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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재인 (17) 문화계 검열 반대 활동 펴다 수사기관 뒷조사 시달려

2026.06.30 03:08

부천 전보 후 검열 반대 모임 참여
수사 시작되더니 압력에 가택 수색도
감시망 피하려 충북 임용 시험 응시
면접 땐 ‘신원 특이자’ 스스로 밝혀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이 경기도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재직하던 시절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사람은 염치가 없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교사로 고향에 보내주셔서 이른바 출세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께 또 기도 공세를 했다. 이번엔 부부가 함께했다.

더 넓은 세계, 더 많은 학생이 있는 도시 가까이 가고 싶었다. 작가로서 서울에 있는 유명 문인들의 성향과 삶의 질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고향 까마귀’라 살갑게 부르며 문예지 지면을 내어주던 이문구 선배 곁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90퍼센트쯤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은 군부독재로 시끄러웠고 해직 기자들이 탄압받는 상황에 동참하겠다고 마음을 다지던 때였다.

도시에 있는 학교를 기다리던 중 경기도 부천에 있는 소명여자고등학교로 전보됐다. 나는 나이도 젊고 열정을 가진 기독교 신자이면서 작가로서 책도 세 권씩이나 출간한 교사였기에 여학생들한테 꽤 인기가 있었다.

이때쯤 이문구 선배가 장용학, 고은, 이호철 선생 등과 뜻을 모아 유신 체제의 문화계 검열에 맞서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창립했다. 103인의 서명자 중에 나도 끼워져 있었다. 이후 광주 양성우 선생이 반독재 시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면서 103인 중 공직자들, 특히 공무원들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본격화됐다. 말 한마디, 글 한 줄로도 붙잡혀 가던 그런 시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직은 저 너머에서 남의 일처럼 벌어진 사건으로만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내 내게도 보이지 않은 손이 뻗쳐왔다. 중앙정보부나 보안사령부 같은 수사기관의 뒷조사가 시작되더니 여러 압력이 가해졌다. 수사관들이 교장을 통해 내 동태를 캐묻거나 그들에 의해 가택수색이 진행되기도 했다. 교무실 책상 서랍이나 교무 수첩을 누군가 뒤진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숨 막히는 듯한 불편함과 감시의 시선을 느껴야 했다. 결국 충북 공립학교 교사 임용고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사표를 던졌다. 감시망이 촘촘한 수도권을 벗어나 시골 학교로 내려오면서 나를 조여오던 수사기관의 표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시험을 치렀다. 결원 인원 5명을 채우는 시험이었다. 나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1위로 합격했다. 1위에게는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관행에 따라 나는 충북 영동 나들목(IC)과 가까이 있는 용문중학교를 선택해 발령을 받았다.

면접 당시, 나는 내가 신원 특이자(주의 대상자)라는 것을 스스로 밝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 큰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공산당 핵심 간부였다. 인사담당자는 내 말을 듣고는 “곤란한데, 이것은… 이것은 곤란한데…”하며 쓴 입맛을 다시었다. 나는 이 난처한 순간을 모면하려고 미리 준비해 간 저서 ‘황야의 아침’ 내밀었다.

“저를 공립으로 채용하시면 저도 문교부(현 교육부)에 들어갔을 때 이 은혜를 꼭 갚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교부에 어떠한 연줄이 있거나 자리를 약속받은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장래 포부이자 임기응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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