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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실패, 이재명의 착각…반복되는 오만의 역사

2026.06.30 07:02

[오정환의 시대통찰] 권력은 역사 앞에 겸손해야 살아남아

● 오만해져 눈먼 인간…신이 모두 빼앗아 제자리로
● 권력이 오만해지는 이유, 빗나간 선민의식 때문
● 프랑스 대혁명가, 1만7000명 단죄하다 본인도 단두대형
● 또 다른 원흉, 정보를 가려듣는 ‘확증편향’
● 골수 나치당원 말만 듣던 히틀러, 결국 나락으로
● 검찰 폐지·방송 3법 개정·법 왜곡죄·노란봉투법…
● 李, ‘내가 옳기에 뭐든 허용된다’는 확신 버려야


6·3지방선거 이후 10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50.4%로 직전 조사 대비 9.4%포인트 급락했다. 사진은 6월 9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 대통령. 뉴스1
“금빛 보좌에 앉은 우리의 군주 크세르크세스를 지켜주소서!”

막이 오르고, 페르시아 궁전 앞에서 수심에 찬 원로들이 이같이 노래한다. 황제의 그리스 원정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페르시아 군대는 바다와 땅 위에서, 헬라의 창병에 맞서 궁수들을 앞세우고 진군한다. 한참 뒤 도착한 전령은 페르시아 군대가 살라미스해전에서 패배한 소식을 자세히 노래한다.

페르시아인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떻게 세계 제국이 한낱 도시국가에 패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의 어머니인 아토사가 선제 다리우스의 영혼을 저승에서 불러내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리우스의 영혼은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오만함 때문이라고 답한다.

“오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피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오.”

그리스·로마인들의 지혜와 망각의 역사
위 글은 기원전 472년 아테네 디오니소스 축제 때 비극 부문에서 우승한 아이스킬로스의 연극 ‘페르시아인들’ 중 한 장면이다. 페르시아의 2차 침략이 끝난 지 채 10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고대의 전쟁이란 눈앞에서 몸을 가르는 살육전이었는데도, 그 적들을 무대에 주인공으로 올렸다는 게 놀랍다. 더구나 객석의 아테네인들은 크세르크세스가 옷을 찢고, 페르시아 여인들이 통곡할 때 가슴을 부여잡고 함께 오열했다. 적에 대한 원한보다 인간의 운명적 한계에 공감했던 것이다.

다리우스의 대사는 그리스인들이 경계해 온 비극의 서사를 축약했다. 기원전 600년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솔론은 시 ‘엘레게이아’에서 인간이 파멸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 부와 권력을 얻은 인간은 그것에 도취해 필멸자, 즉 영원히 살 수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한계를 망각하고 오만해진다(Hubris·휴브리스). 오만해진 인간은 눈이 멀어 망상에 사로잡히고(Ate·아테), 그러면 신이 복수를 위해 찾아온다(Nemesis·네메시스).”

신의 복수는 앙갚음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균형의 회복이다. 그렇게 합리적이었던 아테네인들이었지만, 페르시아전쟁 후 에게해를 지배하고 동맹 도시들의 황금이 쏟아지자 초심을 잃고 탐욕스러운 지배자가 됐다. 그들은 동맹 도시들을 수탈했으며 저항하면 가혹하게 응징했다. 결국 반대 세력을 규합한 스파르타와 두 번의 그리스판 세계대전인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벌여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에 정복되며 고대 민주주의국가의 막을 내리게 됐다.

고대 로마는 개선장군에게 최고의 영예를 수여했다. 그는 신의 상징인 황금 면류관에 보라색 토가(Toga·반원형 옷감을 어깨와 몸 주변으로 겹쳐 입는 고대 로마 의상)를 입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 시내를 행진했다. 그런데 당시 로마는 한 가지 특이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마차에 노예를 함께 태워 무거운 면류관을 잡고 있으면서 장군의 귀에 계속 속삭이게 했다.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의 저술에 따르면 노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인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죽어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 군대를 장악한 인물이 군중의 열기에 휩싸여 스스로 신이 됐다고 착각하는 일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로마 지배층은 또 평민들과 타협했다. 기원전 494년 빈부격차에 항의해 평민들이 무장 파업한 성산(聖山) 사건을 계기로 호민관(귀족 계급의 횡포로부터 평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직책)과 평민회 제도를 도입했다. 개혁 입법을 통해 귀족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자유민이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일을 막았다.

그런데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넘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당초 로마 군대는 자영농 시민들로 구성돼 있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복무 기간이 길어지자 농토가 황폐해졌다. 반면에 귀족들은 포로를 투입해 정복지에 대농장을 운영했다. 더는 노동력 때문에 평민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원로원은 평민회 결정을 번복하기 시작했고, 개혁 시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몰락한 농민들은 도시로 모여들어 정치인이 나눠주는 빵과 서커스에 기대어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군대는 부족해진 병력을 빈민으로 채웠다. 병사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에게 돈과 땅을 주는 장군에게 충성했다. 사병이 된 군단을 이끌고 군벌들이 권력을 다투면서 로마의 공화정은 붕괴했다.

