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고교 자퇴하고 수능 올인?… 근심만 키울 순간의 선택
2026.06.27 00:07
서울 강북구에 사는 A군은 고1이었던 지난해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에 등록했다. 중학교까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고교에서 내신 4등급까지 밀린 과목이 나왔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좌절감과 ‘뭘 하고 살지’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퇴하고 학원에서 검정고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 중인 친구와 만난 뒤 자퇴를 결심한 A군은 “학교에 남아 내신 들러리 서지 않고 수능에서 승부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하지만 최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염두에 둔 대학들이 정시에서 수능만으로 학생을 뽑는 인원을 줄이고 학교생활기록부를 반영해 뽑는 인원을 늘렸기 때문이다. A군은 “학원 선생님들은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가뜩이나 좁았던 문이 더 닫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교 내신 성적이 저조한 학생에게 ‘자퇴→검정고시→수능 학원→정시 지원’ 전략은 공교육을 우회하는 합리적 선택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자퇴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에 남아 정규 교육과정을 ‘패싱’하고 수능에 몰입하는 ‘정시 파이터 전략’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교육정책따라 자퇴생 오락가락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가 이 전략에 힘을 실었다. 문재인정부 시절 교육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 높였다. 2023학년도(2022년 수능)가 적용 시점이었지만 2022학년도에 조기 달성하도록 했다.
고1 자퇴생 통계는 정확하게 정부 정책 변화와 맞물려 움직였다. 고1 자퇴생은 2020년 5015명에서 2022년 8050명, 2024년 9847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처음 1만명대(1만450명)를 돌파했다. 검정고시 출신 수능 응시자는 2021학년도 1만3691명에서 2025학년도 2만109명으로 2만명대를 넘어섰고, 2026학년도에 2만2355명을 기록했다.
여기에 고교학점제가 이런 흐름을 가속했다. 지난해 고1부터 적용한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하지만 ‘내신 부풀리기’ 등을 우려해 상대평가 방식을 유지했다. 대신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줄이고 모든 과목을 상대평가로 전환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교육부는 내신 부담 완화를 예상했지만 현장 반응은 달랐다. 2등급으로 밀리면 과거 9등급 체계의 4등급 수준으로 취급받게 되고, 모든 과목이 상대평가여서 수행평가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수능 준비 시간을 갉아먹었다. 내신이 저조한 학생을 자퇴로 몰아가는 구조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정시·수시 모두 자퇴에 문호 축소
교육부와 주요 대학은 지난 4월 공개한 ‘2028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통해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대학들이 고교학점제 첫 세대인 현 고2(지난해 고1)에게 적용할 선발 방식을 규정한 문서다. 주요 대학은 정시 모집인원을 줄이면서 이에 더해 수능 점수만으로 뽑는 인원도 축소했다.
종로학원이 서울 소재 10개 대학의 입시계획을 분석한 결과, 정시에 고교 내신 등 학생부를 반영해 뽑는 비율은 2027학년도 41.2%(5794명)에서 2028학년도 55.2%(7272명)로 증가했다. 수시에선 N수생 지원을 원천 차단한 전형의 모집인원을 1942명에서 4894명으로 2.5배 늘렸다. 대학들이 9등급 체제와 5등급 체제 학생을 함께 선발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시와 수시 모두에서 자퇴생을 포함한 N수생의 입학 문을 좁힌 것이다.
학교에 남더라도 쉽지 않다. 수능과 내신, 학생부 내용을 모두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각에선 2008학년도 대입에서 학생부와 내신, 논술을 모두 반영해 수험생 부담이 극대화됐던 시기 등장한 용어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부활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2028학년도 대입에서 ‘수시는 학생부, 정시는 수능 중심’이란 대입 단순화 원칙이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다.
내신 성적 중심의 학생부교과전형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처럼 정성평가 요소를 가미한 전형이 늘었다. 내신만으로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내신이 중요해졌다고 수능의 비중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상당수 대학이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강화했다. 내신이 5등급으로 축소되고 수능에서 선택과목이 없어져 단순화되자 대학들이 학생 변별을 위해 여러 전형 요소를 뒤섞는 방식으로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 내신, 학생부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선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1년간 학원서 공부 뒤 ‘내신 세탁’
수능과 내신, 학생부 모두 중요해지면서 고교 재입학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입학은 학교를 자퇴하고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내신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서 드물게 나타나던 현상이다. 호남 지역 고2인 B군 같은 경우다. 의대를 희망하는 B군은 1학년 때 내신을 망치자 곧바로 자퇴하고 수능 학원을 다녔지만 전략을 바꿔 재입학을 선택했다. 동생들과 같은 학년이 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3학기 내내 전 과목 1등급을 유지하며 ‘내신 세탁’에 성공하고 있다. 입시 커뮤니티에는 “국·영·수·물리 등 과목의 실력을 끌어올린 뒤 재입학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란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입시 전문가는 “고교학점제를 통한 고교 정상화란 이상과 대학들의 변별 공식이 작동하는 입시 현실이 만나 학업 스트레스를 증폭시켰다”며 “입시 제도 과도기란 특수성을 고려해 부담을 낮춰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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