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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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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호남'의 개벽…소외지역서 제2의 반도체 영토 예고

2026.06.30 19:03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베일 벗은 삼전·SK의 '호남 반도체'…반도체 팹 800조 투자
이재용 "광주 입지 탁월"…최태원 "서남권 클러스터 조성"
숱한 수요 중시 정책의 반복…개발기회 놓쳐 '저발전 상태'


'천지개벽(天地開闢)' 할까. 요즘 호남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말이다. 오랜 기간 수요 중심의 국토 중심 개발 논리에서 비껴나면서 '서자' 취급을 받아왔다. 오죽했으면 소외와 낙후의 대명사인 '비 내리는 호남선'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간의 소외가 전화위복이 된 것인가. 호남이 풍부한 전력과 용수, 값싼 용지를 앞세워 첨단 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상전벽해'를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광주를 새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 SK하이닉스는 서남권을 새 클러스터 입지로 지목하면서 호남이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삼전닉스의 호남 메가프로젝트 구상대로 호남이 '버려진 땅'에서 '아껴둔 땅'의 현장으로 변신할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청와대 통신사진기자단


'아껴둔 땅' 호남…'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 신호탄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국민보고회'를 주재하고, 광주·전남을 한국형 인공지능 생태계의 핵심 거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결정됐다. 전남과 광주 접경 지역에는 반도체 제조 공장(팹)뿐만 아니라 설계(팹리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업체가 대거 집적되는 메가 클러스터 구축이 기대된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광주와 서남권에 800조원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팹(생산공장) 4기(삼성 2기, SK하이닉스 2기)가 들어선다. 호남권에 투자 계획은 총 896조원(반도체 팹 4기 800조원, 패키징 1조원, 데이터센터 87조원, 기타 스마트가전·에너지 등 8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책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전남광주에 '반도체 초격차 생태계'를 이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약속대로 기업투자가 제대로 실현되면 수도권에 쏠린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영토가 광주를 중심축으로 한 비수도권으로 대폭 확장되며 국가 첨단산업 지도가 다시 그려지게 된다.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천지개벽의 신호탄 쏴 올린 삼전-SK

이날 보고회는 산업통상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직접 참석해 구체적인 지방 투자 계획을 공식 선언했다. 

이 회장은 광주를 택한 이유로 인프라 여건을 꼽았다. 그는 "기흥, 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국가산단의 투자 일정이 많이 빨라졌고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며 "여러 지역 중 전력, 용수, 인력 확보 그리고 여러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서남권 투자 규모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서남권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은 부지와 전력, 용수, 인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며 "개발 여건을 충족하는 서남권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에 더해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도 제시했다. 1단계 5GW 규모로 짓되 0.5~1GW 단위로 나눠 여러 지역에 분산하고, SK텔레콤을 중심으로 15GW까지 확장하는 데 100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로써 서남권 메모리 팹 4기 800조원의 투자 주체가 분명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삼전닉스)가 각각 팹 2기에 400조원씩을 투입하는 구조다. 두 기업이 공통적으로 신규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호남을 선택하면서, 경기권과 충청권에 집중됐던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남부권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 첨단 3지구 AI 데이터센터 ⓒ시사저널 정성환


무늬만 균형 발전 '항상 뒷전'…호남 들러리 끝내나?

삼전닉스의 호남권 반도체 투자는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성장'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호남 지역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늘 영남, 강원, 충청 지역에 대한 투자 계획도 발표되겠지만 그중에 한 지역이라고 하면 호남 지역이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오히려 이게 기회 요인이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남과 광주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며 경제적 약점을 노출해 왔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의 불균형은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 부재는 고질적인 지역 소멸 위기를 부추겼다. 

