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집들이 식탁에 오른 청국장, 인도네시아 청년의 놀라운 반응

2026.06.27 19:26

낯선 음식 하나가 위로가 되고, 서로의 이야기가 한솥밥이 된 점심【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들이 메뉴가 청국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음식보다 한 사람의 표정이 먼저 걱정됐다. 한국 회사에 다니는 인도네시아 청년이었다.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나 잡채는 먹어봤지만 청국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괜히 내가 더 긴장됐다.

열 살 무렵 추석에 큰집에서 처음 청국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어머니가 직접 끓이신 청국장이었는데, 냄새부터 먼저 맡고는 "양말 빠는 냄새 같아요"라고 했다가 어른들께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그때는 왜 혼나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청국장은 어린 나에게도 낯선 음식이었다.

올해 초 외아들을 한국으로 대학 보낸 지인의 새집이었다. 이제는 부부 둘만 남은 집. 언젠가 나도 딸을 떠나보낼 날이 오겠구나 생각하며 집 안을 둘러봤다. 주방에서는 먼저 도착한 이웃이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고 있었고, 집주인은 수육을 썰고 나물을 무치느라 분주했다. 나는 올리브오일과 커피 원두를 인도네시아 전통 바구니에 담아 선물했다.

본격적으로 청국장이 나오기 전, 나는 그 청년에게 미리 말했다.

"오늘 메뉴가 청국장인데 된장찌개와는 조금 달라요. 인도네시아의 뗌뻬(tempe) 있잖아요.
청국장은 뗌뻬의 사촌쯤 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뗌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 콩도 좋아하고 뗌뻬도 정말 좋아해요. 기대돼요."

식탁에 오른 청국장... 이거 괜찮을까?

 청국장이 주인공인 집들이 음식
ⓒ 전세정

드디어 청국장이 식탁에 올랐다. 다행히 요즘 나오는 청국장은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그렇다고 아예 청국장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여서 나는 숟가락을 들기 전 인도네시아 청년의 얼굴을 먼저 바라봤다.

그는 첫 숟가락을 조금 떠먹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두 번째는 두부를 함께 떠먹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동그래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는 금방 빈 그릇을 보이며 조금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우와 이 음식 저를 위로해주네요."
"왜 그렇게 느꼈어요?"

나는 신기해서 인터뷰하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그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은 요즘 회사에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 되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걸 먹으니까 '괜찮다',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혹시 더 먹을 수 있느냐는 말에 집주인은 청국장을 냄비째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여러 번 국자로 청국장을 떠먹었고, 우리도 마음 놓고 연신 숟가락을 움직였다.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와 살짝 씻어낸 신김치, 듬성듬성 썰어 넣은 두부와 달큰한 애호박이 한 냄비에 어우러져 있었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다들 청국장의 상표를 궁금해했다.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누군가 묻자 집주인은 한국에서 사 온 제품이라며 주방에 들어가서 포장된 청국장을 보여주며 상표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휴대전화가 꺼내졌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사 오겠다며 모두 사진을 찍는 모습이 웃음이 났다.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그 청년이 준비해 온 인도네시아 전통 떡이 식탁 위에 올랐다. 쌀가루, 코코넛 밀크, 설탕을 섞은 반죽을 바나나 잎에 싸서 찐 나가사리, 코코넛 소를 넣고 돌려 만 다다르 굴룽, 그 옆에는 고구마를 베이스로 만들어 쫀득한 꾸에 딸람 우비부터 하얗고 붉은 딸람류가 둥글게 줄지어 있었다.

한 쟁반에 색과 모양이 다른 떡들이 가득했다. 인도네시아 십년 넘게 살았지만 처음 보는 디저트들도 있었다.이번에는 우리가 하나씩 질문했다.

"이건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식사를 하며 나눈 마음... 청년이 남긴 메시지

 인도네시아 떡
ⓒ 전세정

조금 전까지는 우리가 그의 청국장 반응을 궁금해했다면, 이번에는 그가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떡을 맛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장생활 6개월 차인 그 청년은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우리는 오래전 각자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꺼냈다. 실수했던 이야기부터 버티기만 했던 시간들 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한 분이 말했다.

"무조건 참기만 하지 말아요. 잠깐 멈춰도 괜찮아요. 나도 그땐 일을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더라고요. 그때 참지 말고 좋아하는 걸 찾을 걸..."

말이 끝나자 식탁은 잠시 조용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꼭 그 청년에게만이 아니라, 각자의 지난 시간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년도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봐야겠다고. 집들이에서 청국장을 먹게 될지, 인도네시아 청년이 가져온 전통 떡을 나눠 먹게 될지, 그러다 그의 직장 고민까지 함께 나누게 될지는 몰랐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밥을 먹는다. 축하할 때도 밥을 먹고, 위로할 때도 밥을 먹고, 오랜만에 만나도 "밥 한번 먹자"는 말부터 건넨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내어준다는 뜻이고, 같은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문득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이 떠올랐다. 길에서 만난 이들을 하나씩 도우며 만나고, 마지막에는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나누던 이야기.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단체 대화방에 그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꼭 제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요."

아들을 떠나보내고 텅 비었을 그 집이, 그날 하루는 가장 시끄럽고 가장 환한 집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서로의 식탁을 오가며, 누군가의 밥을 받아 먹고, 다시 누군가에게 밥을 건네는 마음이 이어질 때마다 완성되는 한솥밥이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오마이뉴스의 다른 소식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2시간 전
중3 남학생의 첫 문장이 준 충격... 독자들은 왜 지갑을 열었나 [썼으면 고쳐야지]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5시간 전
"늦어지는 대전 산내 골령골 평화공원, 조속히 착공해야"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6시간 전
교사가 만든 시험에 '족집게' 강사 찾는 아이들... 이상합니다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9시간 전
'변해버린' 카오산로드의 맛, '변치않은' 족발덮밥의 맛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일 전
'오마이뉴스 기자 사칭' 알린 뒤에도 영상 안 내린 JTV, 뒤늦게 비공개 처리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일 전
유아 '독서사업' 이름이 "슈퍼파워, 북크닉"?...'외국말 남용' 논란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1일 전
보령 석탄화력 발전소 주변 주민들, 기준치 10배 비소 검출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2일 전
"반도체 광주 몰빵 안 돼" 전북 분산 배치론 나와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2일 전
최민희 "김어준에 의제 뺏긴 재래식 언론, 민주당 분열 비집고 들어와"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2026.06.08
교육감 당선인 14명, 교원 정치기본권 '찬성'...88% 압도적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