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브랜드가 없다고? 문제는 '연결'이다
2026.06.28 18:10
대전·시애틀·에든버러 공통점은
브랜드 파워로 도시 정체성 확립
1023일간 임시수도 맡았던 부산
흩어진 자산을 '피란수도'로 꿰어야
피란수도 기억의 길 조성도 한 방법
자조 벗어나 생존·부활DNA 초점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슈가 된 지 좀 지났으니 빵을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었다. 오전 7시도 안 된 이른 시각, 계절 한정 케이크를 사기 위한 행렬은 이미 여러 블록을 지나 끝 모르게 이어졌다. 대기 줄은 한낮에도 줄지 않았고, 골목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성심광역시’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성심당 얘기다.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해 70년을 시민들과 함께 한 성심당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브랜드가 됐고, 낙수 효과는 지역 상권으로 널리 퍼졌다.
이처럼 브랜드 파워가 도시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대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출발지인 미국 시애틀은 ‘커피 도시’라는 정체성과 함께 흐린 날씨와 독서 문화, 커피를 결합한 ‘지적인 도시’ 이미지 구축에도 성공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매년 8월 세계 최대 공연예술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개최 도시이자 해리포터 신드롬을 일으킨 조앤 롤링을 중심으로 한 ‘영감의 도시’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은 공식 마스코트인 쿠마몬으로 도시의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이쯤에서 부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별칭에 갇혔다. 고령화와 청년 유출, 산업 생태계 변화가 겹치면서 제2 도시의 위상마저 흔들린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산이 가진 압도적인 자산을 간과한 결과다. 부산은 강·산·바다가 한 도시 안에 공존하는 리우데자네이루나 케이프타운을 능가하는 지리적 잠재력을 가졌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독보적인 무형 자산이 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10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회복 탄력성’의 원형이자 나라를 지탱한 마지막 보루였다. 임시수도기념관과 정부청사, 유엔기념공원은 그 생생한 현장이다. 절망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삶을 이어간 사람들의 생존 기록이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부산만의 이야기’ 역시 유효하다. 전쟁 기간 부산으로 집결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은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부산의 예술지형을 바꾸고 한국 문화예술의 토대를 지켜냈다. 피란수도의 고단한 일상이 만들어낸 산물인 밀면과 돼지국밥 등은 지역 대표 음식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연결’이다. 대전이나 에든버러, 시애틀 등과 달리 부산은 도시가 가진 자산들을 브랜드로 꿰어내지 못했다. 전쟁 폐허 위에 재건된 구시가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불사조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폴란드 바르샤바처럼 부산도 파편화된 자산을 ‘피란수도’라는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야 한다. 전쟁의 상흔 위에서 피어난 문화예술, 피란의 기억이 담긴 음식과 골목, 우리나라 최고의 물류·산업 도시로 이끈 역동성까지…. 이 모든 것이 ‘피란수도’라는 브랜드 아래 하나로 결집될 때 부산은 ‘생존과 부활, 회복’의 도시로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다.
피란수도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국가 전략으로 격상할 필요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가 공인한 ‘브랜드 인증서’다. 이는 부산을 찾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 후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한 ‘추모 관광’은 부산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산시는 물론 정부도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피란수도 서사를 담은 콘텐츠 발굴과 경제 생태계도 촘촘히 짜야 한다. 성심당이 대전의 대표 브랜드가 된 데는 스토리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빵 탄생 배경을 전시하고 관광객이 그 일부가 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독일 베를린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등 전쟁의 기억을 도심에 배치해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미국 보스턴은 ‘프리덤 트레일’을 조성해 역사적인 명소를 한데 묶고 관광객을 모은다. 부산 역시 야간 문화행사를 확장해 부산항 제1부두에서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마을, 우암동 소막마을, 유엔기념공원 등을 잇는 ‘피란수도 기억의 길’을 설정하고 도보 투어 등을 진행하는 건 어떨까.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적인 행사와 연계하고 AI 기술을 도입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상시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강력한 미식 콘텐츠가 된 밀면과 돼지국밥 스토리에도 힘을 싣고 유통 경로를 다변화한다면 관련 기업들 역시 부산의 얼굴이 될 것이다.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로컬 브랜드와 역사의 생명력을 결합한 ‘부산 브랜딩’, 도시를 먹여 살리는 핵심이다. 부산의 미래는 피란의 기억이 빚어낸 거대한 도시 브랜딩의 결과물이었으면 한다. 자조의 언어를 걷어내고 ‘생존과 부활, 회복’의 DNA를 입은 부산으로 나아간다면, 브랜드가 도시를 바꾼 사례에 부산도 언급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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