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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좌도, 우도 아냐”…2030의 분노

2026.06.28 23:11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투표는 했지만, 정당 활동을 하거나 집회에 나가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김철환 씨가 요즘 거의 매일 찾는 곳이 있습니다.

김철환(25) / 서울 송파구
4일부터 거의 매일 꾸준히 한 번씩은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김철환(25) / 서울 송파구
친구들 중에서 투표를 실질적으로 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온 걸 보고 ‘아, 이게 진짜 벌어진 일이구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구호 소리가 커집니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김 씨는, 집회 참가자들 사이를 누비며 연신 사진을 찍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를 SNS에 공유하기 위해섭니다.

김철환(25) / 서울 송파구
현장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고 이런 것들을 가감 없이 다 노출하고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담고 (있습니다)


평일 밤이지만, 광장에는 적지 않은 인파가 모였습니다.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도 눈에 띕니다.

라상현(26) / 서울 노원구
퇴근해서 이쪽으로 오게 됐는데 오후 6시쯤 여기 도착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좀 크게 놀랐고, 와 보니 저 한 명이라도 더 여기에 참여해 주는 게 시민들이 의견을 내는 면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집회 참가자 대다수가 라 씨와 같은 젊은 층이라는 게 눈에 띕니다.
서울시의 실시간 인구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이날 올림픽공원에 몰린 만여 명의 인파 중 20~30대의 비중이 40%로 분석됐습니다.

이세영(32) / 서울 구로구
일단 올림픽공원이 굉장히 넓은데, 많은 분이 참석해 주시고 20~30대 분들이 자원해서 음료나 물이나 (모기) 기피제나 이런 것들을 다 손수 준비해 주셔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2030 세대,
하지만 이번 집회에서는 이들이 중심에 선 분위기입니다.

라상현(26) / 서울 노원구
국민의 참정권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기본권 중의 하나인데 일부 국민이라도 침해받았다고 한다면, 같이 나서서 입장을 펼쳐줘야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기 때문에

이번 집회의 또 다른 특징은 SNS를 통한 확산입니다.
젊은 참가자들은 SNS에 공유된 영상을 보고 집회 소식을 접했다고 말합니다.

실시간으로 전해진 현장 모습은 또 다른 참가자들의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이하림 / 서울 강남구
유튜브나 스레드, 아니면 인스타그램으로 많이 공유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자주 보고 접하면서 많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장 한편에서는 간식이 제공되고, 자원봉사자들이 물품을 나눠줍니다.

서혜성 / 경기도 안양시
컵라면 후원이 들어와서 저희 매대에 주시면 저희가 물과 김치를 준비해서 맛있게 드시게끔...

질서 유지를 위한 안내도 봉사자들의 몫입니다.

"멈춰 계시면 위험해요.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특정 단체보다는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집회를 떠받치는 모습입니다.


다음 날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참가자가 몰렸던 1-3번 출입구 주변,
전날과 비교하면 참가자 수가 다소 줄었지만, 현장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집회 참가자 / 인천시 서구
6월 3일에 잠실7동에서 사태 발생했을 때부터 (인터넷) 라이브 방송 보다가 그날부터 매일 나오고 있거든요.
(매일이요?)
네, 매일. 화가 나서요.

이번 집회는 6·3 지방선거 당일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촉발됐습니다.
서울 송파와 강남 등 동남권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부족해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최정근 / 서울 송파구 주민(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 못 하는 건 살다 보니까 처음 봤고

투표함은 이틀 만에 서울 송파구 개표소인 올림픽공원으로 옮겨졌고,
이후 올림픽공원에서는 연일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꼽은 주된 동기는 정치적 이념이 아니었습니다.

김도형 / 서울 강북구
이 집회는 좌냐 우냐 정치 이념을 떠나서 옳고 그름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건우 / 서울 동작구
만약에 제가 송파구에 살았고 늦게 선거에 참여했다면 알바를 가느라 투표를 못 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건 차별이다’라고 생각해서

전중우 / 서울 양천구
내 자식이 커서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어서

한상배 / 서울 은평구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게 투표라고 우리는 배웠는데, 정부, 여당, 야당 다 힘을 모아서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가들은 권리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청년층을 움직인 것으로 분석합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 / 경일대 특임교수
이른바 ‘개인주의적 보수’ 또는 ‘이익적 보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2030 젊은 세대들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살다 보니까 본인의 정치적 권리, 경제적 이익이 훼손되거나 손해 보게 되는 경우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고, 아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집회가 계속될수록, 현장엔 또 다른 목소리도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전한길 / 유튜버
(6‧3 지방선거는) 제2의 3‧15 부정선거였고! 이제 우리는 제2의 4‧19 혁명을 선언합니다!

일부 과격 시위 양상도 반복됐습니다.


집회 참가자.1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집회 참가자.2
어유, 진짜 (XX)
집회 참가자.1
너 어디 나라 사람이에요?
경찰
아니, 선생님 (휴대전화) 내리세요.

