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몇몇 천재만 바라볼때, 일본은 시스템으로 선수들 키웠다
2026.06.27 00:51
일본은 북중미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스웨덴, 튀니지와 F조에 묶이면서 “죽음의 조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때 독일·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6강에 진출했지만, 이번엔 꼼짝없이 불운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26일 최종전에서 스웨덴과 1대1로 비기며 무패(1승 2무)로 당당히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 스웨덴을 상대하면서도 끊임없이 공격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상대적으로 약한 튀니지엔 골 폭죽을 터뜨리며 4대0 압승을 거뒀다. 일본은 작년 10월부터 A매치 10경기에서 7승 3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 기간 브라질, 잉글랜드도 꺾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A조 3위(1승 2패)에 그쳐 ‘경우의 수’를 따지는 한국 축구와는 대비되는 성적이다. 축구 팬들은 “최근 일본 경기를 보면 한국 축구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라며 부러워한다. 2010년 사이타마 한일전에서 박지성이 이끈 한국에 0대2로 완패하며 우울한 월드컵 출정식을 맞았던 일본 축구가 이젠 한국 팬들에겐 선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긴 것일까.
그 배경엔 비전과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 일본은 1990년대에 이미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는 ‘100년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2005년 ‘일본의 길(Japan’s Way)’ 프로젝트를 도입하며 월드컵 우승 목표 시기를 2050년으로 앞당겼다.
일본축구협회가 주도한 장기 비전의 핵심은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이다. 5세부터 21세까지 유망주들을 4세 단위로 연령대를 쪼개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실력 있는 유망주는 최대한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시키고, J리그(일본 프로축구) 구단들도 이적료 부담을 낮춰가며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도왔다. 현재 유럽 5대 리그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 주요 리그에서 뛰는 일본 선수만 62명에 달한다. 한국 선수는 13명뿐이다.
일본은 유소년부터 연령별 대표팀과 성인 국가대표까지 일관된 전술 방향성과 축구 철학을 공유하고, 선수들은 이를 반복적으로 체득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조직력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개인기를 닦으며 팀 전술을 운용한다. 클럽 레벨부터 국가대표까지 “일본 축구는 모든 움직임에 전술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변성환 전 수원삼성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패스 하나에도 이유와 메시지가 있다”며 “약한 패스는 원터치로 공을 내주라는 뜻, 강하게 주면 공을 흘리면서 몸을 돌리라는 뜻”이라고 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10년째 일본 대표팀을 이끄는 것도 전술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2017년 U-23(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아 이듬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다. 청소년 대표로 뛰던 선수가 갑자기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도 팀 전술을 익히고 팀에 녹아드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장기간 같은 지도 체계에서 호흡을 맞춘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미토마 가오루, 엔도 와타루 같은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도 전력 손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한국 축구는 장기 비전 없이 눈앞의 성과만 좇는 게 현실이다. 시스템 속에서 선수와 팀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몇몇 특정 개인의 역량에 의존한다. 세계 최고 리그인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 같은 수퍼스타가 있지만, 팀은 강해지지 않는다. 축구계에서 “한국은 이따금 하늘에서 천재를 내려주지만, 일본은 직접 인재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매번 바뀌고, 바뀔 때마다 잡음이 터진다. 카타르 월드컵 때 파울루 벤투 감독이 ‘빌드업 축구’를 정착시키는가 했더니 ‘독일 스타 출신’ ‘2002 영웅’이라는 간판만 보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홍명보 감독을 잇달아 선임했다. 누가 감독이 되느냐에 따라 세부 전술은 물론 대표팀이 추구하는 방향성도 오락가락한다. 벤투 시절부터 유지해 오던 포백 전술을 월드컵 본선 1년을 앞두고 스리백으로 바꿔 버리며 선수들에게 혼란만 줬다. 물론 감독이 포메이션을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전술적 방향성이 모호한 탓에 선수들조차 납득하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2024년 대한축구협회는 ‘일본의 길’을 벤치마킹한 ‘메이드 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우리도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일관된 축구 철학을 입히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 조별리그 통과 같은 ‘단기 목표’에만 연연하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추어 축구계도 여전히 대학 입시나 프로 진출을 위해 당장의 성적에만 목을 맨다.
한국과 일본은 선수층이나 리그, 경기장 등 인프라뿐만 아니라 축구에 대한 관심과 태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국가대표팀 주장을 지냈던 기성용(포항)은 “일본 선수들은 축구판이 발전할 수 있다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자세가 있다”며 “훨씬 더 축구에 진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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