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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완성
결혼의 완성
'사회적 번민' 멈추고 15년 간 돈벌이에 몰두한 톨스토이가 남긴 말

2026.06.27 19:21

[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가족이란? ① 사적인 안식처
 페르디난드 게오르그 발트뮐러 <행복한 가족> 1856년
ⓒ 퍼블릭 도메인

인문학이 거창하고 어려워 보이는 주제만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학문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없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주제를 의문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 삶에 중요함에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간과하기에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긴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 보여 평소에 별생각 없던 인문학 주제 중 하나가 '가족'이다. 절대적 가치라고 여겨지는 가족이 왜 문제가 되는가?

우리의 통념은 가정이 개인의 안식처라는 시각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페르디난드 게오르그 발트뮐러(1793~1865)의 <행복한 가족>은 이러한 관념을 잘 보여준다. 화목함이 배어있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그림의 중심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있다. 부인이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며 돌본다. 아이가 젖을 먹은 후에 엄마랑 놀자고 하는 듯하다.

가족은 인문학의 주요한 논의 대상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막내였을 아이가 엄마 무릎에 기대앉아 신기한 듯 동생을 본다. 맏이가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도 있다. 동생들에게 책을 보여주며 무언가 열심히 설명한다. 뒤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는 모습에 뿌듯한 눈길을 보낸다. 어린 손자가 아기에 대해 무언가 질문을 하자 친절하게 응답한다. 남편은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어디 한 군데 그늘이나 갈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을 만나는 느낌이다. 아이들 아빠가 일이 끝나고 퇴근하고 돌아온 이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게 저절로 그려진다. 그 한순간에 종일 일하면서 쌓인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져버리리라.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험한 세상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를 지켜주고 행복을 누리게 해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발트뮐러는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자주 화폭에 담았다. 한편으로 개인적인 취향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문화적인 분위기와도 닿아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나타난, '비더마이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린다. 비더마이어는 원래 가구 양식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기존 귀족들의 화려한 가구를 탈피하여, 최소한의 장식으로 실용적인 가구를 지향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속되는 정치적 격변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를 찾는 경향이 생겼다. 거대 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기쁨을 찾으려는 유행이 생기던 19세기 초중반을 '비더마이어' 시대라 부른다. 비교적 소박한 디자인이라 중산층 가정에서 소유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흐름을 표현하는 상징적 단어가 되었다.

19세기 초중반은 혁명과 반혁명이 되풀이되면서 서로의 피로 얼룩졌다. 거리의 바리케이드에서, 처형장의 단두대에서 피를 쏟았다. 수많은 사람이 정치적 환멸감에 빠지기 충분한 사회적 조건이었다. 게다가 산업혁명과 함께 맹렬한 근대화의 물결까지 덮치면서 격변하는 대도시 생활에 대한 환멸까지 더해졌다.

이에 따라 예술 분야에서 정치적·사회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시도가 생겼다. 소시민적인 생활의 행복을 찬양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미술에서는 복잡함과 갈등으로 점철된 대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의 자족적인 삶을 동경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넘치고, 여러 세대가 조화를 이루는 안식처로서의 가정을 묘사하는 그림이 많았다. 가정의 행복을 그린 발트뮐러의 여러 작품도 그 일환이다.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는 가족

작은 행복을 주는 가족은 사회의 지각 변동과 거대한 담론에 지친 사람들에게 엄청난 흡입력을 갖춘 도피처였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 은밀한 안식처로 들어가는 순간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 요소라든가 세상의 보편적 가치와 벽을 쌓는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톨스토이가 <참회록>에서 고백한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결혼 생활로 들어섰다. 행복스러운 가정생활의 새로운 많은 조건이, 인생의 보편적 의의에 대한 탐구에서 재빨리 나를 떼어냈다. 내 생활 전부가 가정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따라서 그런 생활의 자본인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 가족이 되도록 행복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나의 유일한 진리를 주장했다."

