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감소, 유시민 퇴장… 시험대 오른 노무현재단
2026.06.27 06:00
친노(親盧) 진영의 핵심 인사인 유시민 작가가 지난 6월 15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고문직에서 물러났다. 유 작가는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분간 노무현재단을 떠나려고 한다"며 "앞으로의 비평 활동 때문에 노무현재단이 혹시 겪게 될지도 모를 어려움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상임고문 해촉을 요청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이번 결정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12일 자신의 유튜브 생방송에서 유 작가와 재단 운영 방식을 공개 비판한 지 사흘 만에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그간 노무현재단의 상징적 인물로 활동해 온 유 작가가 물러나면서 친노 진영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 작가가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기에 '후원회원 감소'라는 현실적 과제까지 안고 있는 노무현재단 역시 유 작가의 퇴장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재단=유시민재단'?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 작가가 사임을 밝힌 다음 날인 지난 6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재단에 진심인 회원들께서 상처받고 떠나시면 어쩌냐. 누구 좋으라고 떠나시냐"며 "굳세게 재단을 함께 지키자"고 호소했다. 최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도중 자녀 결혼식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을 당시에도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할 때"라는 글을 올렸던 대표 친노계 인사다.
이처럼 친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유 작가가 약 9년간 몸담은 노무현재단은 진보 진영의 정치적·인적 네트워크를 잇는 핵심 거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재단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의 가치와 철학을 계승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같은 해 11월 시민 후원금을 바탕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출범 이후 이사장 자리는 줄곧 친노계 핵심 인사들이 맡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2009~2010)를 시작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2010~2012),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2012~2014),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2014~2018),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2018~2021), 정세균 전 국무총리(2022~2025) 등이 이사장 계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사장직을 비롯한 재단 주요 보직이 친노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온 만큼 노무현재단 임원 출신 인사들이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현재는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차성수 전 금천구청장이 제7대 이사장으로 재단을 이끌고 있다.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재단의 대외적 스피커 역할을 하는 조수진 법률사무소 더든든 대표변호사와 황희두 사이버크래프트 대표를 비롯해 총 9명의 이사진이 포진해 있다.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실행정관 출신 김삼호 전 광산구청장, 백원우 전 문재인정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윤원철 전 충남도 정무부지사 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유 작가 역시 이사장 퇴임 이후에도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알릴레오북스' 등에 꾸준히 출연했다. 사실상 노무현재단의 콘텐츠와 대외 홍보를 이끌어 왔던 셈이다. 이런 유 작가가 돌연 사임을 결정한 배경으로는 오는 8월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가 거론된다. 앞서 유 작가는 사임 이유와 관련해 향후 비평 활동으로 인해 재단이 겪을 수 있는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라며 "특히 민주당 전당대회 등과 관련해 더 홀가분하게 발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작가가 지난 3월 진보 진영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이른바 'ABC론'을 제기하며 논평을 이어왔던 점을 미뤄봤을 때, 이번 결정에는 오히려 '재단 사유화' 논란이 더 크게 작용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노무현재단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공적 플랫폼보다는 유시민 개인의 영향력이 강한 조직으로 비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유시민 때문에 후원을 끊었다" "노무현 없는 노무현재단" 등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의 공개 비판은 사유화 논란에 불을 붙였다. 곽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자신의 유튜브 생방송에서 "제과점이 과자와 빵을 팔지 않고 빵 회사 사장 이야기만 하면 빵 회사 사장 홍보 업체"라며 재단 운영 방식을 비판했다. 이어 "재단 유튜브 채널 동영상의 68%에 유 전 이사장이 등장하고, 출연 시간으로 따지면 76%가 유 전 이사장과 관련된 인물들"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국민들이 후원하는 재단인데 본래 목적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4월 노무현재단이 유 작가의 출판기념회를 생중계한 사례도 문제 삼았다.
김준일 정치평론가는 "유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실상 정치적 상주 역할을 하며 재단을 이끌었고,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신에 공감하도록 만든 공도 있다"면서도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가진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다소 협소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기득권 개혁뿐 아니라 국익을 고려한 한·미 FTA 추진,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에도 힘을 쏟았다"며 "유 작가를 포함한 일부 진영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검찰개혁이나 정치적 복수의 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민하 평론가는 재단 사유화 논란에 대해 "재단이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기 위해 지식인의 네임밸류를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면서도 "본질은 활동이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가 아니라 특정 정치 세력 내부의 흐름을 만들고 여기에 편승하는 메시지에 방점이 찍힌다면 재단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무현재단이 앞둔 과제
노무현재단은 사유화 논란 외에도 각종 의혹과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에 재단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지난 5월 열린 추도식에서 유족석 배치가 현장에서 뒤늦게 정리된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재단은 지난 6월 11일 입장문을 통해 "유족석 추가 배치와 착석은 현장 직원의 즉각적인 조치로 이뤄졌다"고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황희두 이사는 주간조선에 "사자 명예훼손은 친고죄라는 법적 한계가 있고, 모욕이나 조롱, 희화화에는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그런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노무현재단은 수년째 '후원회원 감소'라는 현실적 과제에도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3~2025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후원회원 수는 2023년 6만1778명에서 2024년 6만306명, 2025년 5만9590명으로 감소했다. 후원금 규모 역시 같은 기간 106억5562만원에서 105억8700만원, 105억400만원으로 소폭 줄었다. 황 이사는 "지속적으로 후원자가 증가하는 구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새로운 세대 가운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고, 기존 후원자들도 연령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후원 감소를 유 작가의 영향력과 직접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것도 재단 측 입장이다.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는 "일부 회원들 사이에서 '혐오 표현 미대응'이나 '유가족 추도식 자리 배치 문제' 등에 대한 불만으로 후원을 끊겠다는 분들이 있었지만, 유 작가 때문에 후원을 중단했다는 경우는 없었다"며 "재단 차원에서 해명을 진행하면서 후원도 다시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 작가의 사임을 계기로 노무현재단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준일 평론가는 "후원자 감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재단 내부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 전 이사장 퇴임 이후 재단이 특정 인물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노무현 정신 자체를 어떻게 재정립할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하 평론가는 유 작가의 복귀 여지와 관련해선 "직책을 맡을지, 유튜브 출연 방식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나 그가 상징하는 의미까지 완전히 선을 긋고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수진 이사 역시 "나중에 다시 상임고문직을 맡겠다고 하면 재단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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