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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냉방권

2026.06.27 00:41

정승훈 논설위원

올해 6월은 비교적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낮기온이 섭씨 30도를 넘기도 했으나 장마가 늦춰져서인지 습도가 낮아 선선한 느낌이다. 그런데 유럽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등 각지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정전, 휴교, 사업장 단축 운영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194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더운 날 기록을 이틀 연속 경신했다. 폭염과 관련한 사망자가 수십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에어컨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내년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최근 “폭염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병원, 요양원, 학교부터 냉방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녹색당 등 좌파 진영은 비판적이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대표는 “모든 곳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탄소 배출에 따른) 피해를 가중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주택 에어컨 보급률은 2025년 기준 24% 수준으로 낮다. 에어컨이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는 환경주의, 냉방을 미국식 과소비의 상징으로 여기는 정서 등이 겹친 결과다. 2024년 파리올림픽 당시에도 조직위가 저탄소 올림픽을 내세우며 선수촌과 버스 등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공정성 논란을 낳았다. 여유 있는 국가 선수들은 선수촌 밖 호텔에서 컨디션을 조절한 반면 그렇지 못한 국가 선수들은 찜통 선수촌에서 버텨야 했다.

‘냉방권’은 열기로부터 생명이나 건강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선 2010년대 이후부터 기본권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이 같은 인식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탄소 배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지만 냉방권은 생명의 문제다. 최소한 냉방권 취약계층이 밀집한 곳엔 에어컨을 설치하고, 그만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다른 분야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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