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버는 회사들의 바보짓, 성공의 저주[박찬희의 경영전략]
2026.06.28 05:01
잘되는 회사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유능하니 잘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그 운을 잡아서 이루었으니 이 또한 능력이다.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든 세상에 저마다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으니 인정받아 마땅하다.
돈 잘 버는 회사에는 힘이 붙고 사람과 정보가 모인다. 어렵던 일도 쉽게 풀리고 더 좋은 기회를 잡아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기어오르는 경쟁자를 한 방에 제압할 수 있다. 성공의 마패 앞에 어쭙잖은 비판을 하기도 부담스럽다. 이른바 성공의 선순환이다.
그런데 회사가 잘되면 바보짓에 쓸 돈도 많아진다. 일이 잘못돼 문제가 생겨도 잘 드러나지 않고, 좋은 회사 잘난 사람들의 말이라고 다 믿어주니 그럴듯한 말로 대충 때우고 넘어갈 수 있다. 강에 물이 불어나면 바닥에 있는 돌이 안 보이는 셈이다.
◆멀쩡한 사업 기회를 무시
회사가 기회를 제대로 잡아서 큰돈을 벌면 경영자와 구성원의 눈높이가 달라진다. 남들 눈에는 훌륭한 사업 기회도 ‘푼돈 벌이’로 여긴다. 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임직원의 몸값도 치솟으니 요구되는 수익률 기준이 달라져서 어쩔 수 없다지만 멀쩡한 사업 기회를 팽개치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K전자가 (요즘 기준으론 저가형 범용재인) D램 메모리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던 1990년대 말. 디자인, 설계, 조립, 배송, 서비스 등 품은 많이 들고 돈은 ‘별로 안되는’ 가전이나 주변기기 사업이 홀대받는 일이 벌어졌다. 헤어드라이어 하나만 잘 만들어도 세계적 기업이 되는 세상에 따로 떼어 놓으면 여전히 좋은 사업들이고 ICT 생태계의 발전을 생각하면 미래가치도 있지만 순이익 1조원 버는 사람들 앞에서 10억원 남는 사업을 놓고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
기대수익률이 달라졌다면 그만 못한 다른 사업들은 떼어내서 별도의 사업으로 경영하는 것이 답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매각하거나 브랜드와 핵심 기술, 부품을 쥐고 지분을 유지하며 사업 파트너로 둘 수도 있다. 억지로 한 우산 아래 두고 서자 취급하며 멀쩡한 사업 기회를 튕겨버리는 짓은 그야말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셈이다.
높아진 기대수익률은 못 맞추지만 가전사업과 주변기기에 붙어 있는 이권들은 놓기 싫고 덩치 큰 회사를 손에 쥐어야 권세를 누리고 하다못해 구내식당, 매점, 통근버스 이권이라도 챙길 수 있는 심란한 속사정은 없었을까?
한때의 성공으로 돈 많이 번 회사가 현금 쌓아놓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이라면서 막상 하는 일은 없고 키울 만한 사업도 팔아치운다. 내실경영, 나아가 무차입경영까지 내걸고 ‘빚더미 경영’에 식상한 언론과 대중의 찬사를 받지만 사실은 기업역량과 자산을 놀리며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핵심역량, 선택과 집중 운운하지만 성문 닫아걸고 버텨서 지켜낸 전쟁은 인류 역사에 하나도 없다. 주주에게 돌려줘서 더 좋은 사업에 돈이 돌게 해야 마땅하다.
◆한때의 성공, 마법의 절대반지?
운칠기삼이란 말도 있듯이 세상 일에는 운(luck)이 작용한다. 운을 잡는 것도 능력이지만 결과가 좋다고 전략 판단이 완벽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유능함을 확인하고픈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라 한때의 성공으로 스스로를 경영과 기술의 능력자라 생각하고 나아가 운도 늘 자기 편이라 믿는 자기확신이 벌어진다. 인간의 얄팍한 마음을 넘어서 성공에서 자신의 한계를 찾으려면 대단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잘되는 회사에는 세상의 관심이 쏟아진다. 광고와 협찬은 물론 연구용역에 공동사업까지 이어지면 탄탄한 우호세력이 갖춰진다. 어이없는 잘못도 더 깊은 전략이 숨어 있다고 믿어준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잘못은 묻히고 세상 사람들의 칭송 속에 ‘XX가 하면 다르다’는 환상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부족하면 독하고 유능해지는 결핍효과가 사라진다. 넉넉하게 살다보면 쉽게 지치고 맷집도 약해진다. 쓸데없는 짓에 돈과 노력을 낭비하기 딱 좋다.
