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배고픔 달래주던 식당을 지켜주세요”…지하철역 유일 ‘착한가격업소’ 폐점 위기
2026.07.01 06:00
지난 24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내 구로역 방면 승강장 10-4 앞. 열차에서 쏟아져 나오던 승객들이 승강장 내 식당인 ‘먹거리휴게소’ 앞에 멈춰 섰다. 승객들의 시선이 향한 식당 벽면에는 “소외계층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식당이 철거된다니 충격이다”, “저렴하게 끼니 때우는 곳인데 없어지면 너무 속상할 거 같다” 등의 포스트잇 수십 장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점주 박안상씨(66) 부부는 15년 동안 이곳에서 1만원 한 장으로도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음식을 팔아왔다. 햄치즈 토스트·김밥이 3000원, 우동이 4000원이다. 2023년에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전국 지하철 역사 내 식당 중 유일하게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의 임대계약 만료로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자 단골손님들이 포스트잇으로 폐점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박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11년이다. 과거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구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박씨는 2007년 매장 입찰 과정에서 코레일 측의 행정 과실로 가게를 강제집행 당했다. 이후 인근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박씨에게 코레일은 2011년 3월 연 임대료 550만원에 현 식당 자리 입점을 제안했다.
당시 이곳은 12년간 공실로 방치돼 폐허와 같았고, 영업이익도 나지 않아 철거될 계획이었던 자리였다. 박씨는 “당시 여기서 가게를 하겠다니 환경미화원들도 아연실색했다”며 “10년간은 매일 새벽마다 오물과 토사물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비 4000여만원을 들여 수도와 전기를 직접 깔고, 새벽 4시30분부터 자정까지 연중무휴로 일하며 이 공간을 어엿한 식당으로 일궈냈다.
15년째 자리를 지켜온 매장에는 부부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개업 초기 매출이 3만~4만원에 불과해 절망하던 박씨를 격려하던 만삭의 단골손님은, 어느덧 14살이 된 딸의 손을 잡고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박씨는 “시민들에게 받은 온정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사를 해왔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이 딱한 노인들에겐 국수 한 줌을 몰래 얹어 주고, 몸이 아픈 외국인 노동자에겐 감기약을 쥐여 주기도 했다. 돈을 안 내고 도망치는 손님조차 쫓지 않았다는 박씨는 “세상이 너무 가시같이 뾰족하게 굴면 되겠냐”며 “도망치다 다칠까 봐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코레일과 직접 임대계약을 맺은 덕분에 저렴한 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임대료는 연 1890여만원으로, 입점 당시보다 4배 가까이 올랐음에도 부부는 음식값 인상을 최소화해왔다고 했다. 이런 박씨 부부를 오래 지켜본 손님들의 미담성 민원이 이어지자 행안부는 2023년 12월 먹거리휴게소를 전국 지하철 역사 내 유일한 착한가격업소로 지정했다. 정부가 인정한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해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포’라는 의미다.
식당과 코레일 간 임대계약은 오는 8월30일이면 만료된다. 코레일 측은 더이상 계약연장은 없다는 입장이다. 박씨는 최소 3년만 매장을 더 운영하고 싶다는 입장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코레일은 “2024년 제소 전 화해 절차를 통해 박씨가 오는 8월30일까지 매장을 원상 복구하기로 약속한 상태”라며 “명도 조치 이후에는 해당 공간을 코레일유통으로 이관해 경쟁입찰에 부칠 예정이며, 이 입찰에는 박씨도 참여 가능하다”고 밝혔다.
경쟁입찰을 할 경우 임대료가 높아지기 때문에 지금처럼 저렴한 가격에 식당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박씨는 이 자리가 계속 착한가격업소로 남아 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명맥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그는 “지하철역 안에 이런 착한 식당은 여기 하나뿐인데, 없어지면 끝나는 것”이라며 “이런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을 위한 공간을 본보기로 하나 정도는 남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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