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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유리천장 아래를 버티며 깨부수려면

2026.06.30 06:00

[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왜 여성은 일할수록 불리해질까?』
조앤 C. 윌리엄스 지음, 레이첼 뎀시, 이콘 펴냄
『왜 여성은 일할수록 불리해질까?』조앤 C. 윌리엄스 지음, 레이첼 뎀시, 이콘 펴냄 ⓒ이콘 ⓒEBS 유튜브 캡처


서른 줄 끄트머리, 또래 여성 회사원들의 삶은 팍팍하다. 이직을 준비하는 비혼 여성 A는 면접 때 대부분의 회사들에서 결혼 여부 및 향후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 B는 임신 전에 빨리 이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하다. 여자로서 기혼인 것도 이직에 마이너스 요소인데, 아이까지 있다고 하면 더욱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서다. 유자녀 여성들이 갑작스러운 야근과 아이들의 응급 상황에 대응하느라 쩔쩔매는 것은 디폴트다. 일본에서는 최연소 여성 시장인 가와타 쇼코(35) 교토부 야와타시 시장이 8주간의 출산 휴가 계획을 발표했다가 논쟁에 휩싸였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아직도 여자가 일하며 살기란 이리 어렵다. 채용 자체에서부터 여자라는 이름의 허들이 있다. 취업하고 나서는 승진이나 핵심 보직 등에서 남자들에 비해 자주, 조직적으로 배제된다. 육아휴직을 수월하게 갈 수 있는 직장이란 많지 않을뿐더러, 복직 후 일과 가정 사이 균형을 꾀하기도 쉽지가 않다. 직장과 사회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직도 덜 조명된 한편으로,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존에 관한 글은 많지 않다. 책 『왜 여성은 일할수록 불리해질까?』는 그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쓰여졌다.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헤이스팅스 로스쿨 석좌 교수인 조앤 C. 윌리엄스가 작가이자 변호사인 딸 레이첼 뎀시가 함께 썼다. 조앤은 EBS 다큐멘터리 속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명을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외치는 '짤'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모녀는 '뉴 걸스 네트워크'라 불리는 포천 500대 기업 임원, 사업가, 베스트셀러 작가, 대형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 컨설턴트, 세계 최대 로펌의 변호사 등 여성 리더 127명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여자들에게 작용하는 편견 패턴과 대처법을 정리했다. 더불어 유색인종 여성 과학자 60명의 인터뷰를 통해 젠더와 인종을 교차하는 이중차별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소위 '잘나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 위화감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책에 나오는 사례 대부분은 어느 직장에서건 여성들이 다 겪었을 법한 일이다. 조앤과 레이첼이 밝힌 직장에서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네 가지 행동 패턴은 다음과 같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훨씬 자주 요구받는 능력에의 '증명 요구', 여자라면 무릇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젠더 편견에서 비롯한 '외줄타기', 유자녀 여성들에게 작동하는 이중 구속인 '모성 장벽', 여성들 사이 갈등과 분열을 뜻하는 '힘겨루기'다.

조앤 윌리엄스 교수가 한국의 출생률 0.78이란 숫자를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를 외친 장면은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은 조앤 윌리엄스 교수의 EBS 다큐멘터리 한 장면. ⓒEBS 유튜브 캡처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여자라는 이유로 나에게 작동하는 편견의 실체를 명확히 알되, 그것을 이용도 하고 저항도 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가령 직장인 여성은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이어가며, '남성적인 여성'에 대한 편견인 '적대적 성차별'과 '여성적인 여자'를 향한 편견인 '우호적 성차별'을 동시에 겪는다. 털털한 여자에게는 적대적이고 방어적으로, 천생 여자는 선심 쓰듯 보호하는 태도가 바로 이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남성적인 여자는 사내 구성원으로부터 존중은 받되 호감을 사지는 못하고, 여성적인 여자는 그 반대가 된다. 그러나 호감과 존중 모두 직장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다. 책은 필요하다면 '독한 여자'가 호감을 사기 위해 여성용 정장을 입거나, '천생 여자'가 존중을 받기 위해 허드렛일을 거부하는 것을 모두 권한다. 궁극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 같은 젠더 편견은 해체되어야 할 테지만, 그 이전까지 우리의 행동이 해석되는 방식에 관한 고정관념을 이해하고 이를 역이용하는 것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성을 활용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독한 여자'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이는 '나'라는 여성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영국 가디언지는 일본 가와타 시장의 출산 휴가를 둘러싼 논쟁을 언급하며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서두를 연다. 그러나 같은 소식을 다룬 한국의 기사들에는 임기제 선출직이자 공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정치인은 일반 직장인과 다르다며 출산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는 류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가디언이 말하는 '많은 나라들'에 한국은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서 최대 90일의 휴가 규정을 담은 여성 국회의원 출산휴가법은 2018년 처음 발의된 이래 번번이 입법이 무산됐다. 이 같은 모성 장벽이 지금껏 공고한 것은 한국의 2030 여성들이 대의정치의 영역에서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과도 결부될 것이다.

조앤의 친구는 책의 제목으로 '변화를 기다리며 시궁창을 견디는 법'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어느 나라 못잖은 시궁창에서 분투하는 한국의 여성들 면면을 응원한다. 그리고 시궁창의 물을 갈기 위한 여정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광주 광산소방서에서 들려온 한 여성 청년 소방관의 부고가 더욱 마음을 다잡게 한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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