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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진 받은 北대표 "내 쨉니다"…34년만에 드러난 남북 핵협상

2026.06.30 10:01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내 쨉니다. 사진 지금….”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에서 북측 대표였던 최우진 외교부 부부장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사진을 찢으며 분노를 토해낸 1990년대 초 남북 핵 문제 협의 과정이 공개됐다.

30일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32차례의 남북 핵 문제 협상 과정을 담은 문서 3836쪽을 공개했다. 이 문서는 2022년 첫 공개 이후 8번째 공개되는 것이다. 이번 문서는 남북 당사자가 최초로 북한 핵 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이 담겨 있다.


눈길을 끈 대목은 핵 문제 협의 과정에서 ‘특별사찰’을 두고 양측이 격하게 대립하자 훗날 외무장관에도 오른 공로명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이 북측에 김일성 사진을 주며 도발한 모습이다. 공 전 장관은 올해 초 향년 9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 자리에서 공 전 장관은 “외세, 외세 하기 때문에 누가 외세에 의존적이냐, 사대적이냐 하는 사진을 하나 가지고 왔어”라며 1992년 12월 15일자 중앙일보 사진을 북측에 건넸다. 이 사진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모습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사진의 내용도 살펴보지 않은 채 북측 대표였던 최우진 부부장(당시 북측 위원장)은 “공 위원장이 넘겨준 사진, 내 쨉니다. 지금” 하며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진을 찢으려 했고 공 전 장관은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습니까”라며 맞불을 놓았다. 이에 북한 측은 남측이 도발을 하려 계획했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공 전 장관은 “왜 대답을 회피하느냐”며 맞섰다.

이같은 내용은 공 전 장관이 후배 외교관 및 지인들과 냈던 문집 ‘공로명과 나’에도 실려있다. 다만 국가문서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 전 장관은 문집에서 최 부부장이 김일성의 사진을 온전하게 도려내느라 쩔쩔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마지막 회의가 1993년 1월25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렸다. 남측 수석대표인 공로명 외교안보연구원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최우진 외교부 부부장이 마주앉아 대화하고 있다. [공로명 전 장관, 도서출판 월인]
실제 북한에서는 김일성 3대의 사진을 훼손하면 최고존엄 모독으로 정치범 취급을 받는다. 다만 최 부부장은 외무성 내에서 승진을 이어갔고 1997년 김영남 외교부장이 해임된 후 외교부장직을 대행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91~1993년까지의 남북한 비핵화 협상을 담고 있다. 1991년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1992년 이 선언은 발효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대한 이견과 한미 팀 스피릿 합동훈련을 놓고 양측은 이견을 거듭했고,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탈퇴선언을 보류하다 2003년 1월 조약에서 최종 이탈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 대해 “당시 남북 핵 문제를 수십 차례 논의했지만 북한의 비타협 자세와 지연전술 속에 우리 측의 협상력 부재까지 더해지며 성과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번 문서 심의위원을 맡은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당시 북한에 (IAEA의) 성역없는 사찰을 요구했는데 사실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며 “우리 입장을 관철하려면 강력한 레버리지(지렛대)가 필요했지만 이 부분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의심 가는 곳은 다 들여다보겠다는 특별사찰과 불시사찰을 요구한 점이 북한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남북은 격렬한 협상을 이어가며 상대에게 ‘놈’, ‘간첩’이라 비하하기도 했고 공 전 장관이 최우진 부부장을 향해 “최 위원장은 머리가 안까지고 왜 난 머리가 까졌을까”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북측 최 부부장도 “공 위원장은 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빠지고”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핵협상을 두고 양측간 치열했던 공방과 농담이 오갔던 것이다.

34년전 치열했던 분위기와 달리 현재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펼치며 한국과 대화 자체를 차단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대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문서 공개와 관련해 심의위원으로 참석한 박용한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 문제를 주제로 남북뿐만 아니라 북미, 사찰까지 다뤄지며 복잡성을 띄게 된 당시와 지금을 견주면, 언제가 더 어렵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도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남북 정상회담(1994년)이 추진됐듯, 남북관계의 가변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와 함께 공개한 지 3년이 넘은 남북회담 공개문서 중 비공개였던 832쪽을 재심의해 추가로 공개했다. △적십자 파견원 접촉 △적십자 예비회담(1971~1972년) △적십자 본회담(1972~1973년) △적십자 대표회의 및 실무회의(1973~1977년) 시절 수행원 명단과 송고 기사, 쌍방 제안, 합의사항 등이 추가로 공개된 것이다.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통일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호남권 통일플러스(+)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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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5t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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