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에 손잡은 미중, 외교적 미아로 전락한 북한
2026.06.28 07:01
● 시진핑 강대국 외교에 김정은, 외교적 좌절
●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의제’는 오르지도 못해
● 백악관 ‘팩트시트’ 공개에 北 패닉과 절규
● “비핵화 앞세우면 평화 위협” 정동영, 안일한 인식
● 韓, 국제공조로 촘촘한 비핵화 전략 수립해야
보도 내용처럼 중국이 북핵 보유를 인정한 회담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의 강대국 외교 앞에 김정은 위원장의 ‘핵 보유 인정’ 요구는 회담 의제에도 오르지 못했다. 한마디로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 자산을 총동원해 시진핑 주석의 환심을 사려는 초청 외교는 본질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북핵 보유를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5월 중순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한 ‘북한 비핵화(to denuclerize North Korea Nuclear)’ 원칙을 지워보려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눈물겨운 노력에 중국 지도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트럼프와 시진핑 북핵 합의의 의미
미국 백악관은 5월 16일 미중 정상회담 합의에 관한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자료)’를 공개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한 공유된 목표(their shared goal to denuclearize North Korea)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 팩트시트란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정책, 행정명령, 법안 서명, 정상회담 결과를 대중과 언론이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해 발표하는 ‘공식 설명문서’다. 백악관에서 공개한 팩트시트가 사실과 달랐다면 중국이 당연히 그 내용에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공식적인 이의 제기는 없었다.양국의 ‘북한 비핵화’ 합의 내용은 몇 가지 부분에서 필자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전문가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첫째,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다. 북한이나 중국은 이전까지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 대신 ‘한반도 비핵화’나 ‘조선반도 비핵화’에 집착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있지도 않은) 주한미군핵과 동시에 다뤄야 한다”는 전략적 용어다. 한반도 비핵화 책임을 미국과 나눠 갖자는 전술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북한 비핵화라는 개념에는 “그 책임이 북한에 있으며, 미국(주한미군)의 책임은 없다”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북한만 비핵화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저절로 이뤄진다는 논리다. 보수 성향의 안보전문가가 이 용어를 즐겨 쓴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정상회담에 소요되는 통상적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시진핑 주석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상당 기간 준비했을 것이다. 4월 8일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구체적 일정을 조율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중국 측은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을 확정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리 내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를 공개하도록 했다.
셋째,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더 큰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담보받기 위해 이란과 북한 등에 대한 미국의 비확산 노력을 지지한 것이다. 중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시진핑 주석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보다는 미국을 선택했다. ‘시진핑식’ 강대국 정치를 보여준 것이다.
백악관 ‘팩트시트’ 공개 이후 북한의 대중국 시위
팩트시트 공개 이후 북한 당국의 핵 관련 행보는 중국 정부, 시진핑 주석을 향하고 있다. 5월 16일 미중 합의 내용이 공개된 이후 북한은 좌절했고, 당황했다. 그 이후 북측은 시진핑 주석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총력적으로 대중 외교를 전개했다.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핵 역량을 과시하고, 외교적으로 팩트 자체가 날조됐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미중 간 북핵 합의의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6월 3일 김정은은 핵물질 생산 공장을 방문하는 사진을 공개하고, 사흘 뒤인 6일에는 여러 종류의 핵무기 투발에 사용될 미사일 생산 증강 계획을 발표하며 핵 강대국의 길을 가겠다는 체제 의지를 과시했다. 같은 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북한 내 관영 매체를 통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첫째,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며,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다. 둘째, 백악관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이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날조이자 망상이며, 허황된 거짓 정보”다. 중국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는데 미국 관리들이 회담 합의 내용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셋째, 핵 무력 정책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만큼 주권 사항이다. 넷째, 북핵은 한미 군사협력에 대응한 자위적 방위력이다.
북한이 받은 엄청난 충격을 담은 내용은 “백악관 팩트시트 내용이 날조됐다”는 주장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이런 주장까지 할까. 북·중 정상회담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할지도 고민했을 것 같다. 중국 당국에 대해 “날조”라는 말을 사용하고, “중국 입장을 잘 안다”고 외교적 절규도 호소했지만 중국 당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북핵 의제 불상정, 미국 승리로 봐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북핵 문제는 북·중 정상회담 의제에 상정되지 못했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의제 불상정 자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는 김정은의 피눈물이고, 시진핑의 승리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확인하고 싶고, 듣고 싶었던 중국 입장을 점검하면 이런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필자의 생각과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인공지능(AI)에게 물었다.Q: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통해 시진핑에게서 간절하게 듣고 싶었거나 명확히 확인하고 싶었던 3가지 핵심 입장은?
A: 첫째,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묵인과 비핵화 압박 중단에 중국이 앞장서겠다. 둘째,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에 대해 중국은 이해하고 있으며 지지한다. 국제적 차원에서 중·러·북의 협력이 필요하며 김정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셋째, 유엔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앞장설 것이며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확대하겠다.
통일부 장관의 북핵 인식, “참으로 한가”
북·중 정상회담이 진행 중인 6월 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피터 셈네비 스웨덴 한반도특사를 만나 “비핵화만 앞세워선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명운을 걸고 ‘핵 보유 인정’ 외교를 전개하고, 시진핑 주석이 강대국 정치의 틀 속에서 북한 요구를 거절하는 외교 전쟁이 진행되는 그 시간에, 정동영 장관은 “비핵화를 앞세우면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다”는 주장을 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정 장관 담화의 시작과 끝, 전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판단하기 힘들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놓고 보면 정 장관의 북핵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한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핵 보유를 인정해야 한반도 평화가 보장된다는 논리로도 해석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2000년대 초반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국제 정세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요 2개국(G2) 시대라는 말을 사용했다. 외교적 수사가 담긴 표현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 격차가 엄청남에도 중국을 경계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기여하도록 이끌기 위해서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서열상 G2가 아닌 공동 1위의 G2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트럼프가 베이징을 찾아 중동전쟁 출구전략 지원을 요청하고, 푸틴이 시진핑을 찾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전략을 논의한다. 국제정치에서 중국의 힘은 인정 여부, 평가 차이를 떠나 이미 미국과 함께 새로운 냉전적 패권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 전술적 입장 등을 제대로 파악해야 국제공조를 통한 북핵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합의하고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북핵 문제를 거론하면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대단히 잘못됐다.
북·중 관계와 북핵 보유 인정 문제 잘 다뤄야
현재 북한은 핵 비확산 전략에 대한 충돌로 이란 당국과 국제사회가 겪는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휘두르는 강펀치가 북한으로 향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그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트럼프의 핵 비확산 정책에 동조하는 전략을 펴면서 트럼프의 방패가 대만 정책을 손상시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거래 속에서는 북한의 핵 보유가 외교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구조를 갖는다.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잘 활용해 국제공조를 통한 비핵화 노력에 성과를 거두려는 전략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 양국 간 정상회담에 숨어 있는 갈등 구조를 외면한 채, 중국이 북핵 보유를 인정했다는 인식과 주장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우리에게 백해무익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치열한 북한 비핵화 의지를 당부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무위원 자격이 없다.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 現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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