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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라, 獨 주립극장 총음악감독 맡아 "선배 여성 지휘자들에게 감사"

2026.06.28 10:32

한국인 최초 독일 오페라 극장 총음악감독(GMD) 탄생
자를란트 주립극장 측 '극장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음악감독'
‘330년 역사’ 라이프치히 수석지휘자 거쳐… 2027년 8월 임기 시작
2025년 11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를 공연한 양유라 / 양유라 제공.


23일 독일 자르브뤼켄시의 자를란트 주립극장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성명으로 한국인 지휘자 양유라가 총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계약 기간은 2027년 8월부터 2030/31 시즌 종료 시까지다. 성명에 따르면 양유라는 이 극장 개관 이래 최초의 여성 총음악감독이이 된다.

자를란트 주립극장은 독일 서남부 자를란트주의 주도 자르브뤼켄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이다. 오페라와 발레, 연극, 콘서트를 아우르며 1897년 자르브뤼켄 시립극장으로 개관했다. 현재 사용 중인 본관은 1938년 문을 열었다.

독일 서남부 자르브뤼켄시에 있는 자를란트 주립극장 / 출처. 위키피디아


27일 새벽 한국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휘자 양유라(36)는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에서 막 퇴근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가 지휘한 작품은 모던 발레 <에우리디체>.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와 헨리크 고레츠키 등 두 폴란드 거장의 현대음악으로 구성된 무대였다. 고된 일과를 마친 직후였지만,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그간 한국인 지휘자가 독일 오페라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수석지휘자)를 맡은 사례는 종종 있었으나, 극장의 음악적 방향성과 오케스트라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총음악감독(GMD·Generalmusikdirektor) 자리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독일 자르브뤼켄은 한국 음악계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지휘자 정명훈이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현 독일 방송 필하모닉·DRP)의 수석지휘자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 곳이다. 정명훈이 자르브뤼켄을 떠난 해(1990년)에 태어난 '젊은 마에스트라' 양유라가 약 37년 만에 이 도시의 명문 오페라극장을 책임지게 된 셈이다.

독일 자를란트 주립극장 공식 홈페이지 내 양유라 총음악감독 선임 공지 / 자를란트 주립극장 홈페이지 화면 캡처.


'최초의 유럽 오페라극장 총음악감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앞에서 양유라의 반응은 담담했다. 그는 “최초라는 말은 굉장히 대단해 보이지만,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길을 닦아준 선배 여성 지휘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며 “이제는 저 역시 후배들을 위해 길을 넓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유라에게는 유독 ‘최초’라는 타이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독일에서 아헨, 카를스루에, 라이프치히 극장에 입성할 때도 늘 해당 극장의 ‘첫 여성 수석지휘자(카펠마이스터)’였다. 그러나 그는 이 수식어를 훈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독일 현지에서는 그런 표현을 굳이 쓰지 않는다”며 “다만 여전히 음악계 내 남녀평등이 완벽하지 않기에,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극적인 순간은 2024년에 찾아왔다. 출산 후 불과 6주 만에 베르디의 대작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해 자를란트 주립극장 포디움에 오른 것이다. 양유라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남편의 열렬한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복귀 무대는 훗날 그가 이 오페라극장의 총책임을 맡는 계기가 됐다. 베르디가 남긴 대작 오페라의 모든 음악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순간, 오케스트라 피트가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원들이 발로 바닥을 구르며 보내는 ‘발박수’였다. 독일 극장 연주자들이 지휘자에게 보내는 가장 뜨겁고 격렬한 찬사다.

“처음 만난 오케스트라였음에도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강렬한 유대감이 생겼습니다. 3시간짜리 공연을 치러내며 순식간에 '우리'라는 감각이 마음 깊이 들어왔죠.”

