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다…‘상속포기’ 하면 될까?
2026.06.26 17:00
이 사안에서 자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버지의 빚을 떠안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우리 법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채무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을 두고 있다. 민법 규정을 통해 살펴보자.
상속포기…“아예 안 받겠다”
단, 상속포기는 반드시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민법 제1041조, 제1019조 제1항). 상속개시는 피상속인(사망)이 사망한 때와 동시에 시작된다.
가족끼리 구두로 합의하거나 사적인 서류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는 법적 효력이 없다.
한정승인…“상속 받은 한도 내에서만 갚겠다”
한정승인 역시 상속개시 후 3개월 이내에 상속재산목록을 첨부해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특별한정승인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없을까? 이런 경우를 위해 민법은 ‘특별한정승인’ 제도를 두고 있다.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3개월 이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는, 이 같은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민법 제1019조 제3항). 일종의 구제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특별한정승인이 인정되려면 상속인이 채무 초과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법원은 이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한다. 피상속인 사망 당시 이미 채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가령 A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안심상속 서비스를 통해 은행 대출이 없음을 확인하고 상속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2년 뒤 아버지의 생전 친구로부터 사업자금 대출에 대한 3억원짜리 연대보증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주채무를 갚지 못하자 은행이 상속인인 A씨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다.
이처럼 연대보증 채무는 고인이 가족에게 숨기는 경우가 많고, 금융조회 시스템에 나타나지 않는 항목도 있어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면 A씨는 소장을 송달받아 보증채무의 존재를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 구제받을 수 있다.
한편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성년이 되기 전에 채무초과 상속을 단순승인했더라도 성년이 된 후 물려받은 재산보다 빚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그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민법 제1019조 제4항).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한눈에 비교
상속이 일반 재산이 아니라 ‘빚’이라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위의 사례에서 정민씨는 ‘나만 상속포기를 하면 끝날 문제인가’도 고민거리다.
상속포기를 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상속의 같은 순위에 다른 상속인이 없으면 다음 순위 상속인이 채무를 상속하게 된다.
대법원 1995. 9. 26. 선고 95다27769 판결
채무자인 피상속인이 그의 처와 동시에 사망하고 제1순위 상속인인 자(子) 전원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상속을 포기한 자는 상속 개시시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과 같은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 같은 순위의 다른 상속인이 없어 그 다음 근친 직계비속인 피상속인의 손(孫)들이 그 채무를 상속한다고 한 사례 위 판결과 같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녀 3명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다음 순위인 손자녀나 직계존속(조부모 등)이 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자녀들만 포기하고 끝내면 뒤늦게 손자녀나 부모님이 빚을 떠안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차순위 상속인들도 함께 상속포기를 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자녀들이 포기할 때 손자녀, 직계존속까지 동시에 포기 신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례에서 설명한 정민씨의 경우도 아내와 손자녀 등이 있다면 동시에 포기 신고를 해야 한다.
빚 상속은 상속인과 피상속인 외에 채권자와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상속포기를 한 경우, 채권자가 상속포기를 한 상속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상속포기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다79876에 따르면 상속포기를 한 상속인이 소송에서 상속포기 사실을 주장하지 않아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상속포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채무를 변제해야 한다.
즉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상속인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상속포기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상속인들이 채무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유념하자.
법원에서 한정승인 사실이 인정되면 상속채무 전부에 대한 이행판결을 선고한다. 다만 판결문 주문에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라는 문구를 명시한다. 즉 채무 자체는 존재하지만 강제집행은 상속재산 범위에 한정된다는 뜻이다.
한정승인은 채무 책임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속재산이 이미 소진되었더라도 채권자는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중에 상속재산이 발견되면 그 범위에서 집행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핵심 쟁점 ③ 상속재산을 보증 섰거나 처분했다면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은 별개 문제다. 가령 아버지의 대출에 자녀가 연대보증을 선 경우 자녀가 아버지의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연대보증인으로서의 채무는 그대로 남게 된다. 상속포기의 효력은 상속으로 인해 승계되는 채무에만 미친다.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하면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의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경우 이후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빚이 많을 것 같다면, 상속재산을 처분하기 전에 먼저 법률 전문가와 상담해 상속 포기 또는 한정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리 알아두는 '법알든든' 상식…상속포기·한정승인 이렇게
◆ 3개월 기한을 반드시 지켜라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구두 합의나 사적 서명은 효력이 없다.
◆ 재산이 있으면 한정승인, 빚만 있으면 상속포기
상속재산이 전혀 없다면 상속포기가 명쾌하다. 재산도 있고 빚도 있다면 한정승인으로 책임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 나만 포기한다고 끝이 아니다
자녀들이 포기하면 손자녀, 조부모 등 차순위 상속인에게 채무가 넘어간다. 반드시 차순위 가족들과 함께 포기 신고를 해야 한다.
◆ 3개월을 놓쳤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채무 초과 사실을 몰랐다면 특별한정승인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가 기한이다.
◆ 상속재산에 먼저 손대면 선택지가 사라진다
재산을 처분하는 순간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포기와 한정승인이 모두 불가능해진다. 전문가 상담이 먼저다.
부모님이 남긴 것이 설령 빚뿐이라도 법은 상속인을 보호할 수단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러나 기한을 넘기거나 재산에 먼저 손을 대면 선택은 너무 좁아진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관련 법을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현실적으로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일반적인 법 상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법률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현재 법무법인(유) 원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사 분쟁부터 기업 법무까지 폭넓은 실무 역량을 갖춘 그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가스공사, 경기주택도시공사, 삼성전자 등의 고문변호사를 역임하며 다수의 소송과 법률 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인생은 늘 관계와 돈으로 예상치 못한 일을 맞이한다. 재산 문제와 가족간, 형제간 불화는 터놓고 말하기도 어렵다. 더 행복한 노후를 위해 ‘미리 알아두면 든든한’ 상속과 증여에 관한 법을 법률전문가와 함께 알아본다. 이 기사는 ‘디지털농민신문’에서 한발 앞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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