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최고 존엄' 김일성 사진 찢은 北 당국자…그럼에도 살아남았다?
2026.06.30 11:01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남북은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공동선언 채택 이후 남북은 '핵통제공동위원회'를 창설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를 이어갔지만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30일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32차례의 남북 간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3836쪽 분량의 남북 회담 문서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핵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1991.12.26.~12.31.)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을 위한 대표접촉(1992.2.19.~3.14.)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1992.3.19.~1993.1.25.)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 등이 포함돼 있다.
통일부는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는 최초로 남북 당사자 간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1991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됐던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의 합의에 따라 세 차례의 접촉을 진행했고 이에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가 탄생했다. 이 합의는 이후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공식 발효됐다.
이어 남북은 위 선언에 근거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합의했고 1992년 3월 19일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현 판문관)에서 1차 회의를 개최했다.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핵 사찰 문제를 두고 남북은 입장 차를 보였는데, 남한이 한미 군사 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남한은 남북 상호 사찰을 실시하면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문제가 검토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고, 북한은 남한이 이 두 사안을 연계하는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2년 12월 1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제13차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양측의 주장 및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북한 측 위원장이었던 최우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팀스피리트 훈련이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남한 측 위원장이었던 공로명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누가 외세에 더 의존적이고 사대적이냐면서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 1992년 12월 15일 자 <중앙일보> 사진을 최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최 위원장은 "그런 건 가져가세요"라고 말했고, 공개된 회의록 문서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으나 최 위원장이 해당 사진을 찢은 것으로 보인다. 공 위원장이 "왜, 그런 걸 찢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 측 대표단은 "오늘 완전히 도발" 이라고 대응했고, 회의록에는 '쌍방 소란'이라고 적시돼 있어 당일 회담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해당 회의에 위원으로 참석한 김수길 북한 외교부 연구원은 "그쪽에서 도발하려고 계획적으로 이게 계획했구만요"라고 따졌고 공 위원장은 "그러니까, 요 다음부터는 그런 얘기는 하지말라 이 얘기야"라며 응수했다.
이날 상황에 대해 기자들과 만난 회담 문서 공개 관련 관계자는 "공로명 장관이 자유로운 회담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북한은 자주적이고 주도적으로 해결하자는 당사자 원칙을 강조하면서 우리한테 왜 미국을 추종하냐고 따졌는데, 공 장관은 북한이 한국 전쟁을 소련과 공모해서 하지 않았냐는 증거로 사진을 제시했다"라며 "그런데 최우진은 그거 아마 보지도 않고 찢었던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찢는 것은 북한 내부의 관행을 봤을 때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다. 이에 이후 최우진 위원장 신변에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외무성 부상까지 승진했고 임동원(당시 통일원 차관)과 실무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전했다.
수 차례 고성이 오갔던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별다른 합의를 하지 못했고 다음 회의 날짜도 잡지 못했다. 이후 해가 지난 1993년 1월 25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 위원장 간 접촉이 있었으나 여기서도 양측은 별다른 합의를 하지 못했고, 결국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위원회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통일부는 지난 2022년 처음으로 회담 문서를 공개한 이후 이를 정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통일부는 이번에 2022년 공개문서 중 비공개 결정했던 문서 832쪽 분량을 재심의하여 추가로 공개하기로 했는데 수행원 명단과 남한 기자가 북한에 가서 취재하고 남한으로 보낸 취재 내용과 쌍방제안 및 합의사항 등이 포함됐다.
추가 공개 대상은 △적십자 파견원 접촉 △적십자 예비회담(1971.8.~1972.8.) △적십자 본회담(1972.8.~1973.7.) △적십자 대표회의 및 실무회의(1973.11.~1977.12.) 등이다.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통일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호남권 통일+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이번 8차 공개부터는 열람 장소를 경기·강원·충청권 통일+센터까지 확대해 전국에서 열람이 가능하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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