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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완전 도발하는구나" 김일성 사진 찢은 북한 대표...90년대 북핵협상 막전막후

2026.06.30 10:50

통일부, 33년 전 남북 핵협상 기록 공개
지난 1992년 4월 21일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3차회의 회의장면. 〈사진=통일부〉



협상 조건에 반발하며 인신공격을 하는 북한 대표, 비속어를 쓰며 북측을 면박하는 한국 대표. 1990년대 초반 남북 핵협상 회의록에 담긴 내용입니다. 33년 동안 비공개로 묶여 있던 문서가 오늘(29일) 공개됐습니다.

통일부가 공개한 3836쪽 분량의 자료에는 1991년 12월~1993년 1월까지 진행한 32차례의 남북 핵문제 협상 과정이 담겼습니다. 남북이 마주 앉아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한 최초 사례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는 협상입니다.

북핵 개발의 시계를 늦출 절호의 기회였지만 최종 결렬된 안타까운 역사인데, 북한의 셈법과 우리의 요구는 무엇이었는지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나온 겁니다.

1992년 1월 20일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정원식 국무총리. 〈사진=통일부〉

이번 사료에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양측 초안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은 IAEA 사찰로 검증은 충분하다는 입장이었고, 우리 측은 그보다 훨씬 강한 수준의 사찰을 요구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모든 군사, 민간시설을 아우른 특별 사찰을 요구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남북상호 핵사찰 실시에 관한 규정(안)'에는, 24시간 전 사찰 대상을 선정하면 북측이 12시간 내 호응을 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를 부각하며 맞섰습니다. 북한의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에는 미군과 미국의 핵무기 철수, 핵기지 철폐, 핵우산 제공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미 연합훈련을 마지막 카드로 활용했지만 이 또한 실패한 대목도 등장합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를 잠정 중단했고, 이를 계기로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핵사찰 규정 협상이 교착되자 우리 정부는 “사찰에 응하지 않으면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을 압박했습니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회의석상에서 “팀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는 것은 북남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핵통제공동위원회 합의를 난폭하게 유린하는 행위”라며 훈련 재개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 북측 대표는 “모든 것을 다 뒤집어엎자는 것 아니냐. 공(로명)위원장 자기 정신인지 모르겠다. 음력설 사흘 놀더니 자기 정신 다 나간 것 아니냐”며 우리 측을 향해 원색적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양측은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고,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이후 중단됐던 팀스피리트 훈련도 다시 실시됐습니다.

통일부가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서른 두 차례의 남북간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해당 문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 〈사진=통일부〉

회의록에는 우리 정부의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도 곳곳에 담겼습니다. 1992년 3월 10일, 임동원 당시 통일원 차관이 북측 최우진 대표에 "(영변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놈이", “핵 문제를 논하려면 핵 문제를 알아야지”라며 몰아붙이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다 아는데 왜 모르는 척하냐”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존재와 핵 개발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항의한 겁니다.

최우진 대표가 “임대표, 난 그럼 무식하니까 상대가 안 돼요?”, “가만 있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임명된 대표요”라고 맞받아치면서 격론이 이어졌습니다. 양 측이 책상을 내리치기도 했다는 기록도 확인됐습니다.

결국 “영변을 보자”는 우리 정부와 “미군 핵부터 보자”는 북한의 인식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으로 꼽힙니다.

북측 인사가 김일성의 사진을 찢어버리는 믿기 어려운 장면도 회의록에 담겼습니다. 1992년 12월 14일, 당시 공로명 대표는 특별 사찰 제도를 요구하며 북측을 압박한 대목입니다.

북한이 남측의 '외세 의존'을 비판하자 공 대표는 “누가 외세에 의존적이고 사대적인지 보여주는 사진을 가져왔다”며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가 함께 실린 1992년 12월 15일자 중앙일보 사진을 내밀었습니다.

북측 최우진 대표는 “그런 건 가져가시오”라며 받기를 거부했고, 공 대표가 “아니, 아마 필요할 거요”라며 다시 건네자 결국 사진을 손으로 찢어버렸습니다.

공 대표는 곧바로 “왜, 위대한 지도자 사진을 찢습니까?”라고 따졌고, 북측은 “그쪽에서 도발하려고 계획한 것 아니냐”며 맞받았습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고성과 항의가 오가는 소란으로 번졌습니다.

상대방의 외모를 조롱하는 장면도 확인됐습니다.

1992년 6월 30일 회의에서, 북측 최우진 대표는 탈모가 있는 공 위원장에 "머리카락 없는데, 괜히 모자 안 쓰고 나갔다가 햇볕에 쬐게 되면 건강에 나쁘다"라고 말했습니다.

1992년 4월 1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2차회의에서 양측 대표의 인사교환. 〈사진=통일부〉

반면 협상 대표들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1992년 3월 대표접촉이 시작되자 임동원 대표가 먼저 “악수를 한 번 더 합시다”라고 손을 내밀었고, 북측 최우진 대표는 “악수를 몇 번 하면 통일되겠나. 우리 악수를 몇 번 하면 통일할 수 있겠는가”라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이에 공로명 대표는 “오늘도 이 문제를 해결을 좀 합시다”, 임 대표는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데 말야”라고 받아치며 회담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 5월 23일엔, 사찰 규정을 높고 한 차례 언성을 높인 뒤 상황을 정리하는 장면도 담겼습니다. 북측은 “앞으로는 책상을 두드리지 맙시다. 컵이 날아다닐 수 있어요”라고 말했고, 남측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회의를 운영합시다”라고 응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습니다.

우리측 대표가 북측에 '우황청심원'을 건네며 진정시키는 장면도 담겼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북한 노동신문〉

사료를 분석한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양보 없이 대치한 당시 상황을 현재 시점에서 엄밀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전 본부장은 “당시 북한의 핵 연구, 핵 개발 초기 단계였고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대미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것으로도 보였다”라며 “실현 가능한 카드로 접근하면 초기 단계에서 유연하게 타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덧붙였습니다. 협상 전체가 북한의 기만술이였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지만, 당시 북한이 협상에 응하는 척하면서 물밑에서 핵 개발을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는 평가입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지금 눈여겨볼 부분도 지목했습니다. 정 전 본부장은 ”비핵화 협상을 다시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지만, 다시 협상하게 된다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장치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 문제는 남ㆍ북 뿐 아니라 북ㆍ미간, 국제 사찰문제까지 복합적인 측면이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당시 이런 갈등 뒤에도 김영삼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처럼 남북관계의 다변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통일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 호남권 통일 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문서 공개 목록과 구체적인 열람 절차는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https://dialogue.unikorea.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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