못하니 배우들의 대사는 허망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극적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텍스트적 토대를 상실했고, 인물들의 대사와 감정선은 맥락 없이 튀어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조선 후기 ‘정치적 상황’은 장황한 설명으로 대체했다. 인물을 세우는 극적 언어가 아닌 역사 유튜브의 해설보다 못한 지루한 설명들이었다.
게다가 주인공 효명은 “예악정치를 하겠다”, “과거제도를 바꾸겠다”, “인재를 공평하게 등용해야 한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 그에게서 고민의 이유와 개혁의 배경을 제시하지 않았다. 메아리처럼 효명 귀에 “역적의 피가 흐른다”는 대사만 맴돌았을 뿐이다. 그러니 관객은 효명의 고민과 진심을 경험할 수 없었다. 예악정치를 하려는 효명이 그것을 통해 허물어지는 조선을 바로세우기 위한 강인한 군주의 모습이 아닌 “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적 교류”라는 감상에 빠진 예술가형 왕세자만 남겨졌다.
격조 잃은 무대 언어…해학 가장한 속어·왜곡된 젠더 감수성
“세자 저하 숨결도 느껴보고 싶고, 체취도 느껴보고 싶고…”
이 창극은 놀랍도록 대사가 많다. 방대한 대사를 다양한 인물들이 소화하나, 그것은 각 인물의 캐릭터를 만들고 사건을 추동하기 보다 따로 놀았다. 서사의 전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추임새 같은 열거였다.
역사극이라도 얼마든지 현대적 치환은 가능하다. 문제는 이 작품에서의 현대식 드립과 티키타카는 엄숙주의를 비웃는 세련된 해학이나 재해석이 아니라, 극의 역사적 중량감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장르적 품격을 스스로 갉아먹는다는 데에 있다.
권력 찬탈의 냉혹한 음모와 살수의 위협이 도사리는 엄숙한 궁궐 내부에서, 기생들은 살수 묘묘를 향해 “새로운 세계관 등장이요”, “한 나라의 왕자에게 대답 생략해 버리는 신박한 세계관”이라는 같은 속어나 예능식 유행어를 남발한다. 맥락이나 인물 간의 관계 설정에도 맞지 않은 대사들은 도리어 극적 몰입을 방해했다.
대사 한 줄 한 줄에선 언어의 품격과 역사성도 무너졌다. 작품엔 시대적 질감과 예술적 깊이를 완전히 결여한 대사가 모든 장면에서 등장한다. 세도정치 시기 노론을 노랭이로 부르고,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라며 살아있는 국왕을 묘호로, 왕비를 시호로 부르는 오류까지 범한다.
이 대사는 단순한 호칭의 오류가 아니다. 역사극에서 언어는 세계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효명’은 현재의 역사 용어와 극중 인물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군주를 사후의 묘호인 ‘순조’로, 왕비를 ‘순원왕후’라는 시호로 지칭하는 대사(‘순조의 왕비 순원왕후’)가 나오는 순간, 관객은 조선이 아닌 오늘날의 역사 해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언어 감각의 균열은 고증 오류를 넘어선다. 이 작품이 역사 속 인물의 시선으로 세계를 구축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시선과 설명을 무대 위에 옮겨놓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극중 기생신은 이 작품의 큰 패착 중 하나다. 효명은 궁중 연회를 열며 전국에서 85명의 기녀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조선 전기만 해도 장악원에 기녀들이 상주했으나, 인조 이후엔 모두 사라져 궁중연회가 있을 때 기녀들이 두 달간 머무르며 연회를 위한 춤과 노래를 익혔다.
극본에선 곳곳에서 너무도 얄팍한 젠더 감수성을 드러냈다. 기녀라는 언어 자체로 노골적인 신분 차별을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이들의 대사와 에피소드를 저급하고 민망한 회화화로 처리했다. 장악원 무용수들은 기생들에게 “여기 장악원이 너네들 업소냐고?”라고 말하는 대목은 충격에 가깝다. 여기에서 애초 첫 장면에서 “천한 기생들이나 추는 춤을 왜 추느냐”는 대신의 목소리에서 듣게 된 편견과 혐오적 시각이 다시 반복된다.
심지어 여령들은 “세자 저하 숨결도 느껴보고 싶고”, “체취도 느껴보고 싶고”라며 왕세자를 유사 연애하는 아이돌팬처럼 소비한다. 이 신을 엄숙한 극을 깨는 웃음 장치이자 이후 이들이 효명의 춤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고 변명할 지라도 이미 대사는 발화한 순간부터 자기의 기능을 잃었다. 궁중정재를 함께 만들고 효명의 예악정치를 함께 구현할 동료이자 예술가여야 할 여령들은 세자를 흠모하며 ‘기생’이라는 존재의 편견만 드러낼 뿐이었다. 이 대사는 결국 효명이라는 인물의 무게마저 깎아내린다.
