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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시대, 요리사는 없다

2026.06.28 10:48

[한겨레21-전태일의료센터 ‘일 낸다 캠페인’]한겨레21-전태일의료센터 ‘일, 낸다 캠페인’
나의 1, 당신의 하루③ 스타셰프 열풍 뒤 수많은 무명 요리사의 하루
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몸과 마음을 다친 노동자의 ‘하루치 병원비’(2만1천원)를 매달 선결제하는 기부 연대입니다. 내가 낸 ‘1’(일부/하루/노동)로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그가 다시 우리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한겨레21은 ‘나의 1, 당신의 하루’를 매달 다른 필진의 시선을 담은 연속 기고로 전합니다. 이 다정한 여정에 ‘일 내는 동료’로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일 내는 동료가 되시려면 글 맨 아래 정보무늬를 찍어주세요. _편집자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땀에 잔뜩 젖은 채 뜨거운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의 뒷모습을 연필 스케치 일러스트로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언젠가 청소년단체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요리사의 뒷얘기, 이런 주제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농담이랍시고 이런 말로 서두를 열었더랬다.

“요리사들은 김치 담글 때 소금 걱정은 안 해요. 일 끝나고 등에 붙은 걸 쓸어내려서 모으면 충분하거든요, 하하.”

아차 싶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식은땀이 났다. 더러워. 청중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강연을 마쳤는지 몰랐다. 강연을 이어나가면서 주제를 잘못 잡았어, 그런 후회를 했다. 흑백요리사나 미쉐린(미슐랭) 레스토랑의 호화로운 메뉴를 떠들어야 했나 싶었다. 하루 저녁에 100만원짜리 메뉴,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쉐린 스리스타 식당에서 파는 한 접시에 20만원짜리 스파게티 같은 것을 듣고 싶어 했을 테지. 풀 먹여 빳빳하게 다린 재킷을 입고 주방 인원을 통솔하며 폼을 잡는 셰프 얘기를 했더라면 더 좋아했을 텐데 말이지. 후회는 소용없는 일, 어서 강연이나 마치자.

 

찜통 주방에서 땀 흘리는 일상


 

이른바 ‘큐앤에이’(Q&A) 시간이 되었다. 그래, 시간은 흐른다고. 망친 강연이라도 어쨌든 끝은 난다. 나는 힘을 내기로 했다. 질문 두어 개 받아 성의껏 대답해주고 사진을 찍고. 아, ‘코리안 하트’를 손가락으로 만들어서 밝게 웃으면 마치게 될 일이었다.

“요리사님, 주방 일을 하고 나서 소금을 긁어모은다고 하셨는데, 레스토랑에는 샤워실이 없나요? 옷은 어디서 갈아입나요? 밥은 또 어디서 먹어요?”

“멋진 요리를 만들지만 요리사들은 대충 자투리 재료로 밥을 해먹는다는데 왜 좋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식당은 맛있는 게 많이 있잖아요.”

“요리사 월급이 적다고 하셨는데, 음식값은 비싼데 왜 월급이 적죠?”

“고급 식당일수록 요리사가 하루 열서너 시간씩 일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고 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청중 웃음)