집회 참가자.3
공무원 신분증 안 가져오면 직무 유기 아니에요? 저희 믿을 수가 없어요. 하도 중국 공안이 많이 돌아다녀서.

진보 단체 소속으로 의심받은 여성이 쫓겨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집회 참가자.4
도시락 먹고 있는데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라고 쫓아냈어요.

봉쇄된 개표소 건물 안에서 훈련 용품을 챙겨 나오던 여자 핸드볼 유소년 선수들은 소지품 검사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5
선수고 자시고, 가방은 확인해야죠!

또, 봉쇄된 건물에 입주한 체육 단체들의 거듭된 호소에도 100여 명의 직원이 20여 일 넘게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했고,
국제대회를 앞둔 선수들은 건물 내에 자신의 장비를 두고 출국해야만 했습니다.

경찰은 잇단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일부 과격 시위로 인한 문제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현장에선 극단적 요구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집회 참여자.6
자유롭게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요! 아시겠어요?
(전한길: 아니, 아까 왜 이렇게 했냐면)
= 아니요! 상관없어요! 젊은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하잖아요 지금!

전문가들은 ‘부정선거’를 믿는 이들과 ‘부실선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들이 집회 현장에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전상진 /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이 두 세력이 경합을 벌이는 거죠. 경쟁을 하는 거죠. 부실선거라고 하는 건 아마도 (집회) 자리에 없는 대부분의 시민이 공유하는 지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정선거라고 하는 부분을 부실 선거라고 하는 주장과 저는 확실하게 대비해서 보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부정선거라고 하는 건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거예요.

한국갤럽이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부실한 선거 관리’에서 비롯됐다고 답한 비율이 67%에 달했습니다. 이는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응답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광장에 선 청년들의 목소리가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내려면, 일부의 극단적인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 / 경일대 특임교수
2030세대가 주도했던 참정권 훼손에 대한 항의 시위라는 부분이 아주 방향성이 분명하거든요. 그런 순수한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부정선거론자들과 선을 긋는다든가, 성조기를 흔들지 않는다든가, 나름대로 본인들이 광장에서의 룰을 조금씩 정해 가고 있는 걸로 보이거든요. 차후에 또 이런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에 모범적인 사례가 되지 않을까.


투표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뒤늦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노태악 /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책임을 통감하면서, 저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습니다.

선관위는 앞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과 직원 특혜 채용, 대선 투표용지 반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대국민 사과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관위의 반복된 부실 행정이, 꺼져가던 부정선거 음모론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상진 /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부정선거 음모론은 작년과 올해로 오면서 상당히 그 힘을 많이 잃었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이번 선관위의 심각한 문제를 보면서, 다시금 맹위를 떨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예측을 해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책임자들에게 엄히 물어봐야 해요. 책임을 추궁해야 해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선관위 수뇌부에 대한 수사 의뢰와 실무자 징계를 권고했습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선관위 개혁에 대한 공감대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우선, 견제받지 않는 선관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외부의 직무감찰을 거부해왔습니다.

그래서 선관위 내부에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거나,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감찰 기능은 조직 내부에도 있어야 하고, 외부로부터도 견제받아야 하고 이런 게 대한민국 같은 민주공화국은 촘촘하게 짜여 있어야 해요.

현재 비상근 중심인 선관위원 체제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지 부족 사태가 터졌음에도, 중앙선관위원 9명 중 단 2명만 출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관행”이라고 해명했지만, 위원들을 상근직으로 대폭 전환해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기 위해선, 개헌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 / 경일대 특임교수
결국은 개헌에 대한 문제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선관위 개혁 방안들이 현실화하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지 않느냐...

이재명 대통령도 ‘원포인트 개헌’을 언급한 만큼, 선관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선관위 개혁이 말뿐인 논의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전상진 /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독립적인 헌법기관이 연루돼있는 사건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우리가 쉽게 질리지 말고, 이 중요한 사안을 특정 정파나 특정인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처럼 관심과 에너지와 성의를 가지고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판단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졌던 세대가 이번에는 누구보다 먼저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김도형(23) / 서울 강북구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관이랑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순될 때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들이 요구한 건, 당연한 걸 당연하게 보장하라는 겁니다.

이세영(32) / 서울 구로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권이라는 게 되게 중요한데 당연히 누려야 될 부분인데도 나라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이렇게 일반 시민들이 나왔구나

언제 끝날지 모를 광장의 외침.

김철환(25) / 서울 송파구
(앞으로도 집회 참가는 계속할 생각인가요?)
어느 정도 정치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선이 오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멈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시간을) 할애하면서 나갈 생각이에요.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답할 시간입니다.

#6.3지방선거 #지방선거 #올림픽경기장 #참정권 #2030 #청년 #선관위 #민주주의 #부정선거 #부실선거 #집회

취재: 임주현 이승종
촬영: 조선기 강우용
편집: 유지영
그래픽: 윤예슬
리서처: 채희주
조연출: 엄희주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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