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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 삼킨 교실] ① 사채업자가 된 동급생이 엄마를 협박했다

2026.06.28 08:00

"총판의 꿈은 토사장"…교실에서 움튼 도박 사이트 생태계
'따서 갚자'는 친구에 50% 이자율로 돈 빌려준 뒤 "노예화"


친구 권유에 손댔다…온라인 도박에 빠진 10대들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정지수 기자 = "남편한테 잘 이야기해서 돈을 받든지 해. 그 잘난 아들 XX 하나 때문에 지금 돈을 못 받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참교육' 속 사채업자의 대사가 아니다. 시민단체 '도박 없는 학교'가 연합뉴스에 제공한 실제 녹취 속 목소리다.

심지어 이 목소리 주인공은 10대 학생 A군이다.

사이버 도박에 빠져 빚을 진 동급생 B군에게 높은 이율로 소액을 빌려준 뒤 이를 갚지 않자 급기야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일삼은 것이다.

이어지는 대화는 드라마 속 세계보다 잔혹했다.

A군 : B는 꼭 자살하라고 해

B군 엄마 :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꼭…(갚겠다)

A군 : 금요일? XXX아. 나 오늘까지 시간 줄 건데. 여보세요? 대답 안 해?

'총판'에 '사채업자'까지…교실 집어삼킨 도박 생태계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불법 사채업자로 변신한 A군 사례는 청소년 도박이 개인의 일탈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교실이 정교하게 설계된 범죄 생태계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한 것이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10대는 가장 쉬운 먹잇감이다.

또래 문화 특성상 한 명이 중독되면 반 전체, 나아가 학교 전체로 도박이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이트의 '총판'(영업책) 역할을 하는 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일반 학생을 유입시키며 그 대가로 하루에만 최대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드라마 '참교육'이 묘사한 교내 도박 중독 실태가 현실이었다.

'도박 없는 학교' 조호연 원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진짜 공부 못 하고 좀 논다는 학생들은 오히려 도박을 안 한다"며 "소위 일진이라는 학생들이 총판을 해서 도박하는 환경을 만들고, 순진한 애들이 도박에 빠지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총판은 고등학생 때 이미 거액을 번다"며 "그렇게 '토사장'(불법 토토 등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일컫는 은어)이 꿈이 된다"고 전했다. 수십년간 불법 도박 사이트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비결인 셈이다.

정작 도박에 빠진 학생들은 사이트의 조작 탓에 돈을 잃는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일부 학생이 어쩌다 한 번 돈을 따면 '실력'으로 포장돼 우상화가 이뤄진다.

A군과 같은 '고리 사채업자'는 이 틈을 파고든다.

돈을 잃고 초조해진 학생에게 일주일에 50%를 넘나드는 살인적 이자율로 소액을 빌려준다.

돈을 빌린 학생은 이른바 '따갚되'(따서 갚으면 되잖아)의 환상에 빠지지만, 결과는 뻔하다. 빚은 순식간에 수천만원까지 불어나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은 학생은 노예가 된다고 한다.

A군처럼 부모가 협박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빚 탕감을 미끼로 도박 사이트 홍보에 강제 동원되기도 한다.

빚을 갚기 위해 중고 거래 사기, 절도, 심지어 조건만남 사기 등까지 일삼으며 2차 범죄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 2026년 교실의 현주소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과거 도박 중독 청소년 김모군
[촬영 정지수]


한 고교서 48명 자진신고…"15만명 도박경험 추정" 청소년 도박은 음성화된 특성상 정확한 통계 산출조차 어렵다. 그러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경고 신호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최근 경찰청이 한 달간 청소년 사이버 도박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강원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만 무려 48명이 도박 사실을 고백해 지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살면서 최소 1번 이상 도박을 해본 청소년은 15만7천703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찰청이 지난 1년(2024년 11월∼2025년 10월)간 적발한 청소년 도박 행위자 7천153명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만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중학교 때부터 손을 댔던 도박을 최근에야 끊었다는 김모(17)군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박에 빠진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반에서 남자애들의 3분의 2 정도가 도박했다", "학교에서도 대놓고 도박 이야기를 했고 돈을 벌면 친구들끼리 밥도 사주고 그랬다"고 말햇다.

또 "친구들이나 아는 형에게 돈을 빌려 600만원 빚을 졌다"며 "주변에서는 차를 털거나 카카오톡 계정을 팔아 빚을 갚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군은 여전히 도박을 끊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자진 신고하면 처벌을 덜 받는 쪽으로 해서 상담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도 도박에 중독된 10대들이 스스로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사회적 개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8월 말까지 자진신고 제도를 이어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최근 도박 빚 4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모친을 폭행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 15세 남학생, 도박 금액만 1천600만원에 달해 가출과 차량 털이를 일삼던 17세 학교 밖 청소년 등도 자진신고를 통해 중독 치유 과정을 밟고 있다.

경찰은 자진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학교전담경찰관(SPO), 도박 치유 전문상담사를 투입해 선별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중독 치유 전문 기관으로 연계한다.

또 처벌보다는 치유에 방점을 두고, 도박 금액과 반성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찰서별 선도심사위원회를 거쳐 훈방이나 즉결심판 청구 등 최대한 선처할 방침이다.

dh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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