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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첫만남, 성별 불문… 설렘 잃고 자극만 찾는 ‘연프’

2026.06.30 00:44

3일 동안 침대 위에서 ‘소개팅 실험’
남자가 남자 선택… 이별 생중계도

연애 예능 소재 고갈로 수위 높아져
“사적 영역 다뤄… 제작 윤리 지켜야"

넷플릭스가 지난 17일 공개한 12부작 연애 프로그램 ‘연애실험실’에서 남녀 출연자가 침대 위에서 껴안고 있다. 15세 이용가인 이 프로그램은 처음 만난 남녀가 3박 4일 동안 침대에서 소개팅을 한다./ 넷플릭스

“사소한 장난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두 남자의 첫날밤.”

웨이브 연애 프로그램 ‘스탠바이미’ 3화의 자막 중 일부다. 남녀 4명씩 출연한 이 프로그램에서 첫인상 투표 결과 한 남성 출연자가 또 다른 남성 출연자를 선택했고, 두 사람에게는 제작진이 준비한 둘만의 방인 ‘시크릿룸’이 마련됐다.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다음 날 같은 침대에서 함께 눈을 떴다. 동성 친구 사이의 편안함으로만 보기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12세 이용가인 이 프로그램 설명에는 ‘성별의 조건을 넘어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과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새로운 형태의 젠더 블라인드 연애 리얼리티’라고 적혀 있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다. 열두 살 갓 넘긴 아이들이랑 이걸 굳이 봐야 할까. 다양성의 확장이라기보다 고갈된 연애 예능의 자극을 메우기 위해 성(性) 정체성까지 미끼가 됐다.

6월 방송가와 OTT에 연애 예능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연애실험실’을 시작으로 19일 웨이브 ‘스탠바이미’, 23일 JTBC ‘연애전쟁’, 25일 SBS ‘합숙맞선2’까지 불과 9일 사이 새 연애 예능 네 편이 시청자를 찾았다. 연애 예능 포화 상태에 제작진이 꺼내든 카드는 비슷하다. 더 은밀한 공간, 더 민감한 소재, 더 거친 말로 시선을 붙잡는다.

15세 관람가인 넷플릭스 ‘연애실험실’은 첫 만남의 장소가 침대다. 3박 4일 동안 처음 보는 남녀가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대 위에서 소개팅을 하면서 노출시키는 당황한 표정과 어색한 플러팅(호감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 관전 포인트. 제작진은 ‘처음 보는 사람과 침대 위에서 3일간 소개팅을 하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를 내걸고 환경 실험처럼 설명하지만, 침대라는 공간이 가진 성적인 뉘앙스를 빼고 이 장면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애 심리를 관찰한다는 명분이지만,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시청자 눈을 붙잡겠다는 것이다.

가족 맞선 연애 프로그램인 SBS ‘합숙맞선2’에서 어머니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여성 출연자./SBS

방송사들도 자극을 앞세웠다. JTBC ‘연애전쟁’은 이별 직전 커플에게 이효리·서장훈·김희철 등 스타 MC가 현실 조언을 건네는 형식이지만, 예고 단계부터 “(모텔) 대실 2시간” “화장실 문을 투명으로 바꿔” 같은 수위 높은 발언을 부각했다. 관계를 회복할지 끝낼지 고민하는 사적 영역이 독설과 웃음의 재료가 된 셈이다. SBS ‘합숙맞선2’는 온 가족을 맞선판에 불러 모았다. 결혼을 원하는 싱글 남녀 10명과 자식을 결혼시키고 싶은 어머니 10명이 5박 6일간 한 숙소에 머문다. 첫 방송에서 한 여성 출연자는 “결혼 자금을 다 벌어뒀다”고 했고, 또 다른 출연자는 성격·경제력·외모에 더해 “기독교 신자였으면 좋겠다”는 조건까지 내걸고 만난다. 남성 출연자는 이들 앞에서 이름과 외모, 종교까지 순식간에 평가된다. ‘맞선’이라는 콘셉트로 노골적인 조건을 ‘만남’의 전제 조건으로 만든 셈이다.

성별 구분 없이 연애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스탠바이미’에서 남성 출연자들이 함께 잠을 깨는 장면./웨이브

연애 예능은 원래 남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장르다. 누가 누구에게 마음을 여는지, 작은 오해가 어떻게 관계를 흔드는지, 말하지 못한 감정이 어떤 표정으로 새어 나오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기다리지 않는다. 첫 만남을 침대에서 시키고, 정체성을 반전 카드처럼 내세우고, 이별 직전의 싸움을 중계하고, 가족을 조건 평가의 심판처럼 세운다.

자극은 일회성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 선을 넘은 포맷은 다음 프로그램의 기준선이 된다. 시청자가 놀라지 않으면 더 센 장면을 찾고, 더 센 장면이 익숙해지면 더 사적인 영역이 호출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애 예능이 소재를 넓히는 것과 사적 영역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정체성, 성적 긴장감, 가족 관계처럼 예민한 소재를 다룰수록 더 세심한 맥락과 제작 윤리가 필요하다. 화제성만 앞세우면 장르의 확장이 아니라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를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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