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역경의 열매] 이재인 (18) 시골학교 부임 첫날 “솔선하며 신앙의 싹 틔우자” 각오
2026.07.01 03:05
“소망 끝에는 승리하는 법” 되새겨
교감 선생님 희망 근무지 묻는 말에
“문교부” 대답하니 “빽 있냐” 되물어
“이 선생, 문교부(현 교육부)에 무슨 배경이 있는가.”
“예, 문교부에도 있고, 또….”
나는 또, 라는 말 뒤에 “하나님과 예수님입니다”라고 말씀드리려 했다. 그런데 내 뒷번호 대기자가 갑작스레 배가 아프다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이 바람에 나는 ‘신앙적 빽’을 나열도 못 한 채 9월 1일 자로 발령을 받았다. 아하, 나의 하나님은 올무로 걸려든 나를 공무원으로 임용시켰다.
부임 첫날, 충북 영동 산골 마을에 있는 학교는 2학급씩 1~3학년 총 6학급이었다. 내가 대도시 고등학교에서 시골 중학교를 선택한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무슨 사고라도 내고 온 기피자 취급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신앙으로 행하면 그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이 싹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진정한 소망 끝에는 승리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 일깨웠다.
부임 3일 차 교감 선생님 지시 하에 환영식이 열렸다. 숙직실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환영식은 조촐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충북에서는 영동의 용문중과 상촌중, 그리고 단양의 가곡중이 벽지 학교로 손꼽히는 오지였다. 그 학교 교원들은 다 도시로 나가기 위해 벽지 점수를 획득하는 대기자들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나와 같은 시기에 부임한 동료 음악 선생님에게 거북한 질문을 했다. 일종의 짓궂은 장난 같은 것이었다. 신입 교원들에게는 마치 선임들의 희롱 같은 의례였던 모양이었다. 오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음악과 김 선생님의 차후 희망지는 어디요.”
“헤에, 기회가 되면 청원군 오창중이요.”
“국어과 이재인 선생님의 희망지는.”
나는 또렷하게, 그리고 힘줘 말했다. “저는 문교부로 가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놀라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뭣이라고”라며 물었다. 교감 선생님은 한풀 조심스러운 어조로 살짝 웃으면서 “이 선생은 무슨 빽이 있는가요”라고 되물었다.
“저는 학벌은 S대학 출신이 아니지만 빽으로 말하면….”
나는 여기에서 말을 줄였다. 대신 늑대별이 총총한 영동의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반딧불이가 어지럽게 우리 주위를 날아다녔다.
“이 선생, 정말 빽이 있어요?”
옆에 앉았던 키가 우람한 체육 선생이 물었다.
“전 S대학은 아니지만 K대학 출신입니다.”
K대학은 경기대를 지칭했지만 저들은 내가 고려대를 나온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때까지 내 인사기록 카드를 본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군사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였고 교원 인사 역시 ‘빽’이 있으면 문교부나 교육위원회가 곧바로 발령을 내버리곤 하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이 어찌 됐든 위에서 그냥 명령하면 그만인, 이른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이것은 슬픈 우리의 역사이자 아픈 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가 슬프고 어리석게 느껴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새로워진 지반 위에 서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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