“아파도 쉬지 않고 일하는 요리사의 책임감을 말씀하셨습니다.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인가요, 아니면 요리사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헛되이 겉멋이 들어 돼먹지 않은 무용담을 같잖게 떠든 대가를 치르느라 진땀을 흘렸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두서없고, 진실을 말한 것 같지도 않았다. 망친 강연이었다. 아이들이 강사료를 받아야 할 날이었다. ‘흑백요리사’로 요리사는 각광을 받게 된 것 같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바닥을 이룬다. 그 프로그램에 나온 무명의 요리사 수십 명은 ‘스타’의 반열로 이동했지만, 그들이 떠나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역시 무명의 요리사들이다. 요리사들은 노동시장에서도 대우가 가장 낮은 편이며 노동시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지 오웰이 묘사하던,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의 탄광노동자들보다 길었다. 최저임금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많은 요리사가 이 사회에서 제일 낮은 임금보다 더 적게 받았다. 그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실, 식당 일은 노동문제 밖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 그게 세상의 일반적 시각이기도 하다. 그런 차별의 역사를 요리사는 오래 겪어오고 있다. 월차라는 걸 처음 쓸 때 눈치를 봐야 했던 시대를 요리사들은 살았다. ‘반(半)공일’이라 부르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만 하는 일반직을 부러워했던 게 또 요리사들이었다. 토요일은 손님이 많은 날이었고, 더 늦게 일이 끝났다. 요리사가 퇴직금을 받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퇴직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인이 드물었고, 주인이 주려고 해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식당이 1년이 안 돼 망하는 게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이건 지금도 그렇다. 대한민국 식당 가운데 30% 정도만이 개업 1년을 넘긴다고 한다.) 요즘은 ‘알바생’도 꼼꼼하게 쓰는 고용계약서를 과거엔 본 적이 없었고, 일 마치고 옷 갈아입은 요리사를 주인이 불러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말하는 식의 해고 통보가 흔했다. 주인도 영세했고, 업종이 엉망이었으며, 딱히 기술이 없어도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서 시작하는 게 요리 일이었다. 물론 나라도 정부도 형편없는 시대였다.

 

요리사 지망생 쏟아져 들어오지만…


 

여담인데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잠깐 배운 시절이 있었다. 그 나라의 요리사들은 좋은 옷을 입었다. 80수, 100수짜리 면제품으로 맵시 있게 지은 옷을 전문매장에서 팔았다. 실크처럼 몸에 잘 맞고 부드러운 섬유였다. 한국은 오랫동안 5성급 호텔 요리사들도 가마니처럼 거친 30수짜리 성긴 요리복을 입었다. 땀 흘려 일하면 섬유가 등을 빨갛게 쓸어버리는 그런 제품밖에 없었다. 도구와 제복의 질은 대체로 그 직종 종사자가 받는 대접과 인격적 조건을 설명할 때가 많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요리동네는 무언가 어설프고 불안하며 삐걱거린다. 경기가 조금 나빠지면 제일 먼저 휘청거리고 요리사들은 거리에 나앉는다.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어서 종사자가 많고 경기에 민감한 종목이 요리와 식당이다. 늙은 식당 주인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동료들과 한숨을 쉬며 통화한다. 누가 가게를 접고 ‘날일’(일당제) 요리사가 되어 신도시를 떠돈다더라, 누구는 식당을 정리하면서 비싼 집기를 중고업자에게 ‘근으로 달아’ 헐값에 넘기고 못 판 것들은 당근마트에 팔고 있더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 요리동네이건만 끊임없이 요리사 지망생이 쏟아져 들어온다. 기업이 고용을 줄이자 더 많은 젊은이가 서비스 직종으로 유입된다. 죄다 요리하고 커피 뽑고 서빙한다. 소는 누가 키우는가. 요리판은 여전히 버겁다. 에어컨 달아놓은 주방이라도 여전히 찜통이라 등짝에서 소금 털어내는 일이 다반사다. 그들이 꾸는 꿈을 우리 같은 요리 선배들이 실현시켜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좋은 요리복을 철마다 사줄 수 있을까. 퇴직금을 줄 수 있을 만큼 장사가 될까. 아니, 경기가 좀 나아져서 그럭저럭 월급을 제날짜에 줄 수는 있을까. 그들은 그렇다 치고 노후 준비는커녕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늙은 요리사는 차가운 길바닥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요리는 말로 하는 게 아니고 근육으로 하는 것이어서 오래 쓰면 닳아버린다. 어쩌면 그 청소년 대상 강연의 제목을 이렇게 달아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셰프의 시대, 요리사는 없다.”

 

박찬일 셰프

박찬일 셰프


 

‘일, 낸다 캠페인’ 참여 정보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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