역대 정부에서 국토의 균형발전을 대전제로 내세운 광역개발에서 광주·전남권은 언제나 뒷전 신세를 면치 못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광역개발 사업계획이 뒤늦게 이뤄지거나 지연 끝에 아예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게 일쑤였고, 그때마다 들러리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호남선 복선화와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등 정부 재정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들이 숱하게 예산편성 과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예를 들어 정부에 도로 개설을 요구할 경우 정부는 당시의 교통 수요를 내세워 당연히 수요량이 많은 경인 또는 부산 등 국토의 동남축(東南軸)에 투자해 버리는 식이었다. 이러한 수요 중시 정책이 자꾸 반복되면서 경인·동남·서남의 3축을 균형있게 개발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자가당착을 거듭했으며, 이로 인해 호남은 낙후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물며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자본을 도입해야 하는 광역개발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민간자본의 속성 상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취약해 투자 효율을 높일 수 없는 호남으로선 대규모 민자 유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동안 각종 SOC의 기반 조성에서 소외돼 온 이 지역은 민간 자본이든 정부 예산이든 투자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그때 마다 개발의 기회를 놓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수도권과 영남권이 대기업의 제조업 기지와 IT 인프라를 독식하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동안, 호남은 대기업 거점 부재로 인해 매년 수만 명의 청년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이탈하는 악순환을 겪어야 했다. 인프라 낙후가 생산 저하를 낳고, 이것이 다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소외의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통계청 등에 따른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를 살펴보면 소외의 격차가 극명히 드러난다. 경기도(약 696조원)와 서울(약 648조원) 등 수도권이 대한민국 전체 생산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는 사이, 광주시의 GRDP는 약 59조원 수준에 머무르며 특·광역시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영남권의 대표적 산업 거점인 경남(약 140조원) 등과 비교해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 대통령도 이날 "이 사안(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만 보면 호남지역에 투자가 조금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누적된 투자량을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며 "아픈 과거지만 영호남 차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역 학계와 관가에서는 이 같은 고질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저개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으로 정부가 수요중시 정책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을 손꼽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갖췄다면 경인권과 부산권과 달리 호남권에는 민자 이외의 정부 투자계획을 포함시켜야만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해남 산이면 솔라시도 진입로 ⓒ시사저널 정성환


전력·용수·인력·소부장 등 4대 과제…순항 관건

이에 부응하듯 정부와 청와대는 기업의 파격적인 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전력과 용수 공급 등 핵심 인프라를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토교통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계 부처는 반도체 라인 가동에 필수적인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확충하고 호남권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이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산업 단지 조성을 넘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실질적인 경제적 주춧돌이 될 것으로 평가하는 대목이다.

이날 발표된 '삼전닉스 호남 반도체 투자' 방침은 호남의 개발·잠재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전남은 태양광·풍력 등 전국 1위의 재생에너지 자원 잠재량(1176.8GW)을 바탕으로 전국 1위의 재생에너지 발전량(8.12TWh)을 확보하고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충당)을 달성하는 데도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 됐다. 국가AI컴퓨팅센터를 추진했던 기업이 해남 솔라시도를 택한 것도 이런 지역 여건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도 "호남이 배제와 차별을 통해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용수나 전력, 용지가 잘 관리된 측면이 있다"며 "첨단산업, 그 중에서도 반도체 관련 산업은 전력과 용수, 토지가 가장 중요한 산업인데 수도권에서는 더는 전력과 용수를 구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용인산단과 양립 가능성에…회의적 시각도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삼성전자의 호남 입지로 거론된 광주는 아직 '후보지' 단계다. 이 회장과 최 회장 모두 부지 선정과 인프라 구축이 이제부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관측하고 투자를 집행하겠다"며 단계적 추진 방침을 밝혔다. 본지인 투자 규모보다 부록 격인 구체적 입지 확정과 착공 시점 등 후속조치에 더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나아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의 기치를 내세우며 밀어붙인 초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전력·용수·인력·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등 반도체 산업의 현실적 조건을 충분히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는 상황이다. 양사 모두 전력·용수·인력 확보를 입지의 핵심 조건으로 꼽고 있어서다. 그런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프라 지원 속도와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 사업 추진의 속도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 구상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번 호남 반도체 공장 투자 구상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투자 규모가 곧바로 실현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얘기에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수도권 클러스터도 현재 진행형이고, 반도체 초호황기가 2030년 이후까지 지속될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균형발전 기조에 호응해야 한다는 정부의 유무언 압박에 떠밀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계획부터 일단 약속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호남권에 팹 신설을 추진했다가 업황이 나빠지거나 정권이 바뀌면 기업들이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사업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다만 반도체 시장 환경이 기존처럼 일정 기간을 두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에서 벗어나서 구조적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보는 반론도 팽배하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조기 조성 계획과 광주전남권 대규모 메모리 반도체 팹 구축 계획은 현실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30일 입장문을 통해 "대규모 전력과 용수를 소비하는 용인산단을 유치한 채 호남권에 추가 반도체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에너지 지산지소와 송전망 갈등 해소라는 두 목표를 모두 놓칠 수 있다"며 "호남의 태양광행상풍력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기존 전력망 계획을 유지하면서 추가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는 규모보다 실행의 속도와 추진력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획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성 중인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부터 본 궤도에 올리는 한편 정부는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약속한 반도체 인프라 구축 지원 선행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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