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왜 작품에 빌런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연극 ‘사사로운 사서’의 강현주 연출
2026.06.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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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사로운 사서’의 극작·연출 강현주. 유희태 기자 |
데뷔조차 못 할 줄 알았다지만 연출마다 방식도 스타일도 만나는 디자이너와 배우도 달라 그 다양함을 지켜보는 재미가 컸다고 강현주는 조연출 시절을 돌아봤다.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폭력’을 무대에 올리는 방식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같은 해 선보인 ‘시장극장’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시장 구조 자체를 무대로 끌어들여 공간 연출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에는 일본 소설가 미우라 시온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배를 엮다’에서 출판사 직원들이 13년에 걸쳐 국어사전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변하는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소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렸다. 2023년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한 장편 희곡 ‘잘못된 성장의 사례’에서는 지방 소도시 국립대학의 식물 연구실을 무대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식물에 저마다 다른 시선을 보내는 연구자들을 통해 ‘걱정을 가장한 편견’을 들여다봤다. 이러한 길을 걸으면서 젊은 연출가는 리서치에 기반해 작품을 빚는다는 평판을 얻었다.
‘사사로운 사서’는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도서관을 다루려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 신작의 배경으로 중학교 교내 도서관을 떠올리며 사서교사들을 찾아보다가 그들이 쓴 책에 빠져들었다. “장서를 선정하는 과정도,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야기도 소소하지만 재미있더라고요.”
작품을 보노라면 도서관 중에서도 보존서고를 향한 작가 겸 연출가의 각별한 애정이 보인다. 남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책들이 모인 곳이다.
“‘배를 엮다’를 준비하며 사전 편찬자들을 만났을 때, 더 이상 쓰이지 않아 사어(死語)가 된 말들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 계셨어요. 보존서고의 책들이 그 사어와 닮아 있다고 느꼈죠.”
지금 많이 찾는 책이 침수됐다면 복원하거나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찾지 않는 책의 미래 가치는 알 수 없다. 버려도 될지 보관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해, 일반 자료실이 아니라 보존서고가 침수되는 설정을 택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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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사로운 사서’. 국립극단 제공 |
흔치 않은 직업인 사서를 취재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았는데 정작 취재 요청을 거절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대부분 ‘이걸 사람들이 재밌어할까요’ 하고 의아해하시면서도 이야기는 정말 많이 해 주세요.” 구체적으로 물을수록 현장의 반응이 살아났다. 전산 시스템이 꺼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1년차 사서는 곧장 “실장님”을 답했다. 30대 사서는 “종이에 적으면 된다”, 40대 사서는 아예 “이면지를 쓰면 된다”고 했다. 그런 반응을 그는 캐릭터에 새겨 넣었다.
연구실, 사전편집부, 도서관처럼 구체적인 공간 속 사람들을 즐겨 다루는 이유를 묻자 젊은 연출가는 자신이 겁이 많은 탓이라고 답했다.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 불안하거든요.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데도 크게 관심이 없고요.”
사건 자체보다 사람에게 마음이 가다 보니, 결국 구체적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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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사로운 사서’. 국립극단 제공 |
대학로에서 여러 선배와 함께 작업하며 많은 걸 배웠는데, 그중 강현주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지난 4월 별세한 연우무대·차이무 창단 연출가 이상우다. 연세가 있는데도 작업을 즐겁게 하던 모습이 오래 남았다. “나도 나이 들어서까지 저렇게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배우를 존중하는 태도도 그에게서 배웠다. 처음으로 글을 써서 연출해 보라고 권한 이도 이 연출이었다. “다른 건 못 해 줘도 네가 글을 쓰면 읽어봐 줄 수 있다”는 다정한 격려에 쓸 동력이 생겼다.
그에게 글쓰기와 연출 중 무엇이 좋은지 묻자 단박에 ‘연출’을 택했다. 하고 싶은 것은 연출이고, 글은 그 연출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본 작업에는 큰 부담이 없다. “일단 써 놓으면 연출로 알아서 수습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고요.”
연출이 훨씬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좋다. 상상한 것이 시각화되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그림이 왜 나와야 하는지를 배우와 스태프에게 유연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매번 어렵다. 그는 공연 자체보다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사라지고 또 새로 만들어지는 연습 과정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연극의 매력을 다시 묻자 “사라져서 좋다”는데 타고난 연극인이다. “연극은 그날 공연을 본 관객의 정서로 기록된다고 생각해요. 영상 매체와는 기록 방식이 다르죠.” 그날 그 시간에 함께 있던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정서로 남는다는 점이 좋다는 설명이다.
강현주의 유일한 욕심은 산책인 듯하다. 비가 와도 장화를 신고 걷는다. 대본 작업기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5시까지 쓴 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걸으며 생각을 턴다. 연습 기간에는 연습실에서 녹음한 배우들의 연습 장면을 들으며 걷는다.
“산책하면서 들으면 연습실에서 생각 못 했던 게 떠올라요. 배우들은 엄청 싫어하지만요. 대학로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 경복궁까지 갔다 오면 두 시간쯤 걸려요. 궁을 따라 걷는 게 좋아서요. 해 질 무렵 이화사거리에 이르러 대학로 쪽을 바라보면 풍경이 좋아서 그 타이밍에 맞춰 걸을 때가 많아요.”
강현주의 다음 작품은 역시 그가 쓴 신작으로 내년 초 창작산실 무대에 오른다. ‘사사로운 사서’는 올가을 중국 베이징 공연을 앞두고 있다.
젊은 연출가는 창작 지원을 위한 공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다. “리서치·개발 계획부터 지원해서 받는 사업들이 늘 필요했는데, 그걸 해 주는 곳이 지금 별로 없어요. 창작 공연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서치에서 출발해 작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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