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우들의 죽음, 지금도 악몽"…보훈병원 PTSD 진료, 연간 '1000명' 훌쩍 [제복 영웅의 그늘⑤]
2026.06.28 16:00
[호국보훈 심층기획] 제2연평해전 후 24년…참전용사 "큰 소리만 나도 식은땀"
보훈병원 PTSD 진료, 5년 간 5700명 돌파…70대가 절반, '아흔' 넘은 환자도
한동훈 "보이지 않는 상처도 국가가 책임져야…정신건강 회복까지 보훈 확대"
[편집자주] 알고 계시나요. 올해는 6·25전쟁 발발 76주년이자 제2연평해전 24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런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온 몸을 바친 영웅들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시사저널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제복 영웅의 그늘' 기획 시리즈를 통해 참전용사와 유가족, 퇴역 군인·경찰·소방관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현재를 조명할 계획입니다. 영웅으로 불렸지만 제복을 벗은 뒤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보훈 제도의 사각지대 등을 살펴보고, 국가가 이들의 희생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붉은악마'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었던 2002년 6월29일, 한반도 서쪽 바다는 화약과 피비린내 섞인 또 다른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우리 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던 그날의 기억을, 참수리 357정 위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김아무개 대원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저는 그때 23살이었다. 당시 357정으로 갓 전출 왔었는데, 교전 터지기 직전에 갑판장님께서 '분위기가 심상찮다, 긴장해라'로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후 갑자기 북한군이 첫 발을 쏘면서 배가 흔들렸고, 기관총으로 다다다 총 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에 있던 사수가 쓰러지면서 '빨리 엎드려라, 죽고 싶냐'고 소리쳤던 장면이 떠오른다."
전우들의 전사 장면 역시 이들에겐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박제돼있다. "당시 서후원 중사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바닥에 피가 흥건했고, 그가 살고 싶다고 얘기하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 《연평해전》에 나왔던 교전 장면이나 전사 장면들과 90% 이상 일치한다. 삼시세끼 같이 밥 먹고 훈련받던 동료가 머리가 터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면 얼마나 지옥 같은 고통인지 모른다."
M60 기관총 사수였던 곽아무개 대원도 똑같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북한군과 교전하던 중 제 팔에 관통상을 입고 뒤로 튕겨 나갔다. 이후 부사수였던 서 중사가 사격을 이어받았는데, 기관총 거치대가 뚫리면서 가슴을 관통당해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교전이 끝난 뒤 함정 뒤쪽 발칸포에 있던 황도현 중사도 봤는데 얼굴의 절반 이상이 훼손돼있었다. 함께 생활한 전우였지만 그때 얼굴만으로는 알아보지 못했고, 신발을 보고서야 황 중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후 용사들의 삶은 어떨까. 당시 오른팔 골절과 신경 손상을 입고 8개월 동안 입원했던 곽 대원의 팔에는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손가락도 여전히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더 힘든 건 '마음 속 상처'다. 방산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곽 대원은 "지금도 한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늘 마음이 들떠 있는 상태"라며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도 혹시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늘 불안하다"고 전했다.
24년 동안 몸속에 탄알 파편을 지닌 채 살고 있는 김 대원은 "지금도 큰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고, 긴장감과 경계심이 섞여 식은땀이 흐른다. 전쟁 영화가 개봉한다는 SNS 홍보물만 봐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쟁 당시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병명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다. 그렇게 모르고 지내다 수년이 지난 2008년에서야 한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음 진료를 받고 1년 동안 약을 복용했다"고 전했다.
제복 영웅들의 일상 파고든 PTSD…"경찰·소방도 트라우마 심각"
이처럼 전쟁 혹은 공무 중 사고로 발생한 PTSD는 수십 년이 지나도 제복영웅들의 일상을 옥죄고 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실이 국가보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PTSD로 국내 보훈병원을 찾는 외래진료 환자는 꾸준히 1000명을 웃돌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2년 1378명, 2023년 1276명, 2024년 1287명, 2025년 1540명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도 3월까지 이미 252명이 진료를 받았다. 누적 진료 인원만 5733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참전용사들이 많이 포진된 고령층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최근 5년 누적 환자 수 기준으로 70대가 전체의 49%인 279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60대 1010명, 80대 545명 순이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PTSD에 시름하는 환자도 54명으로 집계됐다. 또 50대 423명, 40대 324명, 30대 142명, 20대 414명으로 집계됐다. 전상 외에도 군·경찰·소방 공무 중 사고를 당해 PTSD 진료를 받는 인원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당 통계에 대해 보훈부 관계자는 "보훈병원에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유공자가 진료 환자의 대다수긴 하지만, 유공자 본인이 아닌 배우자·자녀 등 유족도 포함돼있다. 그래서 부모의 사고를 경험하는 등 사유로 10대 환자(누적 25명)도 통계에 포함된 것"이라며 "PTSD는 전상 혹은 공무 중 사고를 당해 생길 가능성이 큰 질병이며 단발적으로 완치되는 병이 아닌 만큼, 향후 보훈대상자들의 PTSD 진료 인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PTSD 증상을 호소하는 참전용사들은 많지만, 이들 중 PTSD를 사유로 국가유공자까지 인정된 경우는 드물다. 한동훈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25년) 보훈대상자들 중 참전군인의 PTSD 국가유공자 상이 요건 심사는 모두 82건 이뤄졌으며, 이중 26건(31.7%)만 요건 해당으로 인정됐고 56건(68.3%)은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 전투와 질병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부족하거나 PTSD 진단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연관기사☞ [단독] "전쟁·참사 트라우마 여전한데"…PTSD 유공자 신청해도 70%는 탈락)
"나라 위해 다쳤는데, 권리 직접 찾아야…국가가 손 내밀어주길"
본인의 고통을 스스로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 속, 참전용사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만큼 국가가 더욱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게 본인들의 고통을 보듬고 책임져주길 원한다. 김 대원은 "PTSD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전우들이 갖고 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만 해도 PTSD가 아닌 몸속 파편창을 사유로 서너 번 신청한 끝에 힘들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며 "다른 동료들은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곽 대원은 "국가유공자 인정 과정에서도 정부가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다. 전쟁 후 의가사 제대를 하면서 몸이 아픈 상태에서도 대구와 분당을 오가며 서류를 준비했는데, 당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며 "하물며 PTSD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선 지원이나 치료가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PTSD 상담 프로그램의 경우 직장인이 참여하기 어려운 방식인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의원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영국 등은 참전군인의 트라우마와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질 영역으로 본다. 우리도 보훈의 범위를 신체적 보상에서 정신건강 회복까지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훈병원 마음치유센터 기능을 강화하고 위탁병원과 지역 정신건강기관을 연계해 거주지와 관계없이 심리상담, PTSD 치료, 가족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금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김 대원과 곽 대원은 이렇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국군 장병들의 헌신은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지금은 본인이 챙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당시에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쳤는데, 또다시 내가 나서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 만큼 이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국가가 먼저 챙겨줬으면 한다. 국민들께서도 연평해전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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