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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호남 반도체’에 지자체 들썩… “또 다른 지역 편중” 우려

2026.06.27 06:02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전국 지자체가 들썩이고 있다. 지방 균형발전 차원에서 첨단 산업 일자리를 비수도권에 늘려야 한다는 방향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특정 지역에 대규모 산업 인프라가 집중될 경우 또 다른 지역 편중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호남·충청권 신규 반도체 투자안이 검토되고 있고, 오는 29일 민관 합동회의에서 구체적 윤곽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인선 의원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광주·전남권 제2국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TK “정치 논리 안 돼”… 강원·부울경도 반발

가장 강하게 반응한 곳은 대구·경북이다. 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은 “반도체 산업정책이 정치 논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며 호남·충청권 중심의 클러스터 논의에 반발했다. 이들은 대구·경북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기반과 관련 인력, 연구 역량을 갖춘 지역인데도 정부 논의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미시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전날 “반도체 기업이 입주할 경우 평당 1000원에 부지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집적한 구미 국가산단을 앞세워 생산기지 역시 대구·경북에 들어서야 한다는 취지다.

대구·경북 경제계도 힘을 보탰다. 대구상공회의소와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는 같은 날 공동 성명을 내고 “수도권 첨단산업을 지역으로 분산하겠다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나, 이를 일부 비수도권 지역에만 배치한다면 또 다른 지역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은 전력, 용수, 부지, 물류 인프라, 전문 인력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권도 불만이 적지 않다. 강원은 그동안 반도체 교육센터, 테스트베드, 의료·바이오와 연계한 첨단산업 육성 등을 내세워 반도체 생태계 진입을 추진해 왔다. 수도권과 가까운 입지, 넓은 산업용지, 비교적 낮은 토지비를 강점으로 제시해 왔지만, 대형 투자 논의가 호남·충청 중심으로 흘러가면 지역 전략산업 육성 계획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 지역은 전력기기,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제조업 기반과 반도체 수요 산업을 갖고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서면 기존 제조업과 연계해 산업 고도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논의에서 지역 이름이 빠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전북 지역에서는 새만금 부지를 활용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분산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호남, 재생에너지·부지 강점… 용수·인력은 숙제

호남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풍부하고, 산단 조성에 필요한 부지가 비교적 넉넉하다는 점에서 입지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지도를 서남권으로 넓히면 지역 균형발전 효과도 클 수 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은 입지 선정의 문턱이 높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 전문 인력, 협력업체 집적, 물류망, 인허가 속도 등이 모두 맞아야 한다. 호남 지역에는 재생에너지 기반이 구축돼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 변동성이 크다.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반도체 공장 특성상 에너지저장장치(ESS), LNG 발전 등 보완 전원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수 확보도 과제다. 반도체 팹은 웨이퍼 세정과 초순수 생산에 막대한 물을 필요로 한다. 업계에 따르면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한 곳에서 하루 평균 2만~3만t의 물을 사용한다. 대규모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우 하루 수십만t 이상의 안정적 용수 공급이 필요하다.

호남 지역의 주요 수원은 영산강과 섬진강이다. 영산강은 수량은 풍부하지만 수질 문제로 공업용수 활용에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있고, 섬진강은 수질은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유역 면적이 좁다. 봄철 가뭄이 잦다는 점도 부담이다. 2022년에는 광주의 상수원인 화순 동복댐 저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제한급수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재 확보도 난제다. 반도체 팹 운영에는 석·박사급 엔지니어와 숙련 인력이 필요하지만, 지방 근무를 꺼리는 현상이 여전히 강하다. 호남에 반도체 산업 기반 기업이 많지 않은 점도 부담이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 한 곳만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협력사와의 집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전략산업 다극화”… 역할 분담이 관건

정부는 지역 갈등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수도권에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첨단 핵심 산업 투자를 영남, 충청, 강원, 제주, 호남 등으로 확대하는 ‘전략산업 다극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정 지역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가 산업 지도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29일 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토공간 대전환’ 민관 합동 회의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지방 투자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6일 방송 인터뷰에서 “반도체·피지컬AI·로봇 등 3대 분야에서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국내 반도체 설비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확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호남 클러스터 논의가 지역 간 제로섬 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클러스터 입지는 기업이 여러 요인을 고려해 기업이 최적의 장소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입지 논의 과정에서 지역 분배를 고려한다고 n분의 1 방식으로 생산단지를 쪼개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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