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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남학생의 첫 문장이 준 충격... 독자들은 왜 지갑을 열었나 [썼으면 고쳐야지]

2026.06.27 19:21

[썼으니 고쳐야지] 완벽하고 싶은 마음보다 우선 생각할 것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 <기자말>

글 쓰는 사람들은 자주 망설인다. 이렇게 써도 될까? 좀 유치하지 않나. 내 이야기에 공감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이대로 글을 마무리 지어도 될까? 이런저런 이유로 발행 버튼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린다. 그러다 임시저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글이 한두 개쯤 있을 거고(나 역시 그렇다).

A4 한 장. 하얀 바탕의 빈 화면에 글자를 겨우 채워 넣었건만 이게 끝이 아니라니. 고치는 일이 남았다니. 그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니. 대략 난감이다. 좌절감이 든다. 그렇게 방치한 게 며칠. 수정을 하려고 모니터 화면에 띄운 한글 파일엔 '내가 쓴 게 맞나' 싶은, 부족한 점 투성이의 글자들만 보인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나 싶은데 더 큰 문제는 드러난 문장보다 숨어있는 마음이다.

'뿌리치기 어렵다'는 말의 속내

 문장 아래 숨은 마음들.
ⓒ glenncarstenspeters on Unsplash

잘 보이고 싶은 마음(대체 누구에게), 많은 독자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욕심이다, 욕심이다, 내려놓자, 내려놓자를 되뇌면서도 그렇다), 내 의도가 잘 전달되게 하고 싶은 마음(매번 맞닥뜨리는 어려운 일),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을까 조심하게 되는 마음(돌다리도 두드려 보며 한 걸음씩), 내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마음(들킬까 봐 괜히 두근두근), 솔직하지 못한 마음(모두가 자신의 가면과 싸우고 있다) 등등. 문장 아래 숨은 마음들이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 '너, 이제 어쩔래?'

사실 AI 시대에는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퇴고 과정에서 도움을 받으면 문장이 매끄러워져서 AI의 도움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누군가의 고백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 오히려 솔직해서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궁금했다. '뿌리치기 어렵다'는 말에 담긴 진짜 속마음. 짐작컨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미숙'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정확한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 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같은 서술어가 반복되는 것을 피하고 싶고, 다양한 어휘력을 구사하고 싶으며, 완벽할 리 없겠지만 그 근처에는 있고 싶은 마음. 실수를 허락하고 싶지 않은 마음. 비문이나 오자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 부족한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한 마디로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의 집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있기 어렵다. 자꾸 나를 내친다. 내칠수록 나는 작아진다. 내가 쓴 문장보다 잘 정돈해준 AI 문장이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주객이 전도된다.

그럴수록 나는 거기서 글의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확히 봐야 한다. 그리고 판단해야 한다. 저 문장에 내가 있는지. 내 경험이, 내 사유가, 내 고민의 흔적이 있는지. 그게 없다면 다시 퇴고해야 한다. 다시 고쳐서 내 문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 글이다. 나로 서는 방법이다.

'완벽한 글'이란 대체 뭘까. 문법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난 글? 비유가 알맞은 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글? 메시지가 좋은 글? 새로운 관점? 완벽한 글은 항상 좋을까. 그렇지 않은 글보다는 낫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그렇다면 좋은 글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자기다운' 글이다. 얼마 전에 중3 남학생이 쓴 글 같은. 나는 그가 쓴 첫 문장을 잊지 못하겠다.

독자는 '진짜'에 흔들린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 얼마 전, 어머니가 휴대폰을 떨어뜨리셨다. 화면은 산산조각이 났고 전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괜찮을 줄 알았다. 휴대폰 하나쯤은 어떻게든 다시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 "40만 원 더 내셔야 합니다" 핸드폰 사러 간 아버지가 그냥 오던 날 기사 일부.

아침부터 '울컥' 하는 마음을 누르며 원고를 끝까지 봤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 첫 문장 '우리 집은 가난하다'를 지울까, 말까 여러 번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두 글자, 용기였다. 용기 있는 글이어서 내 마음이 흔들렸던 거였다. 가난을 부끄럽다고 생각했으면 쓰지 못했을. 이 학생이 글을 쓴 것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다정한 위로'로 '절망보다 희망을 더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용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돈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의 이 절망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가족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학생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속으로 응원했다. 첫 문장을 지울 이유가 없었다.

이 학생에게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까.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그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솔직히 쓰는데 집중했을 거다. 나 역시 부족한 내용을 채워서 완벽한 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중3 남학생다운 글이었으니까. 기사가 나가고 내가 그랬듯 학생을 응원해주고 싶은 이모, 삼촌들이 생겼다. 좋은 기사 원고료가 20만 원 가까이 붙었다(2026년 6월 3일 기준). 용기 있는 글이 일으킨 반향이다.

 좋은 기사 원고료가 이어졌다.
ⓒ 오마이뉴스 갈무리

달리는 동안의 나는 꾸며진 나가 아니라 살아있는 나에 가깝다. 그 상태에서 떠오르는 문장은 대체로 솔직하다. 멋내지 않고, 덜 포장되고, 대신 정확하다. 날것이 되려 생생함을 전해준다. 우리가 '정답'에 감동하는 게 아니라 '진짜'에 흔들리는 이유다. - 안정은, <언젠가 달릴 수 없게 된다 해도>.

'달리는 동안의 나'와, '쓰는 동안의 나'가 다르지 않다. 달리는 안정은 작가의 반대편에 글 쓰는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가진 '진짜'로 독자를 뒤흔들고 싶다. 퇴고는 바로 이런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작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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