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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로만 지적장애 판단 안 돼"…'약자 지원' 실천한 법원

2026.06.29 18:19

지적장애 미인정 취소 소송서

구청 판단 뒤집고 원고 손들어

별도의 ‘쉬운 판결문’도 첫 선

일상어·그림으로 친절히 설명

‘한국형 사회법원’ 추진 후 1호


“재판을 낸 원고 A씨가 이겼습니다.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적장애인 원고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과 그림으로 풀어 쓴 판결문을 내놨다. 대법원이 올해부터 시행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따라 작성된 첫 ‘이지리드(Easy-Read·읽기 쉬운) 판결문’이다.
서울행정법원이 지적장애인 원고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과 그림으로 풀어 쓴 판결문을 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는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서울 양천구청을 상대로 낸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최근 수년간 세 차례 실시한 지능검사에서 모두 지능지수(IQ) 70 미만 판정을 받고 여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구청은 A씨가 미성년자 때 지적장애 미해당 판정을 받은 후 현재까지 뇌 손상 등 추가 인지 저하를 일으킬 만한 소견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전문의들의 진단과 법정에서 직접 원고를 관찰한 결과 등을 토대로 구청의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장애인복지법령이 정한 지적장애는 단순히 지능지수만으론 판단될 수 없고 결국 그 지적 능력 손상으로 인해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이 있는지로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뉴스1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리시아 칼슨의 책 ‘지적장애의 얼굴들’을 인용하며 “이러한 구분은 장애인복지라는 관점에서의 분류체계가 아니었음은 분명하고, 오히려 우생학적 배경 하에서 시설로의 격리와 배제, 사회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분류체계였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은 일반인이 읽기 쉬운 문체와 그림, 재판 요약을 활용해 핵심 내용을 전달하도록 구성됐다.

20여쪽에 달하는 기존 판결문과 별도로 4쪽 분량의 쉬운 판결문을 작성해 재판 결과와 판단 이유를 먼저 정리한 뒤 쉬운 우리말로 설명했다. 일반 판결문이 법률적 판단과 근거를 중심으로 서술됐다면, 쉬운 판결문은 재판 결과를 먼저 제시한 뒤 그 이유를 차례대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재판 진행 과정도 그림으로 표현해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판결문 주문에는 “피고가 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을 취소한다”는 법률 용어가 사용됐지만, 쉬운 판결문에는 “원고가 이겼습니다”, “구청의 결정은 취소합니다”, “이제 구청은 장애인을 위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와 같은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앞쪽에 별도 항목을 마련해 “이 글은 법원이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알려드립니다. 재판을 신청한 분이 읽으면 좋습니다”라며 판결 요지를 설명했다.

행정법원은 올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하며 사회보장 사건 전담재판부를 확대해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등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심리하고 있다. 이 사건 재판부 판사 3명은 모두 대법원 장애법연구회 회원이다.

판결문에 사용된 그림은 사법정책연구원의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방안’ 연구 내용을 대규모언어모델(LLM)에 학습시켜 만든 ‘스킬(Skill)’을 활용해 제작됐다.

법원은 과거보다 제작 환경이 크게 개선돼 비용과 시간이 대폭 줄었다며 “생성비용도 사실상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유료구독료 외에는 들지 않게 되어 효율이 극대화됐다”고 설명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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