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밀실 선발·회장 4연임 강행… 한국 축구 ‘잃어버린 4년’
2026.06.28 18:48
2026 북중미월드컵을 준비한 대한축구협회의 지난 4년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 진출 쾌거를 이룬 파울루 벤투 감독이 떠난 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의 뒤를 이어 홍명보 감독이 선임됐는데, 이때도 문제는 반복됐다.
감독 선임 과정을 비판하는 여론은 일파만파 커졌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임원들을 상대로 감독 선임 절차가 투명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 사이 정 회장은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규정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기업 총수 한 사람이 4연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의 상식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을 앞둔 평가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며 본선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지 못했다. 결과는 8년 만의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우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결과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국대 감독은 회장님 픽?
축구협회의 문제를 극명히 드러낸 것은 국가대표 감독 선발 과정에서 잇따라 발생한 잡음들이었다. 2023년 2월 선임 당시부터 각종 우려가 제기됐던 클린스만 감독은 1년 만에 전격 경질됐다. 2023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패배한 뒤 패인을 선수단 내부 불화로 돌린 게 결정타가 됐다.
문체부는 감사 결과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대표 감독을 추천하는 전력강화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돼 있었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정 회장과 클린스만이 국가대표 감독직에 대해 사석에서 대화를 나눈 뒤 실제 영입 절차가 진행되면서 정 회장 의중이 작용한 결과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정 회장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나와의 친분 때문에 클린스만 감독과 덜컥 계약했다는 식의 구설에 말릴지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클린스만 경질 이후 국내외 여러 감독을 물색하던 축구협회는 홍 감독이 1순위라며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주호 해설위원은 의문을 제기했다. 감독 추천을 담당하는 전강위원이 감독 내정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문체부 역시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확인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 국민 관심사 된 ‘축구협회’ 개혁
논란이 계속되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024년 9월 축구협회를 대상으로 현안질의를 실시했다. 여야 의원들은 정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주요 인사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협회 관련 의혹 전반을 캐물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축구협회를 향해 날 선 질타를 쏟아냈다.
당시 회의에서 강유정 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공정은 입증 가능한 설명의 영역”이라며 “최종 감독 후보자 3인의 평가에 대한 점수표, 회의록, 채점 결과가 있느냐”고 물었다. 정 회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인사 비리, 인사 불공정, 이 부분에 대해 묻고 있는데, 채점 결과를 못 주겠다고 한다.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 회장은 “우리가 어떤 음모를 꾸미거나 실상을 감추려고 한 것은 아니다.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특정인을 선발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홍 감독도 “감독 선임 등 모든 축구적인 면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켜 대단히 죄송하다”면서도 특혜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이들의 말과 달랐다. 문체부는 지난해 11월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축구협회에서 총 27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 3명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비상근 임원 34명에게 규정과 달리 자문료 명목으로 총 28억원을 지급한 사실과 축구종합센터 건립 과정에서 보조금을 허위로 신청한 사실 등도 추가로 드러났다. 축구협회는 감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한 뒤 현재는 항소를 준비 중이다.
‘무리수’ 4연임과 뒤늦은 사퇴 예고
2013년 처음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지난해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문체부가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 조치를 요구하며 정 회장을 압박했지만 정 회장은 법원에 감사 결과 통보 및 조치 요구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며 맞섰다. 재판부가 이 신청을 인용하면서 효력이 일시 중지되자 정 회장은 그 틈을 타 출마를 강행했다.
회장 선출은 협회 정관에 따라 100명 이상 300명 이내 규모의 선거인단 투표로 이뤄진다. 정 회장은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지만, 민심과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서 ‘체육관 선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23년 3월에는 징계 축구인 100명의 ‘기습 사면’을 추진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경기 1시간 전 보도자료를 통해 축구인 사면 안건 의결 사실을 알렸는데, 사면 대상에 승부 조작에 가담해 제명 등의 징계를 받은 선수 52명도 포함돼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축구협회는 3일 만에 다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사면을 철회했다. 정 회장은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책임은 정 회장을 제외한 임원들의 몫이었다. 협회 부회장단과 이사진 전원이 일괄 사퇴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 회장은 월드컵 개막을 앞둔 지난달 29일, 월드컵 이후 회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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