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여러분은 무엇을 짝사랑하고 계신가요, ‘짝사랑 세계’
2026.06.27 06:01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13번째 레터는 24일 개봉한 일본 영화 ‘짝사랑 세계’입니다. 처음 제목을 보고선 또 손발이 오그라드는 청춘 로맨스 영화인가 싶었는데, 사카모토 유지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믿고 봐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영화 ‘괴물’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마더’ ‘최고의 이혼’ 등을 쓴 일본 대표 각본가죠. 여기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큰 사랑을 받았던 도이 노부히로 감독이 연출을 맡아, 사카모토 유지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짝사랑 세계’라는 제목이 더없이 애틋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이 영화의 짝사랑은 이뤄질 듯 말듯 간질간질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절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을 그리거든요. 일방적인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사카모토 유지는 제작 비하인드를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분은 짝사랑으로 이뤄져 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유독 빛나 보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상의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영화는 세 여자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미사키(히로세 스즈)는 유카(스기사키 하나), 사쿠라(키요하라 카야)와 12년째 도쿄의 낡은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깜짝 파티를 열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아침이 되면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을 하는 일상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평범하고 단란한 일상이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보지 못하는 듯,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행동합니다. 관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이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걸 알게 되죠.
12년 전, 어린아이였던 세 사람은 아동 합창 대회에서 벌어진 어떠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현실과 겹쳐 있는 세계에 남아, 남들과 다름없는 보통의 하루를 보냅니다.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과는 물리적으로 닿을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마음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 아이는 꿋꿋이 남들과 다르지 않은 소소한 하루를 보내며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한쪽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유리처럼, 세 사람은 닿을 수 없는 건너편의 세계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그 세계를 열렬히 짝사랑합니다. 미사키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소년 텐마를 몰래 지켜보고, 유카는 그리운 엄마 곁을 맴돕니다. 사쿠라는 자신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싶어하죠. 그러다 세 사람은 이 세계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요.
미처 생을 다 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아직 이 세계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면요. ‘짝사랑 세계’는 그런 애틋한 바람에서 출발합니다.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잘 먹고 잘 놀고,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죠.
그래서 “인류는 아직 세계의 일부만 보고 있다”는 영화의 대사는 다정한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니까요. 여기서 영화는 다소 ‘문과’스러운 상상력을 펼치는데요.
막내 유카는 대학에서 물리학 강의를 듣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하나의 가설을 세웁니다. 어쩌면 인간이 지금까지 유령이라 불러온 존재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소립자로 이뤄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가설입니다. “삶과 죽음은 큰 차이가 없는 거야. 아주 조금 엇갈린 곳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전반부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선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면서 진부해지거든요. 세 소녀의 일상을 섬세하게 쌓아 올리는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판타지라 할지라도, 세계관 설정이 엉성해서 몰입이 깨지기도 하고요. 사카모토 유지의 이름에서 기대하게 되는 날카로움은 부족했습니다. 물론, 누구도 매번 명작을 내놓을 순 없겠지만요.
그럼에도 보는 내내, 정말 이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 닿을 수 없어도, 그 마음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위로.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면, 아마 그런 ‘짝사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짝사랑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순수한 원형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짝사랑하고 계신가요. 그럼, 오늘 레터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조선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