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있는지도 모르는 놈이"…30여년 만에 공개된 남북 비핵화 협의
2026.06.30 12:54
처음이자 마지막 남북 간 핵 문제 협의 내용이 담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전후 회담 사료가 30여 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만큼 서로 거친 언사를 주고받는 등 회담 곳곳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역력히 드러났는데요.
박수주 기자가 주요 장면을 정리했습니다.
[기자]
1991년 남북이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는 이 역사적 선언 이후에도 '상호사찰'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 남북의 신경전은 고위급회담에서 거친 언행으로 표출됐습니다.
남측 대표인 임동원 통일원 차관은, 최우진 북측 대표가 영변의 핵시설이 '자그마한 평화적인 핵시설'일 뿐이라고 주장하자, "우리는 손금을 보듯 훤히 알고 있다"며 "영변에 어떤 핵시설을 갖고 있어 문제가 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흥분한 양측 대표는 번갈아 책상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고, 남측에서는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이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언쟁은 회담 말미에 임 대표가 '과거 남북회담에서는 비속어(개소리)를 쓰기도 했다'는 말과 함께 고성을 줄이자고 사과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본격적인 사찰 규정을 논의하기로 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에서도 종종 험악한 분위기가 확인됩니다.
92년 12월 13차 회의에서 북측은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재개 결정에 대해 '외세'와 결탁한 범죄행위라고 비난했고, 남측은 1950년 동족상잔의 범죄행위를 누가 저질렀느냐고 맞받았습니다.
당시 공로명 남측 대표는 "누가 외세에 의존적인지, 사대적인지"를 보여주는 사진을 가져왔다며 한국 신문에 실린 소련의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진을 건넸고, 북측이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반발하며 사진을 찢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회담문서 공개 심사위 관계자는 "역대 남북회담 사료 중 가장 거칠고 긴장감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습니다.
남북은 1993년 1월까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무려 32번 접촉했지만, 결국 상호사찰 규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 1차 북핵 위기를 계기로 북미 간 핵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오로지 남북이 주체가 된 핵 협의는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TV 박수주입니다.
[영상취재 김동화]
[영상편집 김휘수]
[그래픽 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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