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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마크 달고 마라톤 첫 우승 서윤복… 한양대·고려대 서로 “우리 학교 선수”

2026.06.27 05:01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17년 6월 27일 94세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당시의 서윤복 선수.

1947년 4월 19일 24세 서윤복(1923~2017)은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앞서 세계 신기록은 손기정이 1935년 세운 2시간 26분 42초였다. 당시 신문은 ‘찬연! 우리 민족의 우수성/ 서 선수 당당 일착/ 뽀스톤 마라손 조선군 제패’라는 감격스러운 제목으로 우승 소식을 전했다.

1947년 4월 22일자 2면.

“멀리 태평양을 건너서 이에 초청을 받어 참가한 조선의 대표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선수 중의 서 선수는 세계의 강호 170명을 물리치고 가슴에 태극 마크를 빛내면서 2시간 25분 39초라는 초인적인 세계 신기록을 맨드러 우승하야 조선 민족의 위대한 힘을 전 세계에 떨치였다. 이에 남 선수 역시 끝까지 분투하야 2시간40분10초로 제12착을 차지하였고 기대되든 손 선수는 후배에게 마음껏 자양 없이 활약시키기 위하야 첫 번부터 출전치 아니하였다(…)”(1947년 4월 22일자 2면)

당시는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우리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때였다. 당시 신문은 “해방이 되었다 하면서도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아직것 독립을 못 찾고 헤매는 조국 조선”이라고 표현했다.

1946년 10월 29일자 2면.

아직 정부도 수립하지 못한 ‘코리아’ 선수의 참가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주최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조선육상경기연맹은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동메달리스트 남승룡과 함께 서윤복을 출전 선수로 선발했다.

“오는 4월 19일 미국 뽀스톤에서 열리는 뽀스톤 마라손 대회에 조선 선수를 보내달라는 뽀스톤 운동경기협회의 초청을 받은 조선육상경기연맹에서는 이에 조선 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수차에 걸치어 이사회를 연 결과 올림픽 백림(伯林·베를린) 대회 마라손에서 우승한 손기정, 3위에 입상한 남승용 두 선수 외에 신진으로 패기만만한 서윤복(고려대학생) 선수를 추천하야 조선 대표단으로 3명의 선수를 보내기로 결의하고(…)”(1947년 3월 13일 자 2면)

위 기사는 서윤복을 ‘고려대학생’으로 적었다. 불과 다섯 달 전인 1946년 10월 27일 열린 제1회 단축 마라톤 대회 일반부 1등으로 들어왔을 때 서윤복은 소속이 ‘한양공대’였다.

“일착 서윤복(한양공대) 1시간 29분 24초3, 이착 이종록(철도) 1시간 30분 40초5, 삼착 이영제(고려대) 1시간 34분 47초5 (…)”(1946년 10월 29일 자 2면)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직후 서윤복을 소개한 기사에서는 “해방이 된 후 건국전문(建國專門)에 적을 두었다가 그년 3월에 고려대학 전문부 경제과에 전학하야 재학 중에 있으며”(1947년 4월 22일 자 2면)라고 적었다.

1947년 6월 24일자 2면.

서윤복의 소속은 건국전문(해방 후)→한양공대(1946년 10월)→고려대(1947년 3월)로 나타난다. ‘건국전문’은 한양공대의 이전 이름인 건국기술전문학교이다. 현 건국대와는 다르다. 기사에 따르면 서윤복은 1946년 건국전문(한양공대)에 적을 두었다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직전 고려대로 학적을 옮겼다.

서윤복은 우승 직후 자신이 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비용을 마련해 준 미군정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나의 승리는 우리 조국을 해방하여 주었으며 나에게 자유한 몸으로 달릴 기회를 베풀어준 미국군의 덕택이다. 나는 특히 나와 나의 동료가 미국에 올 수 있도록 거금하여 준 조선에 있는 미군정 급 미국 군인에게 감사하는 바이다.”(1947년 4월 22일자 2면)

손기정은 서윤복의 레이스를 돕기 위해 대회에 선수로 뛰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는 서 선수의 우승을 확신한 까닭으로 최후 순간에 참가를 거절하였다. 나는 오히려 서 선수를 쫓으며 코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참가한다면 서 선수는 선배를 존중하는 조선 관습에 의하야 나의 앞에 나서기를 주저할까 두려워하여서 참가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였든 것이다.”(1947년 4월 22일자 2면)

서윤복은 손기정·남승룡과 함께 두 달 후인 1947년 6월 22일 배편으로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때 ‘서 선수는 어느 학교 학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양공대와 고려대가 서로 자기 학교 학생이라고 주장했다.

1947년 6월 24일자 2면.

“22일 인천에 상륙 개선한 서윤복 선수를 맞이하는 수만 관중 가운데 ‘우리 대학 대표 서 선수 환영’이란 같은 뜻의 깃대를 단 한양공대와 고려대학 두 대학의 환영 자동차가 특히 눈에 띄였다. 서 선수는 지난 3월에 한양공대로부터 고려대학에 전학을 수속하고 서울-인천간 왕복 역전 경주대회에도 고려대학 대표 선수로 출전한 일이 있었는데 입학 수속이 완전히 끝나지 못한 채 지난 4월 초순에 미국 뽀스톤 마라손 대회에 간 것이다. 그 후 한양공대에서는 아직 우리 대학에 교적(校籍)이 있다고 하여 서 선수가 개선하는 날 두 학교에서 서로 ‘우리 학교의 서 선수 환영’이란 깃발을 내걸고 환영한 것은 거리의 이채로운 풍경이였다.”(1947년 6월 24일자 2면)

2017년 6월 28일자 A31면.

서윤복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70주년인 2017년 6월 27일 별세했다. 선수 생활은 길지 않았다.

“그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 이후 모교인 숭문중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을 지냈다. 대한육상연맹 부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1년부터 17년간 서울시립운동장장(長)을 맡기도 했다. 2013년에는 대한체육회 스포츠 영웅에 선정됐다. 양재성 전 육상연맹 부회장은 “선생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했지만 후배들이 모두 좋아하는 아량을 지닌 분이었다”고 회고했다.”(2017년 6월 28일 자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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