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하며 디제잉 파티…농촌·도시 잇는 청년들의 실험
2026.06.29 06:02
북토크로 시작…전자음악에 맞춰 모내기
“어허, 못줄잡이(모 줄 맞추는 사람)가 춤추느라 못줄이 못 넘어가네.”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득 댄 논이 전자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삼삼오오 논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디제이가 조율한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아빠 손을 잡고 논에 들어선 아이들, 이웃 괴산에서 온 청년 농부,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체험 온 청년들, 마을 어르신이 모두 못줄 앞에 나란히 섰다. 빠른 전자음악에 맞춰 바쁘게 손을 놀리다 보니, 한 줄, 두 줄 황톳빛 논이 어느새 연둣빛 모로 가득 채워졌다.
지난 13일, 충남 서산시 음암면에서 ‘2026 논웨이브 : 서산편 논배미 춤판이쥬(이하 논웨이브)’ 행사가 열렸다. 논웨이브는 단순히 ‘논에서 하는 이색파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만나고 쉬면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행사를 기획한 농업먹거리청년모임 문재형 대표는 “우리에게 멀어지고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논을 사람들이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며 친숙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농업먹거리청년모임, 지역재단,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전환마을음암이 공동 주최하고 대산농촌재단,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가 후원한 이 행사는 지난해 경기 연천군에 이어 올해 서산시 음암면에서 열리게 됐다.
이른 오전부터 전환마을음암의 농장 앞 행사 등록대는 서울과 파주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로 분주했다. 등록을 마친 사람들은 진행자의 안내를 받아 논두렁 옆 아름드리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행사는 ‘미학개론’ 저자인 김동규 동네정미소 대표와 함께 우리 쌀과 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로 막을 열었다. ‘국내 1호 쌀 큐레이터’로 불리는 김 대표는 우리 삶 속에서 쌀을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며, 쌀이 떡과 술 등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 소비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북토크에 이어 전환마을음암 대표인 전태희(21)씨가 일군 ‘퍼머컬처’ 밭을 같이 둘러봤다. 퍼머컬처는 자연의 순환 원리에 따라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하는 재배 방식이다. 흙과 볏짚으로 만든 둔덕 위에 심은 가지, 고추 등 채소를 살펴보며 참가자들은 퍼머컬처 재배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전 대표는 “퍼머컬처는 일반적인 재배 방식보다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전환마을로서 우리 땅을 살리고 마을 먹거리가 식탁을 책임지는 지역순환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음암면의 마을 주민들은 전환마을은평, 춘천에 이어 농업, 돌봄, 경제, 문화, 관계에서 5가지 전환을 이룰 것을 약속하는 전환마을 선언문을 선포했다. 이 선언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하며, 마을의 자립과 공동체를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전 대표는 설명했다. 경기 파주에서 은퇴 후 농사를 준비하는 김정열(가명)씨는 “논웨이브 행사를 통해 농업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즐기고 대화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처음 방문한 마을이지만 오늘 경험한 추억으로 더 가깝게 느껴질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를 기획·운영한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은 젊은 농부들, 농업 먹거리를 유통·판매하거나 농촌 문제를 연구하는 청년들이 모여 2021년 결성됐다. 강한결 농업먹거리청년모임 활동가는 “농업 축소와 농촌 마을 소멸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시와 농촌을 잇는 접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논웨이브처럼 도시민들이 농촌과 먹거리를 즐겁게 경험하고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마을 쇠퇴를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일본에서는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도시민들과의 교류 중요성에 주목해왔다. 다나카 데루미 시마네현립대 교수는 마을에 인구가 줄어도 ‘관계인구’를 활성화하면 지역재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관계인구는 다른 곳에 살지만 특정 지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시마네현 시골 마을들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하면서 마을 축제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른 지역에서 온 관계인구의 참여로 오히려 축제 규모가 확대됐다. 관광객들은 스쳐 지나가는 인구였으나, 관계인구로 모집해 마을 행사와 축제에서 사전 준비와 뒷정리까지 함께했더니 지역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처럼 농업먹거리청년모임도 논웨이브 행사를 포함해 ‘국내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부터 지역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청년 아카데미 ‘아이러브농’이 그중 하나다. 아이러브농은 도시에 사는 청년 세대가 농업과 농촌을 이해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색하는 강의 프로그램이다. 매년 상·하반기에 나눠 수강생을 모집한다. 올해 상반기 모집된 5기 수강생들의 강의는 6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렸다.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서울가족플라자에서 열린 5기의 두 번째 강의에는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경기 양평, 수원 등지에서 온 열댓 명의 수강생들이 모였다. 친환경 농업과 먹거리, 지엠오(GMO·유전자변형작물) 이슈를 다룬 이날 강의에서 수강생들은 지난 주말 자신이 먹은 먹거리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먹거리 문제에 대해 학습했다.
직장인 박지수(가명)씨는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들던 식재료의 성분을 잘 살펴보고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강의를 듣고 나니 유기농, 친환경 농장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이러브농 수강생들은 수료 후에 농가 방문, 친환경 농장 체험 등 농촌과의 접점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논웨이브 행사 기획자 중 한 명인 강한결씨도 아이러브농 2기 수강생으로,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의 지역 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 강의실에서 시작된 관심이 농촌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작은 계기가 된 셈이다.
농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 흐름을 단기간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렇기에 지역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은 정주 인구 증가에 집착하기보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관계인구를 촘촘하게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헌중 지역재단 이사는 “도시민이 농촌을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접점들이 쌓이면, 그 관계가 소비로, 정착이나 참여 혹은 지지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이 축소되고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흐름을 당장 되돌리기는 어렵지만, 도시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쌓이면 지역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전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태희 전환마을음암 대표도 “자급자족의 삶,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의 교류가 늘어나면 좋겠다. 특히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의 농사와 먹거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아주는 것 자체가 마을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농업먹거리청년모임 활동가인 강선일 한국농정신문 기자는 “농촌의 미래를 위해서는 농민만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농민과 시민 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도농교류 프로그램 지원을 늘리고, 농업 외 다양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주체들에 대한 육성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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