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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간다, 나는 글을 썼다

2026.06.30 00:42

‘당신에게…’ 쓴 독일 작가 폴커 키츠
前 막스 플랑크 연구원, 변호사·작가
치매 걸린 아버지 돌보며 책 집필

아버지가 집 대문을 열지 못했다. 수도꼭지 잠그는 법을 잊어 집이 물바다가 됐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갔고 독일 작가 폴커 키츠(51)는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란 “아버지를 올바르게 대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친숙한 것이 사라진 뒤 후회하지 않기 위한” 투쟁이었다. 돌봄의 기록은 에세이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김영사)가 됐다. 그는 세계 최고 연구 기관 중 하나인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내고 변호사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맞아 한국을 찾은 폴커 키츠를 25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돌봄은 현실에서 피로, 분노, 죄책감 같은 감정을 동반하지만 다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폴커 키츠는 “우리가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1년 반 정도 아버지와 살다시피 하며 책을 집필하던 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나고 밤낮 가리지 않고 글을 썼어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죠. 제겐 슬픔을 승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중후반부 즈음 초점이 부모의 나이 듦에 대한 성찰, 감정의 무게에서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동한다.

이 책이 말하는 돌봄의 본질은 ‘공감’이다. “의무감으로 요양원을 찾아 1시간 정도 앉아 있다 오는 건 공감이 아니에요. 돌아가려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김영사

는 순간 나이 든 부모가 나약한 목소리로 ‘나 여기가 아픈 것 같아…’ 하고 옷자락을 붙잡을 때 짜증 내지 않고 다시 곁에 앉을 수 있는 것. 세상에서 부모가 유일하게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아픔을 들어주는 태도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 순간도 많다. 아버지가 약을 삼키지 않고 입에만 물고 있을 때. 화단의 흙을 먹을 때. 외출을 하러 옷을 다 입혀 놓으면 벗어던질 때. 키츠는 “왜 이걸 못 해요?” 하고 화를 냈다. “치매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아버지에게 다른 행동을 할 선택지도 없었는데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가족을 돌보는 모든 이가 ‘나의 고통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구나’ 하고 죄책감을 지우길 바라며 저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대로 썼습니다. 누구든 피로와 분노에 시달립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흔히 치매는 부모 자식 간 역할을 역전시킨다고 한다. 자식이 보호자가 되고 부모가 아기가 된다고. 키츠는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책임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위에 내 책임이 더해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기억을 잃는다고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면면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 거죠.” 행복의 의미도 깨닫는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애플 크럼블 케이크’를 한 조각이 아닌 두 조각을 시켜 기쁘게 나눠 먹는 일상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땐 혼자 그 케이크를 파는 카페로 가서 두 조각을 주문한다.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를 쓴 폴커 키츠/장련성 기자

아버지가 치매를 앓을 줄은, 20년 전쯤 어머니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실 줄은 키츠도 부모님도 알지 못했다. 키츠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왜 나이가 든 후 어떻게 될지 미리 준비하지 않으셨나요?” 원망하듯 물었다. 아버지는 “우리는 누구도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키츠는 “미리 준비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돌봄이 어떤 것일지 짐작 간다고 여기지만 생각만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 영원할 거라고 이상화하죠. 미리 다양한 삶을 들여다봤다면 아버지와의 시간이 더 특별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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