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만든 시험에 '족집게' 강사 찾는 아이들... 이상합니다
2026.06.27 15:31
| ▲ 시험기간이 되면, 아이들은 부리나케 학원에 간다. (AI생성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시험이 코앞에 닥치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던 급식소가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평소 저녁 급식을 먹는 아이들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안 보인다. 이즈음엔 방과 후 수업도 듣지 않고,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하교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리나케 학원에 간 것이다. 이곳 광주 지역 고등학생의 경우, 대개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수요일과 주말에 학원에 가지만, 시험 때는 예외다. 학원마다 '특강'과 '보충'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다.
시험 때 학교를 제쳐 두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적이 당황스럽다. 정작 시험을 출제하는 이는 학교 교사인데, 학원 강사에게 의존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한 아이는 자신이 다니는 학원의 강사가 주위에서 '족집게'로 소문이 자자하다며 으스댔다.
시험 문제 유출? 그건 아니겠지만
시험은 교사가 출제하고 힌트는 학원 강사가 주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교사가 학원에 시험 문제를 사전 유출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엄벌을 피할 수 없는 중죄인 데다 수강생이 다수인 학원의 경우엔 결국엔 꼬리를 밟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서야 교사가 스스로 학원에 자신이 출제한 시험 문항을 빼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과외 교습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가 재학하는 것조차 엄금된다. 교사에겐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험지에 대한 학교의 보안도 엄격하다. 몇 해 전 서울의 이른바 '쌍둥이 여고생 시험 문제 유출 사건' 이후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시험 출제부터 인쇄, 고사장 별 분철, 보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CCTV로 녹화하고 있다. 그동안 교사는 스마트폰을 몸에 지녀서도 안 된다.
또, 각 교과 시험지의 말미에는 저작권에 관한 규정을 명시해 놓고 있다. 시험 문항은 관련 법령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전재와 복제는 금지되며, 이를 어길 시 처벌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저작권은 학교와 출제 교사에 있으니, 절대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족집게'라는 소문이 나돌 수 있을까. 우선 아이들의 뒤를 캐보기로 했다. 그들이 공부하는 학원의 교재 중에는 시중 서점에서 판매하는 참고서나 문제집도 있지만, 학원의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교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프링 노트로 갈무리된 두툼한 교재엔 각종 시험 문제가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다. 개중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항도 많다. 어차피 교과마다 기존의 문항 형식에 괄호를 옮기고 숫자만 바꿔서 출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익숙함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고래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건 우리나라의 시험 문제를 두고 한 말일 성싶다. 학교 시험은 수능 유형을 따라가고, 학원은 '영업 전략'으로 학교의 시험 유형을 베끼는 현실이다. 한 아이는 학교 시험이 끝난 뒤 학원에 자신이 치른 시험지를 건넨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교사가 퇴직 후 학원을 차리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엔 교권 추락의 영향인진 몰라도 기간제 교사의 경력을 활용하여 학원에서 강의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심지어 정규직 교사인데도 과감히 사표를 내고 학원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몇 해 만에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는 30대의 젊은 교사도 본다. 그들은 퇴직과 동시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학원을 차린다.
학교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운영하는 학원이라면 '족집게' 노릇을 톡톡히 할 수도 있다. 그들이 차린 학원에는 그들의 교사 경력을 내세우는 게 불문율이다. 방송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셀럽'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교사 출신의 학원 강사가 사교육 업계에선 인기다.
그런가 하면, 성적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이 더 '족집게'라는 말에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듯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도는 소문을 마치 사실인 양 둔갑시키는 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의외로 힘이 세다.
명문대에 진학한 수강생의 명단을 적어 내건 현수막은 더욱 그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기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명단엔 허수가 많아서 믿을 게 못 된다. 중복 합격자를 대학별로 여러 건인 것처럼 기록하는가 하면, 학원을 달랑 한 달만 다니고 그만둔 경우도 포함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니 정확히 확인할 길도 없다. 대개 재학 중인 학교가 어디인지는 밝히지만, 이름만큼은 성씨만 적고 나머지는 동그라미를 쳐서 가린다. 학원 현수막의 이름을 다 합하면 인근 학교의 학생 수보다 많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는 상황에서 '족집게'라는 평판은 가장 손쉬운 선택 기준이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입소문의 특성상 학원의 광고를 되레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영업 사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상담 환영'을 내건 학원 강사와의 상담은, 적어도 우리 교육의 현실에선 갑과 을의 처지가 뒤바뀌기 십상이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일단 그들과 성적과 관련된 상담을 시작하면 설득을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부모들은 불안을 부추기는 그들의 언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불안 자극하는 사회... 학원을 끊지 못하는 이유
오로지 한 줄로 세우는 성적 경쟁에서 사교육은 절대 '논리'로는 밀릴 리가 없다. 아이의 성적이 오르면 물론 학원 덕분이고, 혹 성적이 주춤한다고 해도 고개 떨굴 필요는 없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면, 더 떨어졌을 거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들이 학원을 끊지 못하는 이유다.
여기에 '공교육 붕괴'라는 여론전을 은근히 부추기면서, 그들을 학원에 더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게 한다.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도, 우울한 학교생활도, 심지어 이기적 심성과 피폐한 정서조차도 죄다 학교의 책임으로 돌린다. 학원은 마치 무너진 공교육의 '대체재'인 양 행세한다.
허황한 '족집게' 주장에 휘둘려 밤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는 현실을 더는 방치해선 곤란하다. 당장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낮춰야 한다. 오로지 대입을 위한 변별 도구로만 기능하는 시험이라면 더는 평가로서 의미가 없다. 평가란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 변화를 확인하는 게 핵심이다.
교육의 본령까지 들이대지 않더라도 대입을 위한 현재의 수능식 평가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시험을 대비해 출제 빈도와 유형부터 분석하는 현실은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AI가 불과 몇 초 만에 정답을 찾아내는 시험이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족. 27년 경력의 교사로서, 불안에 시달리는 학부모에 조언 한마디 건넨다.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노력'을 요구하기 보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여유를 주는 편이 낫다. 그게 아이의 미래 삶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계량화된 지표로 환산되는 '공부 머리'가 진짜 실력을 의미하지도 않을뿐더러 아이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아이의 재능을 모르니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지만, 그래서는 평생 불안을 떨쳐낼 수 없다. 남들과 같아지려 할 때, 그 삶은 가장 먼저 AI로 대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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