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외로운 투쟁, 이제야 '보훈의 그늘' 걷히고 있어" [제복 영웅의 그늘⑦]
2026.06.29 08:00
[호국보훈 심층기획] '연평해전 영웅' 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 여사 인터뷰
"보훈, 과거 아닌 미래 위한 약속…누군가 다시 제복 입을 수 있는 나라 만들어야"
"정부의 실질적 지원과 사회의 인식 변화 필요…우리도 영웅 예우 문화 바뀌어야"
[편집자주] 알고 계시나요. 올해는 6·25전쟁 발발 76주년이자 제2연평해전 24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런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온 몸을 바친 영웅들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시사저널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제복 영웅의 그늘' 기획 시리즈를 통해 참전용사와 유가족, 퇴역 군인·경찰·소방관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현재를 조명할 계획입니다. 영웅으로 불렸지만 제복을 벗은 뒤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보훈 제도의 사각지대 등을 살펴보고, 국가가 이들의 희생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한상국 상사가 썼던 애니콜 핸드폰이 여기 그대로 있네요. 라디오도 그렇고요. 그때 불타지 않고 관물대 안에 남아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고 다행이에요."
남편인 고(故) 한상국 상사를 제2연평해전 포화 속에 떠나보낸 지 24년, 김한나 여사는 용산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를 오랜만에 찾아 남편의 유품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 같이 말했다. 김 여사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전용사들과 유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이어왔다. 결국 추서 계급을 기준으로 유족연금을 지급하도록 한 이른바 '김한나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고, 전역 이후 발현된 지연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한 군인재해보상법 개정안 역시 결실을 맺었다.
김 여사는 참수리 357호 안에서 진행된 시사저널 인터뷰를 통해 "이제야 '보훈의 그늘'이 걷히고 있다고 느낀다"며 "보훈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 누군가 다시 제복을 입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도 우리 사회가 제복 영웅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하며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보훈 강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연평해전 24주년을 맞아 남편의 유품과 기록들을 다시 마주한 소회는.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덤덤하다. 물론 마음 한편이 편하지도 않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부재로 인한 슬픔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 감정보다 내가 해야 할 의미 있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연평해전 유족과 참전 용사들이 그간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정신적 상처가 가장 크다. 당시에는 정부가 '북한의 우발적 교전이었고, 우리도 잘못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혹시 우리 아들이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참전 장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만 가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왜곡된 이야기들을 들어야 했다. 그런 사회적 시선 자체가 또 다른 상처가 됐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복 영웅과 유족들을 대변해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9년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연평해전 관련 제도도 많이 개선됐고, 우리가 요구했던 내용들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봤다. 그런데 이후 유족들의 연금 문제는 물론,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젊은 소방관이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우리 세대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청년과 장병들을 위해서라도 역할을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본인 이름을 딴 '김한나법'을 통과시킨 성과도 있다.
"24년의 외로운 투쟁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야 '보훈의 그늘'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고 느낀다."
제복 영웅들의 지연성 PTSD 보상을 확대하는 군인재해보상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법안 속 보훈 인정 범위가 PTSD로 국한된 점이다. PTSD 뿐만 아니라 군 복무 중 발생한 정신적·신체적 질환 전반을 폭넓게 살펴봐야 한다. 군 생활 과정에서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모든 사례를 다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발생한 피해라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PTSD를 시작으로 보훈 인정 범위를 점차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가 보훈 강국에 가까워졌다고 느끼나.
"아직 멀었다. 중요한 건 영웅 예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만 봐도 전사자가 발생하면 국가 고위직은 물론 유관 직역 종사자들까지 직접 장례식을 방문해 경건하게 영웅을 예우하고 유족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문화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희생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다. 제복을 입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존중과 예우가 훨씬 더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으로 보훈 정책을 추진하면서 유념했으면 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실질적인 지원이다. 치료와 재활, 주거와 생활 지원처럼 당사자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는 인식 변화다. 군인·경찰·소방관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소방관과 경찰, 군인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그런 사회가 돼야 한다. 보훈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가유공자와 유족 지원 제도는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국가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꼭 큰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징적인 수준이라도 꾸준히 예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가 하는 일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남편 한 사람만을 위한 일도 아니다. 미래에 국가를 위해 일할 청년과 장병들을 위한 일이다. 국가가 그들을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누군가는 다시 제복을 입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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