‘정의를 대변한다’는 선민의식, 권력 폭주로 귀결
권력자가 오만에 빠져 파멸하는 과정은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돼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나 남용하려 든다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경험이 증명하는 진실이다.” 그 원인으로 크게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빗나간 선민의식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대변한다’는 선민의식은 자칫 권력의 폭주로 귀결된다. 선민의식이 도덕적 명분과 결합했을 때 권력자는 자신의 선택이 언제나 정의롭고 완벽하다고 믿게 된다. 자신들이 선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사소한 규칙은 어겨도 된다는 논리가 권력 집단 내에 만연해진다. 반면에 자신들과 대립하는 집단은 척결해야 할 ‘악’이므로 가혹한 수단도 정당화된다. 그러는 사이 권력 집단은 대중을 동등한 주체가 아니라 지도에 따라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기 시작하며 대중에 공감하는 능력이 마비돼 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대혁명 직후의 대혁명가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청렴했다. 파리 서민 거주 지역의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고, 도박이나 파티 등 유흥을 멀리했다. 술도 포도주에 물을 섞어 조금 마시는 정도였다.

프랑스의 대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평범한 농민과 노동자 1만7000명을 재판 없이 처형하고 학살하면서 국가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결국 쿠데타에 의해 단두대형에 처해졌다. Gettyimage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삶이 도덕적인 만큼 어떠한 행동도 정당하다고 믿었다. 1794년 국민공회에서 낭독한 ‘정치 도덕의 원칙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포로 자유의 적들을 제압하라. 혁명정부는 전제정치에 맞서는 자유의 전제정치이다.” 급기야 인간의 가치까지도 구분하기에 이른다. “오직 평화로운 시민들에게만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공화국 안에서 공화주의자들만이 시민이다.”

그는 권력을 장악한 뒤 그대로 실천했다. 단심제인 혁명재판소를 만들어 반대파를 숙청했다. 의심법을 제정해 혁명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 사람뿐 아니라, 혁명에 열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정확히 1년 동안 집권하면서 1만7000명을 처형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재판 없이 학살했다. 대부분 평범한 농민과 노동자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도덕적 선의와 국가권력으로 경제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빵과 우유 등 39개 생필품에 최고가격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원가도 받지 못하는 농부들이 시장에 공급을 중단했다. 혁명정부가 지폐를 남발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로베스피에르는 법을 만들어 지폐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처형했지만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온 사회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이다가 자신들의 숙청 차례가 다가옴을 느낀 국민공회 의원들이 봉기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쿠데타 병력에 의해 총격전 끝에 체포됐고, 다음 날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았다.

독선과 오만으로 악화되는 권력자의 ‘확증편향’
두 번째 원인은 정보를 가려듣는 ‘확증편향’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현상을 말한다. 배치되는 정보는 불순한 의도로 치부해 버린다. 절대 권력자일수록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과신해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심리학자 켈트너는 2008년 ‘권력의 역설’ 개념을 주창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공감 능력이 권력을 얻는 순간부터 오히려 약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에코 체임버 현상’까지 뒤따른다. 대개 권력자는 추종자들을 요직에 앉히고, 그 결과 자신의 의견과 동일한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된다. 이제 권력자의 확증편향은 독선과 오만으로 악화돼 간다.

일반인의 확증편향은 개인의 손실로 끝나지만, 권력자의 그것은 국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독일과 소련의 전쟁 때 지도자의 확증편향이 국가 존망의 결정적 변수가 됐다.

1942년 9월 12일, 스탈린은 크렘린 집무실로 게오르기 주코프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장군을 불러 스탈린그라드에 투입할 병력이 부족하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전황은 최악이었다. 독일군이 도시 중앙을 관통해 소련 62군과 64군을 분리하고 최후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지도를 보며 혼자 투덜대고 있는데, 주코프가 바실렙스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병력을 밀어 넣는 건 의미가 없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해.” 두 사람은 도시 외곽에서 독일군 역포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귀가 밝았던 스탈린은 뒤를 돌아보며 “그게 무슨 소리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두 장군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라고 얼버무리자, 그는 당장 다음 날 저녁까지 작전 초안을 만들어 오라고 명령했다. 독·소전쟁의 흐름을 바꾼 순간이었다.