농노제의 참상을 비롯하여 러시아 후진성을 목격하며 늘 번민에 휩싸여 살던 톨스토이가 결혼 후에 가정의 달콤함에 빠져드는 순간 모든 게 변했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보편적 가치의 규명과 개인적 완성 열망을 품고 진지한 모색에 몰입했다. 보편적인 가치가 자신을 찾고 나아가 세상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가정에서 안식을 찾는 순간 '보편적 의의에 대한 탐구'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내·아이와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하고, 가족이 풍요를 느낄 수 있도록 돈을 버는 일에 몰두했다. 일시적인 감정이나 현상이 아니었다. 스스로 "이리하여 15년의 세월이 지났다"라고 토로한다. 이후 다시 삶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만, 가정이라는 정신적 도피처는 15년 동안 그를 사회에서 떨어진 고립된 섬에 머물게 했다.

톨스토이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니다. 우리도 청소년과 청년 시절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설계한다. 비록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의 쓰린 맛을 보더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이 걷지 않은 길로 발을 내딛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가족을 구성하는 순간 인생관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안정된 직장으로 시야가 고정된다.

인류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여성의 경우는 가족을 통해 만족을 구하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여성 가운데는 비교적 최근까지 아예 청년 시절의 전망을 접고 가정에 눌러앉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만큼 가정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강력하다. 삶의 보금자리이며 안식처라는 생각이 내면을 휘어잡는다.

 페르디난드 게오르그 발트뮐러 <할아버지 생신> 1849년
ⓒ 퍼블릭 도메인

발트뮐러의 <할아버지 생신>에는 위의 그림에서 참석하지 못했던 아이들 아빠도 함께 있다.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까지, 3대가 한 자리에 모여 북적거린다. 오른편 문으로는 밖에 나가 살던 또 다른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막 들어오는 길이다.

나이가 다르고 살아가는 조건을 다르겠지만 끈끈하게 하나로 이어진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가족의 사랑과 정으로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전달된다. 여기 어디에도 낯선 시선, 불안과 경계의 시선은 발견할 수 없다. 서로 보듬어 주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어떤 경우에도 애정을 거두지 않을 분위기다.

가족은 세상과 구분된 사적인 공간

대체로 우리는 가족을 절대화한다.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중심으로, 일차적인 가치로 여긴다. 가족의 우애와 이익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판단한다. 만약 누군가 여기에서 벗어나면 화를 낸다. 나아가 개인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나는 원초적 터전이라는 점에서, 가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위험한 사고방식으로 규정된다.

우리 통념으로는 본래 가정은 세상과 구분된,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인류 초기부터 가족은 항상 외부로부터 차단된 은밀하고 독립적인 관계라는 절대적 믿음이 지배한다. 하지만 독일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가정의 성격이 역사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발트뮐러가 미술작품으로 대변한 '비더마이어 시대'도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유행 중 하나다.

"'작은 것'에 대한 근대인의 기쁨은 20세기 초의 시를 통해 유럽에 설파되었지만, 고전적 모습은 프랑스 국민의 '작은 행복'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네 벽의 공간 안, 즉 보석상자와 침대, 탁자와 의자, 개와 고양이 그리고 꽃병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며, 나아가 이를 보살피고 애정을 갖는다."

그녀가 말하는, '작은 행복'을 좇는 경향은 '비더마이어 시대'와 유사하다. 20세기 초반에 가정이라는 안식처에 안주하던 현상이 있었는데, 이미 19세기 초중반에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나타난 유행의 다른 모습이었다. 집이라는 네 벽의 공간 안에서 마음에 드는 실내장식과 가구를 갖추고,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재롱을 보는 것으로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는 이를 '비더마이어' 양식으로, 프랑스에서는 '작은 행복'을 의미하는 '쁘띠 보뇌르'로 불렀다.

이를 통해 가족이 모든 인류에게 같은 태도와 관계로 나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고방식이 마치 유행처럼 일부 나라에서 시작되어 다른 나라로 번지는 현상이 나타나니 말이다. 또한 대부분의 유행이 그러하듯이 가족을 둘러싼 태도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변화 과정을 겪는다는 점도 드러난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지역이나 나라에 따라 변화한다면 가족을 사적인 안식처로 절대화하는 관념은 의심스러운 처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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