인연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를란트 주립극장은 그를 심포니 콘서트 객원지휘자로 다시 초청했다. 양유라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등을 선보이며 단원들을 매료시켰다. 리허설과 공연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단원들이 먼저 그에게 공석인 총음악감독(GMD)에 관심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당시 그는 라이프치히에서의 커리어에 만족하고 있었다. 음악 활동을 지지해주는 독일인 남편, 두 살배기 딸과의 안정적인 삶을 흔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보내온 강력한 '신호'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단원들과의 특별한 커넥션이 느껴졌습니다. 저를 이토록 신뢰하고 응원해주는 오케스트라를 음악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죠.”

결국 양유라는 별도의 오디션 절차 없이 극장 측의 직접 초빙인 ‘베루펜(berufen·선임)’ 방식으로 GMD 자리에 올랐다. 이례적인 발탁이었다. 한 단원은 계약 성사 후 "만일 당신이 제안을 거절했다면 눈물날만큼 슬펐을 것"이라며 벅찬 감정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처음 지휘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09년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 시절이다. 예술학교에서 전공 학습을 거친 소위 '음악 엘리트'들과 달리, 자신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를 이끌어준 스승이 바로 카를스루에 극장의 GMD였던 게오르크 프리치다. 양유라는 그를 “독일의 아빠 같은 분”이라 칭하며 “10년 전부터 늘 ‘너는 할 수 있다’며 지지해준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지휘자 양유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한국인 최초 독일 자를란트 주립극장 총음악감독(GMD) 선임된 양유라 / 양유라 제공.


양유라의 행보는 독일 오페라극장의 가장 정통적인 지휘자 성장 경로인 '카펠마이스터 시스템'을 고스란히 밟아왔다는 점에서 정공법에 가깝다. 그는 겔젠키르헨 음악극장의 '코레페티토어(Korrepetitor·음악코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코레페티토어는 피아노로 성악가들의 연습을 리드하고 오케스트라 파트를 대리 연주하며 작품 전체의 구조를 골육화하는 핵심 스태프다.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세계적 거장들이 거친 지휘자의 필수 관문이기도 하다.

그의 최대 강점 역시 이 시절 몸에 밴 오페라적 문법이다. 그는 지금도 지휘할 오페라 스코어를 받으면 피아노를 치며 첫 마디부터 끝까지 직접 훑는다. “피아노를 치며 성악가들과 호흡했던 시간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그는 “그때 체득한 감각이 포디움 위에서 오케스트라를 통솔할 때 그대로 배어 나온다”고 자신했다.

이후 킬, 아헨, 카를스루에, 라이프치히 극장을 차례로 거쳤다. 아헨에서는 제1 카펠마이스터 겸 부총음악감독을, 라이프치히에서는 제1 카펠마이스터를 역임하며 바그너, 베르디, 모차르트, 벨리니, 구노, 프로코피에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폭넓은 오페라 레퍼토리를 몸에 익혔다.

그가 오페라 지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총체예술’로서의 균형이다. 피트 안의 오케스트라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무대 위 성악가, 연출가의 해석,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동시대적 메시지가 삼위일체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론이다.

양유라는 “작품의 언어에 따라 해당 국적의 지휘자를 선호하는 관습에서 살아남으려면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지휘자가 이탈리아나 프랑스 오페라의 '본토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역으로 특정 레퍼토리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모든 작품에 진심을 다하는 방식으로 외연을 넓혔다.

“오페라는 수백 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라며 "평소 연출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리는 총음악감독의 역할은 단지 포디움 위에 서는 권위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과거 독일 도시에서 GMD는 그 지역사회 전반의 음악적 삶을 책임지는 자리였다”며 “이 도시의 문화적 동반자가 될 수 있어 기쁘다는 뜻을 독일 언론에도 전했다”고 했다. 앞으로 정규 시즌 외에도 어린이 콘서트와 소규모 지역 커뮤니티 공연에 직접 참여해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힐 계획이다.

자를란트 주립극장에서 맞이할 양유라의 첫 시즌 오페라 프로그램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그는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꼽았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거대한 음향 스타일로 대표되는 작곡가다. 오페라 극장 시스템의 바닥부터 올라와 총책임자에까지 오른 그의 실전 감각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유럽 음악계가 '한국의 젊은 마에스트라 양유라'의 첫 시즌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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