D램 반도체 호황으로 전례없는 실적을 거두자 성공의 주역들이 K전자는 물론 다른 계열사와 그룹 수뇌부에 진출했다. 세계적 기업을 만든 마법의 절대반지를 기대하는 기사들도 등장한다. 경영의 기본기가 크게 다르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얻은 안목과 경험이 도움이 됐지만 엄연히 사업의 성격이 다르고 관련된 생태계와 이해관계 구성이 다르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기업 간 거래(B2B) 제조업의 방식이 패션사업에 통할 리가 없다. 하물며 경영의 기본기마저 부족한 처지라면.
사실은 새로운 패권그룹이 자리 잡으면서 그들의 아바타를 심는 사내정치였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눈치껏 자리 차지하고 버티는 안쓰러운 속사정도 있었다. 한때의 성공에 동승했지만 계속 함께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른 곳의 자리와 권세로 보상한 결과라면 절대반지는 고사하고 사내 보훈정책이었을 뿐이다.
◆성공의 저주를 피하려면
한때의 성공이 불행의 시작이 되는 성공의 저주는 신께서 당신이 더욱 큰 성공에 걸맞는지 확인하는 예비시험인지도 모른다. 푼돈 벌어 뭐하냐며 무시하던 사업이 다른 곳에선 미래 먹거리가 되고, 어쩌다 행운이 스쳐간 얼치기 능력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권세를 부리면 바보들의 합창이 따로 없다. 문제를 조기에 찾아서 해결할 기회마저 놓친다면 남다른 건강 때문에 불치병을 늦게 발견하는 꼴이다.
경영자가 아무리 유능해도 조직의 현실이 있다. 잘될 때 격려해야 더 잘하니 ‘운 좋았을 뿐 정신 차리라’고 야단칠 수도 없다. 돈 잘 버는 회사에 뭐라도 기대하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찬사와 존경의 건수를 계속 찾는다. 성공의 저주를 피하는 지혜를 생각해보자.
첫째, 풍족함 속에서 경영자와 구성원이 ‘배부른 기득권’이 되지 않도록 까칠한 긴장을 유지한다. 높아진 기대수익률에 맞는 사업에 집중하고 결과에 책임지게 만든다. 좋은 사업은 막강한 경쟁자들의 판이니 게으를 여유가 없다. 불필요한 여유자원이 문제를 가리지 않도록 나사를 조인다.
기준에 못 미치는 사업은 과감하게 새로 떼어내 독립시킨다. 험난한 길이지만 브랜드와 사업 기반이 있으니 여전히 돈이 되고 새로운 도전에서 더 큰 기회를 찾는 인재에게는 신천지가 열린다. 도전과 긴장이 있으면 절대반지 능력자라 착각하는 자만과 허영이 파고들 자리가 없다. 맡길 사람이 없다면 사업을 더 잘할 곳으로 보내거나 투자자가 되어 남은 가치를 챙긴다. 몸에 안 맞는 옷도 누군가에게는 천하 명품이 될 수 있다.
둘째, 과거의 성과를 자리로 보상하면 미래를 망친다. 충성과 업적을 권력자본으로 삼아 계속 누리려 드는 정치게임이 된다. 과거의 경험치가 그것도 전혀 다른 일에 기준이 되면 잘될 수가 없다. 10년 전 고교야구 스타에게 프로농구팀 감독을 맡기는 셈이다. 회사는 출세해서 누리는 곳이 아니라 사업해서 돈을 버는 곳이다. 좋은 회사의 폼나는 자리가 존경받는 세상도 아니다.
셋째, 파격적 보상으로 남다른 능력을 끌어들인다. 그의 회사와 팀을 인수해서 보상할 수도 있다. 회사 안에서 혁신적 성과의 싹이 보이면 독립시켜서 걸맞은 보상을 하고 동맹군으로 삼을 수도 있다. 넉넉한 여건에서 누리려 드는 고인물들의 판이 되면 회사는 순식간에 노곤해진다.
남의 귀한 돈 쓰면서 맘 편히 성공의 기억이나 되새김질한다면 도둑질이 따로 없다. 부스러기 권세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퇴직자 동호회에서 그럴듯한 말 가득한 경영학 책이나 읽는 편이 낫다. 노곤하지만 해롭지는 않으니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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