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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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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찢나, 위대한 지도자 사진을”…핵협상 북측대표에 한방 먹인 남측

2026.06.30 12:18

1991년 12월~1993년 1월 남북核협상문서 공개
핵통제공동위서 북측 “외세 끌어들여” 韓美비난
남측 “외세 의존 누구” 김일성·스탈린 사진 건네
北수석대표 최우진, 사진 안 살핀 채 “내 쨉니다”
南수석대표 공로명 “지도자 사진을?” 당황시켜
北, “美 추종” 비난 반복…핵사찰엔 지연작전만
비핵화 공동선언 도출에도 93년 北 NPT탈퇴로
3836쪽 기록…70년대초 적십자회담분도 공개
1991년 12월~1993년 1월 진행된 총 32차례 남북한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남북회담 문서 전체(3836쪽)를 30일 통일부가 공개했다. 이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8번째 공개 사례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년 12월말)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이 담겼다.

1991년 9월 제46차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증폭된 북한 핵 개발 의혹 관련 남북 핵문제 협의 추진 용의를 표명하고 그해 11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을 내놓으면서 남북 간 핵 협의가 성사됐다. 남북은 1991년 12월 26일~31일 총 3회에 걸쳐 ‘핵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을 가진 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도출했다.

이어 1992년 1월 남북 합의에 따라 북측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성명을 냈고, 남측은 한미 연합 ‘팀 스피릿’ 군사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이후 7회 대표접촉을 거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북측이 여러달 남북 ‘상호사찰’ 협의를 지연시켜 평행선을 달렸다. 남측이 팀스피릿 훈련재개를 시사하자 북측은 철회하라며 ‘외세를 끌어들인다’고 비난했다.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핵협상을 기록한 3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를 30일 새로 공개했다. 이번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여덟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12) 과정과 그 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이 대상이다. 사진은 지난 1992년 4월 21일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3차회의 회의장면. [통일부 제공·연합뉴스]


문서에 따르면 핵통제공동위 남측 위원장(수석대표) 공로명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후일 외교부 장관, 올해 93세 타계)은 1992년 12월 공동위 13차 회의에서 ‘외세와 결탁해 남침(1950년 6·25 전쟁)을 저지른 주체’는 북한이라며 “외세, 외세 하기 때문에 ‘누가 외세에 의존적이냐, 사대적이냐’ 하는 사진을 하나 가지고 왔어”라며 1992년 12월 15일자 중앙일보 사진을 건넸다.

해당 사진은 6·25 남침을 공모한 북한 김일성 주석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서기장 겸 주석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공동위 북측 수석대표였던 최우진 당시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남측에서 건넨 참고자료를 살피지도 않은 채 “공 위원장이 넘겨준 사진, 내 쨉니다. 지금” 하고 “그런 건 가져가라”며 김일성·스탈린 사진을 찢으며 응수했다.

공로명 전 장관은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습니까”라고 일침을 놨다. 최우진을 비롯한 북측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완전한 도발”이라며 계획된 도발행위라고 핏대를 세웠다. 공 전 장관은 “왜 대답을 회피하느냐”고 꼬집었다. 공 전 장관이 후배 외교관, 지인들과 낸 문집 ‘공로명과 나’에선 최우진이 김일성 사진을 온전하게 도려내느라 쩔쩔맸다는 회고도 담겼다.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회담본부장을 지낸 정승훈 남북회담문서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김일성 사진을 찢고 북한 대표가 당황하는 상황”이라며 “최 위원장이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선 김일성 3대의 사진을 훼손하면 최고존엄 모독으로 정치범 처벌될 수도 있다. 다만 최우진은 이후 승진을 이어가 1997년 해임된 김영남 외교부장의 대행을 맡기도 했다.

통일부가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서른 두 차례의 남북간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최초로 남북 당사자간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로,「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이 담겼다. 사진은 지난 6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해당 문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 찢기’ 사건에 앞서 1992년 6월 공동위 6차 회의에선 북측이 남측에 ‘미국을 추종한다’고 폄하하자 남측 국무총리실 정책심의관으로서 자리한 한 남측 위원이 “그런 언행을 계속한다면 이 자리에서 아주 마지막 결론까지 낼 계획”이라고 나섰고, 북측이 신분 의혹을 제기한 장면도 있다. 남북은 격렬한 협상중 서로를 ‘놈’, ‘간첩’이라 비하하거나 날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1993년초 마지막 남북 수석대표 간 접촉까지 총 22차례 핵통제공동위가 열렸으나, 상호사찰 협의는 결렬됐다. 북측은 자신들의 핵개발 사찰은 IAEA와만 협의하려 하고 남측엔 주한미군 기존 핵시설(전술핵) 사찰만 강하게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해 3월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으로 탈퇴 이행을 보류하다가 2003년 1월 최종 이탈했다.

정승훈 심사위원장은 회담 당시 남측의 북측 군사기지 불시사찰 수용 요구 등이 강압적이었다며 “유인책 없이 압박성 레버리지만 사용한 건 우리 협상력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평했다. 심의위원 참여한 박용한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남북 정상회담(1994년)이 추진됐듯, (경색됐지만) 남북관계의 가변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통일부는 공개된 지 3년이 넘은 남북회담 공개문서 중 비공개였던 832쪽 분량을 재심의해 추가로 공개했다. 적십자 파견원 접촉, 적십자 예비회담(1971~1972년), 적십자 본회담(1972~1973년), 적십자 대표회의 및 실무회의(1973~1977년) 시절 수행원 명단과 쌍방 제안·합의사항 등이다.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북한자료센터·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경기·강원·충청·호남권 통일플러스(+)센터,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 등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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