기녀들이 인생사를 언급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 설정을 서사적 필요보다 유머로 소비하는 태도 역시 작품의 언어 감각을 흐린다. 심지어 소수자 역할의 기생은 장악원 무용수들한테 “니네 나 올라타도 돼”라는 대사까지 넣었다. 이러한 대사 역시 기생과 성소수자를 동시에 회화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효명의 ‘예악 정치’가 설득하는 존재로 그려져야 할 살수 ‘묘묘’를 두고 오가는 대사 역시 의미를 갖지 못했다. 묘묘의 작명은 놀랍도록 안일하다. 효명은 “사람을 부를 때 ‘어이’라고 해서 ‘어이’로 불렸다”는 그에게 ‘묘하고 묘하다’는 뜻의 ‘묘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탄생하는 과정이었으나, 특별한 상징도 관계성도 반영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묘묘를 향해 기생들은 “이름까지 지어주신다”, “세자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는 식의 농담을 반복하는 장면 역시 인물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린다.
묘묘는 효명에게 예악정치의 기반 마련을 위한 궁중 정재를 만들어갈 인물로 등장했음에도, 효명은 묘묘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피력하지 못했다. 살수와의 춤은 “살기가 느껴져 좋다”는 대사는 효명이 꿈꾸는 세계를 관객조차 설득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였다.
‘소리’ 없는 창극의 역설…본질을 집어삼킨 시도
이 작품의 근본적 실패는 ‘창극’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창극이란 무엇일까’. 국립창극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늘의 창극’을 고민하며 숱한 도전을 해왔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넘어 소재를 확장했고,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었다. 김성녀 예술감독 시절부터 과감하게 이온 혁신을 시작으로 창극은 자가 혁신을 거듭하며 2020년대 이후 객석 점유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창극 붐’을 몰고 왔다.
그때마다 중심을 잡은 것은 ‘소리’였다. 다소 조악하고 엉성한 작품들이 나올 때마저 이음새를 다잡고 완성도를 높인 것 역시 국립창극단 단원들의 절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효명’은 소리 없는 창극이었다. 압도적인 대사량에 파묻힌 무대에서 주인공 효명세자와 묘묘의 소리는 1막의 절반 이상이 흘러갈 때까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창극의 자기부정’에 가까웠다.
작품 전체로 보면 묘묘의 주변 인물이었던 ‘빡세’가 첫 소리의 주인공이었고, 작품 대부분이 설명적 대사와 역사성을 잃은 표현, 농담 따먹기 식의 대사로 채워졌다.
소리를 대신하는 자리는 장르 융복합을 지향하듯 대규모 군무와 영상, EDM 사운드였다. 이들은 창극을 도우며 공존하는 장르가 아니라, 창극의 정체성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장르 융합이 아니 장르의 이동이었다.
문제는 주인공이 된 무용 역시 극을 움직이는 언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대에선 끊임없이 군무가 이어졌다. 대형은 변화했고, 공간은 쉼 없이 채워졌다. 그러나 무대가 빽빽해질수록 시선은 분산됐다. ‘효명’의 군무는 인물들을 가리는 시야 방해 요소였다. 게다가 안무와 안무의 소화능력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예술성을 보여주진 못했다.
영상과 무대장치의 활용도 난감했다. 기생들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뒤편 스크린에선 노란 바탕에 효명의 얼굴이 둥둥 뜨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비추고, 춤을 추는 장면에선 궁중의 상징이어야 할 해와 달이 미러볼처럼 반짝였다. 상징과 미적 감각은 배제된 채 효과만 과시했다.
국립창극단의 오늘이 있기까진 수많은 단원들이 수행하듯 쌓아온 소리꾼이자 창극 배우로의 헌신이 있었다. 그 어떤 ‘졸작’도 심폐소생 하는 역량을 갖췄던 단원들은 ‘효명’ 앞에선 맥을 못 췄다. 전체를 꿰뚫는 서사의 실종, 우스꽝스러운 대사의 향연에 소리 공력을 보여줄 기회도, 절절한 연기를 펼쳐낼 장면도 찾지 못했다. 소리꾼들의 무대이면서 정작 뮤지컬 배우인 어린 효명의 소리를 길게 배치한 것도 아이러니였다. 아역 배우의 연기와 노래와 그토록 훌륭했음에도 이 장면조차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작품에서 창극의 본질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국립창극단은 지금의 한국 공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예술 단체 중 하나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실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험은 본질을 지우는 면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창극은 얼마든지 다른 장르를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실험이 끝난 뒤에도 관객이 ‘창극을 봤다’는 확신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장르의 확장이 아닌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남는다. ‘효명’은 궁중정재를 품었지만 소리를 잃었고, 화려한 무대를 얻었지만 배우를 살려내진 못했다. 극 후반부에 이르러 해오름 극장을 가득 메운 묘묘(이소연)의 독창은 국립창극단의 자산은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자, 작품이 이들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낭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효명’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한 번의 실패가 아니라, 오랜 시간 어렵사리 쌓아올린 관객의 신뢰를 흔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이 보여준 눈부신 성취에서 마주한 뼈아픈 참패이자 경고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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