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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다 노래 한 곡 뚝딱… ‘봄날은 간다’ 작곡가 박시춘

2026.06.30 05:01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96년 6월 30일 83세

※ 오늘로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연재를 마칩니다. 2025년 7월 1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1년간 매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뵈었습니다. 해당 날짜에 떠난 365위(位) 인물을 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보고 당대의 삶과 사회를 돌아보았습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가요 1세대 작곡가 박시춘.‘ 가거라 삼팔선’‘전우야 잘 자라’등 한민족의 격동기를 노래로 담아냈다.

작곡가 박시춘(1913~1996)은 노래 한 곡을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냈다. 6·25전쟁 때 만든 ‘전우여 잘 자라’는 술을 마시다가 즉석에서 작곡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로 이어지는 그 노래다.

1950년 9·28 수복 직후였다. 박시춘은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 치하에서 숨어 지내다 겨우 집을 나섰다. 명동 거리에서 극작가 유호(1921~2019)를 만났다. 1990년 조선일보 시리즈 기사 ‘이 산하 이 노래’에 일화가 실려 있다.

1990년 6월 24일자 9면.

“서로 부둥켜 안고 안도의 울음을 터뜨린 두 사람은 잠시 후 다 쓰러져 가는 주점에서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고, 술자리는 박씨 집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우리가 죽었다 살아났고 국군도 진군을 하니 노래를 하나 만들자”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아예 그 자리에서 유씨가 시를 짓고 박씨가 기타로 곡을 붙여 태어난 게 ‘전우여 잘자라’였다.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마지막 지켜낸 낙동강 전투, 낙동강가에서 스러져간 숱한 젊은 꽃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조국이 통일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심정을 담은 이 노래는 곧 군가로 채택됐고, 전시엔 마치 국민가요처럼 불려졌다.”(1990년 6월 24일자 9면)

박시춘·유호는 이미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작곡·작사 ‘콤비’였다. 1948년 가수 현인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 ‘신라의 달밤’도 둘의 작품이다.

1991년 1월 17일자 9면.

“당시KBS의 전신인 정동 중앙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던 극작가 겸 작사가 유호씨의 사무실에 작곡가 박시춘씨가 들이닥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할까요. 작가실로 저를 찾아온 박씨는 다짜고짜 노래 가사를 하나 지어내라는 거예요. 박씨는 그때 같은 방송국에서 경음악단 지휘를 맡고 있어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지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다음 날 당장 녹음을 해야 하는데 곡이 하나 필요하다는 거였습니다.””(1991년 1월 17일 자 9면)

유호는 어떤 가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박시춘은 광복이 됐는데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노래가 거의 없으니 ‘신라의 달밤’이란 제목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신라라면 경주가 등장해야 하는데, 경주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가본 것이 전부였다. 유호는 얼른 자료실로 달려가 경주 지리 책을 가져다 폈다. 가사는 순식간에 쓰여졌다.

‘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 위에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1990년 7월 22일자 9면.

현인이 1946년 부른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유호는 ‘고모령’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고모령은 대구 동쪽 경산으로 건너가기 전에 있는 고개이다.

“46년이었어요. 하루는 작곡가 박시춘 선생, 가수 현인씨하고 밤을 새워 레코드 취입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하룻밤에 너댓 곡씩 소나기밥 먹듯 녹음해 판을 찍어내는 게 보통이었죠. 한판 작업이 끝났다 싶을 즈음 갑자기 노래 한 곡이 모자란다는 거예요.” 다급해진 유씨는 마침 방에 있던 지도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지도 한구석에서 눈에 들어온 게 고모(顧母)라는 지명이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어머니와 이별이라는 이미지가 퍼뜩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단숨에 써내려간 가사에 박 선생이 곡을 붙인 게 이 노래입니다.”(1990년 7월 22일 자 9면)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부엉새도 울었다오 아 나도 울었소…’로 이어지는 애절한 망향가는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뜻의 ‘고모(顧母)’라는 지명만 보고 쓴 가사에 박시춘이 멜로디를 붙여 탄생했다.

1982년 11월 25일자 12면.

경남 밀양 출생인 박시춘은 아버지가 기생 양성소인 권번을 운영한 탓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했다. 10대 시절부터 유랑극단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트럼펫·바이올린·색소폰·기타를 잘 다뤘다. 그는 첫 작곡인 ‘애수의 소야곡’(남인수·1938)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후 3000여 곡을 만들었다. ‘가거라 삼팔선’(남인수·1946), ‘낙랑 18세’(백난아·1949), ‘럭키 서울’(현인·1949), ‘전선야곡’(신세영·1951), ‘굳세어라 금순아’(현인·1953), ‘봄날은 간다’(백설희·1953),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1954) 등 1940~50년대에 만든 노래가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노래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저작권 수익을 얻지는 못했다. 1980년대까지 저작권법 미비로 작곡가들은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대중가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음악 저작권은 법의 맹점으로 방송이나 유흥업소 등에서 멋대로 사용해도 저작권료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 작곡가 박시춘씨와 얼마 전 작고한 일본의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는 연배나 경력이 비슷하고, 둘 다 트로트 가요의 원로라 할 수 있고 작품 수나 국민에게 주는 영향력도 막상막하다. 박씨가 올해 문화훈장을 받았다면, 고가 마사오도 훈장을 받은 양국의 대표적 작곡가다. 그런데 고가 마사오는 생전 연간 6억엔(18억원)의 저작권 수입이 있었고, 사후 50년 동안 연간 3억엔(9억원)의 저작권료를 받게 되어 있다. 고가는 궁전 같은 저택에서 살았고, 죽은 후에는 그 저택이 관광 코스에 들어 있을 정도며, 유족들은 저작권료의 일부로 고가상(賞)을 제정하여 후진들을 위해 쓰고 있다. 박시춘씨는 연간 겨우 2백만원 정도의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 그것도 재녹음할 때 받는 사용료(10곡 12만원 정도)를 포함한 액수다. 월 20만원 정도의 저작권료를 받는 작곡가는 박시춘씨가 유일한 케이스다.”(1982년 11월 25일 자 12면)

1996년 7월 1일자 38면.

1987년 새 저작권법이 시행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음악 저작권 보호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가요계에도 작사·작곡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작가시대가 열렸다. (…) 이들 가운데 연간 2천만원 이상의 저작권료를 받는 특A급 작사가나 작곡가는 15명선. (…) ‘비 내리는 호남선’의 박춘석,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반야월, ‘목포의 눈물’의 손목인, ‘애수의 소야곡’의 박시춘, ‘비 내리는 고모령’의 유호, ‘짝사랑’의 김영광, ‘오동잎’의 안치행, ‘허공’의 정풍송, ‘옥경이’의 조운파씨를 비롯한 20여명의 원로 또는 중견들이 상위권의 단골 손님들이다.”(1990년 11월 2일자 13면)

1996년 7월 4일자 5면.

박시춘은 1960년 6월 30일 별세했다. 언론인 이규태는 “70년대 들어 작곡 활동은 멎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방송국에서 조사한 애창곡 100곡 중 박시춘의 작품이 10곡은 차지했을 정도로 한국 60년의 정서를 주름잡아온 그였다”면서 “한국 정서의 한 시기를 역사에 아로새겼다는 점에서 그는 재평가돼야 하는 것이다”(1996년 7월 4일 자 5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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