앞서 스탈린은 독재자답게 모든 대소사를 혼자 결정하려 했다. 그래서 1941년 독일의 침략 정보를 무시하다 기습을 당했고, 그해 겨울 모스크바를 겨우 지킨 뒤 무리한 반격을 명령했다가 예비 병력을 모두 날려 또다시 수세에 몰렸다. 그랬던 스탈린이 군사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1944년 소련이 독일 중부군을 붕괴시킨 바그라티온 작전을 입안할 때였다. 바실렙스키가 스탈린 의견에 반대하며 주공격을 둘로 나눠 남쪽 습지대로 탱크 부대를 보내자고 주장했다. 바실렙스키가 고집을 굽히지 않자, 스탈린이 굳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바실렙스키는 이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탈린은 “동무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며 그의 뜻에 따랐다.

히틀러는 세계대전 당시 예상을 뛰어넘는 초기 군사전략 성공 때문에 오만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나락으로 끌고 갔다. Gettyimage
스탈린에 비해 히틀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독일군이 프랑스와 동유럽을 석권하고 소련군에 연전연승한 것이 자신의 영도력 때문이라 믿었다. 1941년 모스크바 공격에 실패한 직후 히틀러는 장군들의 후퇴 건의를 무시하고 전선 사수를 명령했다. 미숙했던 소련군의 공격 덕분에 그 작전이 성공하자 히틀러는 점점 자신을 군사전략의 귀재로 생각하게 됐다. 그는 베를린에 앉아 최전선의 연대급 이동까지 직접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1943년 후반 소련과 공수가 바뀌자 히틀러의 강박증은 더 심해졌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하인츠 구데리안 같은 명장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말 잘 듣는 골수 나치당원들을 임명했다. 히틀러는 개전 초기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후퇴를 절대 금지해 독일군의 장기인 기동방어 전술을 무력화했다. 전투에서 패하면 땅만 빼앗기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던 독일군 전체를 잃었다. 그는 전쟁 말기에는 이미 소멸한 사단들을 지도 위에 올려놓고 혼자 마음대로 상상하며 전쟁을 지휘했다.

스탈린은 처절한 패배를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에 히틀러는 예상을 뛰어넘는 초기의 성공 때문에 오만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나락으로 끌고 갔다.

반대 세력과 공존 거부한 권력은 필망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의 신승을 거뒀다. 새 정부의 여건은 순탄치 않았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때까지 국무총리 인준을 해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가 대신 부총리를 지명해 겨우 새 정부를 꾸릴 수 있었다. MBC 등 일부 매체들은 적개심이 느껴질 정도로 윤석열 정부를 공격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및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중앙지법
그런데 정부 출범 한 달도 안 돼 치른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대로라면 2년 후 국회 다수당도 탈환할 것 같았다. 여권 지도부가 여론의 흐름을 잘 살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때 그 의미를 깨닫고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

윤 전 대통령은 방향이 옳다고 믿으면 누구 말도 듣지 않고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정치도 그렇게 했다. 국가 R&D 예산 조정, 의대 증원 등이 그러했다. 2024년 총선 직전에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채 상병 순직 사건’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인물이었다. 여기에 당정 갈등까지 겹치며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고, 국민의힘은 2024년 22대 총선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이재명 정부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는 유명무실해졌다. 야당의 검증 요구를 거대 여당이 표결로 거의 모두 봉쇄하고 있다. 그래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단 한 명의 증인·참고인 없이 이틀 동안 청문회를 진행했고, 핵심 자료조차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장관급 인사청문회도 대부분 비슷했다.

민주당은 이른바 ‘개혁 입법’을 국민의힘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했다. △대법관 숫자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 △검찰을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 △방송사 임직원과 학회·변호사단체 등이 이사들을 추천하는 방송 3법 개정,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언론중재법 개정 등이다. 각각 정권의 사법부 장악과 권력형 비리 수사 봉쇄, 언론노조의 방송사 경영권 장악,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고 비판을 받는 법안이었다.

판·검사를 재판 및 수사 왜곡 혐의로 고발하는 ‘법 왜곡죄’,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와 근로조건을 협상하는 ‘노란봉투법’ 등도 시행 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물가와 환율 상승에 대한 불안과 함께, 부동산 가격을 공급이 아닌 통제로 억누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간다.

그런 상황에서 6·3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6석 가운데 12석을 확보했다. 15석을 석권하리라는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며,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도 패배했다. 이것이 승리인지 여권 내 해석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어느 해석을 따르느냐가 2년 뒤 총선 결과를 정할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대한민국을 개혁하려는 정책 방향이 옳다고만 생각하고, 반대파와의 공존을 거부하며 탄압해도 된다는 생각만큼은 배제하기 바란다. 내가 옳기 때문에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확신이야말로, 역사 속 수많은 권력자가 몰락의 문턱에서 공통으로 품었던 생각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 온 권력의 흥망사가 유독 자신 앞에서만 멈출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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