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말도 안 되게 죽는다고? 매일 퇴근 못하는 사람 찾는 이유
2026.06.30 06:56
| ▲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왼쪽)와 박한솔 활동가가 25일 서울 종로구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이정민 |
41, 33, 79, 44, 44...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 수다. 매달 수십 명이 일하다가 사망한다. 사고 유형은 다양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이삿짐운반용 리프트를 점검하던 중 3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서, 공사장에서 후진하던 1톤 트럭에 치여서, 화물차에서 목재 합판을 내리던 중 무너진 합판에 깔려서, 용기 제조 공장에서 가스 관련 장치 폭발로 부서져 날아온 덮개판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사회단체인 노동건강연대는 2019년 5월부터 정부나 공공기관 자료나 언론에 보도된 노동자의 죽음을 월별로 한데 모아 <오마이뉴스>에 '이달의 기업살인' 기사를 실어왔다. 통계뿐만 아니라 개별 사고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빠짐없이 기록한다(▶︎'이달의 기업살인' 연재 보기 https://omn.kr/1pufk).
상근 활동가가 2명밖에 안 되는 작은 단체에서 작업을 지속해 온 건 '이래도 되나' 하는 분노 때문이다. 누군가는 '조용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알려야 부조리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 건강 문제를 발굴하고, 산재보험 개혁을 외치는 등의 바쁜 나날 속에서도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를 꾸준히 지속해 온 이유다.
이들은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을 막으려면 그들을 고용한 기업이 바뀌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살인'이라는 연재 이름에도 이러한 뜻이 담겨 있다. 단체가 7년간 기사를 통해 책임을 물어오는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산재와의 전쟁'을 내건 정부가 등장했다.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난 25일 노동건강연대의 이성윤 공동대표(직업환경전문의)와 박한솔 활동가를 서울 종로구 단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산재 해결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며 몇몇 방안을 제언했다.
다음은 두 사람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
"뉴스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노동자 이야기 보여주고 싶었다"
| ▲ 노동건강연대 박한솔 활동가가 25일 서울 종로구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이정민 |
-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가 굉장히 오래됐다.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박한솔 활동가(아래 박) : "제가 단체에 오기 전부터 해 온 일이다. 언론에서 노동자의 사망 기사들을 단신으로 보도하곤 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는지 기사들에 나온 사건을 다 모아보자며 시작했다. 기사 스크랩하듯이 동향을 파악할 겸 매일 검색해 그날그날 기록하다가 '이렇게나 많다고?' 하면서 정례화된 것이다. 작업 초창기 때만 해도 산재사망 데이터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뉴스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수집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연재에 돌입했다."
- '이달의 기업살인' 통계에 따르면, 매달 수십 명의 노동자가 집에 가지 못한다. 사고 내용을 보면 '이렇게 허망하게 사망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통계를 정리할 때 마음이 힘들진 않나?
박 : '부담이 아예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어쩌다 보니 목록 정리 작업을 단체에서 제일 오래 하게 됐는데, 일단 이렇게 많이 죽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매일 쓸 게 있다고?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써야 한다고?' 싶었다. 엑셀에서 위에 같은 셀 내용이 있으면 자동으로 나머지 문장이 입력된다. '강원 정선'까지만 쳤는데 뒤에 자동으로 문장이 완성되면 다른 사고가 있었다는 거다. 그럴 때면 이렇게나 많이, 다양한 곳에서,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는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생기는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이상윤 공동대표(아래 이) :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업장 바깥에서 산재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어 있는 시민들의 분노와 사회의 정의 감각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이 사안을 시민들이 '문제가 있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숫자만으로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부족하다. 숫자 뒤의 사실과 이야기들이 훨씬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수집돼 알려져야 한다. 그런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업이 조금씩 발전해왔다."
| ▲ 2025년 7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과 논의하고 있다. |
|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 산재 근절은 이재명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다.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현 정부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 : "이재명 정부가 노동자의 산재 사망, 안전,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역대 정부 중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것을 해결하려 노력한 정부다. 아쉬운 점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문제, 깊은 뿌리를 건드리는 방식보다는 대통령의 원 맨 플레이 방식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건 저희 같은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이고,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공법을 쓸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박 : "국무회의에서 산재를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걸 처음 봤기 때문에 '오, 뭔가 좀 다르려나?' 기대했던 것 같다. 근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그전에 산재에 관심 없던 정부가 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예산이 늘어나는 건 알겠는데, 예산이 쓰이는 방식이나 관심 갖는 부분들이 과연 맞는 방향일까 의문이 든다. 'AI 안전시스템 도입 지원'처럼 기술 쪽에 집중하는데, 그게 없어서 노동자가 죽는 건 아니다. 차단막이 없어서 죽는다거나 기술이 없어서 죽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어떤 궁극의 기술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죽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누가 오더라도 다치거나 사고 나지 않는 시스템 만들어야"
| ▲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가 25일 서울 종로구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이정민 |
- 일단 숫자로만 놓고 보면 지난해 동기간에 비해 '이달의 기업살인' 사망자가 줄었다. 2024년 6월~2025년 5월 '기업살인' 누적 사망자는 896명인 반면, 2025년 6월~2026년 4월 누적 사망자는 719명이다. 정부가 국정과제 우선순위에 놓고 관리하는 게 효과가 있는 걸까?
