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ON]다시 멈춘 석화 구조조정…정부 역할론 커진다
2026.06.27 08:00
여수·대산·울산 재편도 제자리국내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이 다시 동력을 잃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NCC(나프타분해설비) 생산능력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여수·대산·울산 주요 산단의 사업 재편 논의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업황 반등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마저 실적 개선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국내 NCC 생산능력을 약 370만t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구체화된 사업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대산 1호 NCC 통합(110만t)과 여수 지역 여천NCC·롯데케미칼 설비 조정(140만t) 정도다. 감축 예정 물량은 약 250만t으로 정부 목표의 6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후가 문제다. 업계에서는 대산 지역 LG화학과 한화토탈에너지스, 여수 지역 LG화학과 GS칼텍스 간 사업 재편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기업들이 구조조정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생산능력을 줄이는 기업이 시장점유율 감소와 실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누구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자산 매각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상당수 업체들은 설비를 유지한 채 업황 회복을 기대하며 관망하는 모습이다.
울산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정부와 에쓰오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등이 사업 재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연내 상업 가동을 앞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다.
총 9조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는 연간 18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 투자다.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생산능력 감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초대형 신규 설비가 가동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샤힌 프로젝트를 감축 대상으로 보기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미 막대한 투자가 집행됐고 최신 공정이 적용된 신규 설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울산 구조조정은 무엇을 줄일 것인가보다 샤힌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 틀 안에 포함시킬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는 올해 1~2분기 실적 개선 역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재고평가이익과 래깅 효과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오히려 하반기에는 역래깅 효과와 중국의 대규모 증설, 샤힌 프로젝트 가동이 동시에 겹치면서 공급 과잉 압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샤힌 프로젝트에서는 에틸렌 180만t을 비롯해 프로필렌 77만t, 부타디엔 20만t, 벤젠 28만t 규모의 기초유분 생산이 예정돼 있다. 중국 증설 물량까지 더해질 경우 공급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지금처럼 기업 자율에만 구조조정을 맡겨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에 먼저 나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재편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업에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중동 전쟁 이후 구조조정 추진 동력이 다소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증설 기조 등 근본적인 시장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370만t 감축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하되 이제는 산업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참여한 기업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인센티브와 지원책을 통해 사업 재편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 샤힌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가동도 하지 않은 최신 설비를 기존 노후 설비와 같은 기준으로 감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샤힌 프로젝트가 구조조정의 수혜만 누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비용 분담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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