이 : "방향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산재 사망·노동자 건강 이슈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식을 얘기하고 싶다. 현재 산재 사망만 보면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50대 이상 중고령 연령대,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에게 집중돼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문제 해결하려면 한국 사회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단가 후려치기나 불공정 계약을 강제하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 노동자 대부분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에 있는 것이다.
저희가 예전에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공장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활동한 적이 있다. 청년 여성들이 영세 사업장의 말도 안 되는 작업환경과 관리 체계 속에서 고농도 메탄올에 노출돼 실명했다. 혹자는 '작업환경 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 제도가 있으니까 사업장에 나가서 유해물질 농도를 측정하고 농도가 높으면 대책을 세우게 하면 되는데 왜 유명무실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작은 사업장이라도 안전교육을 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안 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런 걸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희가 시민들에게 더 알리고 싶었던 핵심은 따로 있다. 그 공장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스마트폰 표면을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는데, 세척액으로 에탄올 대신 그보다 싼 메탄올을 써서 노동자들이 실명한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고들려면 스마트폰이라는 생산물을 만드는 공급사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근본적 책임은 삼성에 있는 것이다. 4차 하청까지 내려가는 부품 공급사를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고 '우리는 깨끗한 부품만 받으면 돼'라는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제기하고 싶었다."
- 정부가 산재 해결 의지를 알리고 안전수칙을 알리는 걸 넘어,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인가?
이 : "그렇다. 구조적 문제는 단번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정부가 해결해 줬으면 하는 문제는 사실 좁은 의미의 산재 정책이 아닐 수도 있다. 불공정 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하는 것이고, 건설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국토교통부 정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감독과 위험성 평가도 중요하지만, 대·중소기업 이윤 분할 체계, 건설업의 공기 단축·불법 하도급 문제처럼 오래된 구조적 문제들을 고용노동부뿐만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시원하게 해결해 줬으면 한다.
안전의 기본 원칙은 이렇다. 안전 수칙을 잘 모르는 노동자든,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든, 누가 오더라도 다치거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1차 목표다. 교육을 잘 받고 말 잘 듣는 뛰어난 노동자들만 안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다른 노동자들이 말을 안 들어서 문제'라고 하는 건 안전 원칙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노동자도 일하면서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게 하는 게 근본적 원칙이다. 그렇게 하려면 안전모 쓰고 안전화 신는 수준만으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
- 2년 차를 맞은 현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박 : "'우리 단체는 폐업을 목표로 하는 독특한 단체'라고 대표님이 말하셨는데, 이처럼 저희는 해소를 목표로 활동한다. 모든 사회단체들이 그렇긴 하겠지만, 주지로 삼고 있는 것의 큰 한 축이 기업살인 근절이다. 시민 개인으로선 '내가 가서 목소리 낸다고, 이런 단체 후원한다고 큰 영향이 있나?'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커지면서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여론이 되기도 하고 운동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현장에 나와 몸으로 보태주시고, 시위에 나와주시고, 토론회에 와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사안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등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SNS에 올리든, 친구와 얘기하든, 뜻 맞는 단체를 후원하든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작은 한 걸음 한 걸음들이 단체에 큰 힘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사회의 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달라. 그리고 이 기사를 읽고 저희 같은 단체에 힘을 보태야겠다 생각이 든다면 후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 ▲ '이달의 기업살인' 시리즈 페이지 |
| ⓒ 오마이뉴스 |
*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단체이자 비영리민간단체다. 전신인 노동건강연구회와 산재추방운동연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2001년 창립했으며, 오는 30일 창립 25주년을 맞는다.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여성 노동자, 이주노동자, 서비스업 노동자 등을 위한 권리 옹호 활동, 조사 연구사업, 정책 제안 및 개선사업 등을 펼쳐왔다. 이밖에 기업살인법(중대재해법) 제정 운동, 산재보험 제도 개혁 사업,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건강을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킹 사업,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사업 등을 진행했다. 후원 문의는 http://laborhealt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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