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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길 산책]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2026.06.26 14:34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 크라이오바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는 셰익스피어 연극축제를 개최한다. 2026년 5월 30주년을 맞은 축제를 계기로 국제연극평론가협회(AICT/IATC) 총회가 열려 우리나라를 대표해 참석하게 됐다.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연출가인 에밀 보로기나(Emil Boroghina)가 1994년 창설한 이 축제는 올해 'WILL Matters?'를 주제로 진행됐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유효한가?" 혹은 "의지는 유효한가?" 등을 의미하는 다의적 표현이다.

마린 소레스쿠 국립극장 내의 대극장과 소극장, 라마다 호텔의 플라자 홀, 카세이 데 쿨투라 등 6개 실내 공간의 유료 공연들뿐 아니라 도심의 4대 광장 및 크라이오바 외곽에 설치한 셰익스피어 빌리지에서의 무료 공연들까지 행사 기간 중 총 60여편의 공연 및 행사들이 도시를 꽉 채웠다. 빡빡하게 이어진 국제연극평론가협회의 공식 일정으로 인해 축제 개막을 장식한 일본 가쿠신한 극단의 기무라 류노스케 각색·연출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재탄생' 등 총 5편의 공연만을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공연은 크라이오바 국립극장의 실비유 푸르카레테(Silviu Purcarete) 연출 '리어왕'과 캐나다 '피유 드 래티에(Fille du laitier)'팀의 '무언의 맥베스(Macbeth Muet)'였다. '리어왕'은 거장 연출의 작품답게 장면별 미장센이 압도적이었다. 도발적인 의상과 과감한 오브제 및 강도 높은 음향의 사용 외에도 특유의 민중 신을 통해 연출 푸르카레테는 권력의 흥망성쇠뿐 아니라 그에 대한 영속적인 집착을 펼쳐 보였다. 한편 2인의 공연자가 열연한 '무언의 맥베스'의 경우 긴 테이블 위 종이 중심의 재료들만 가지고 1시간 남짓의 공연을 재치 있게 이끌어갔다. 공연의 백미는 공연에 사용된 온갖 재료들을 한데 모아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 위에 그토록 탐하던 왕관을 조롱하듯 씌우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연극은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도, 또 희화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사 개막일 드론 퍼포먼스 (c)Craiova Shakespeare festival


대부분의 공연이 예정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시작했으나 유념치 않고, 공연 관람 후에는 아낌없는 기립 박수로 공연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관객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한때를 지배하던 옛 공산 정권이 떠나간 도심, 루마니아의 다소 황폐한 소도시에 셰익스피어라는 보석 하나가 이처럼 다채롭게 세팅돼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돌이켜 보면 인도 땅과도 셰익스피어를 바꿀 수 없노라 했던 영국의 자부심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의 연극은 우리 연극 무대에서도 쉼 없이 호출되고 있지 않은가. 전년도 국립극단의 '태풍'과 극단 바바서커스의 '맥베스 리포트' 등에 이어 극단 76의 50주년 기념 '리어의 역' 이 현재 공연 중이고 '베니스의 상인'이 곧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우리 연극계의 거목인 노배우 신구와 박근형을 여전히 무대로 이끄는 힘의 근원은 셰익스피어일까, 아니면 연극 그 자체일까.

이번 국제연극평론가협회 총회에서는 총 65개 참가국 중 10개국 대표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 선거에 출마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를 대표해 집행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총회의 한 순서인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우리나라의 우수진 평론가가 이기쁨, 김미란 등 우리 젊은 연극인들의 재기가 돋보이는 두 편의 셰익스피어 무대를 소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년 후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는 멋진 작품으로 우리 연극이 참가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K연극과 K연극 비평이 더욱 활발히 세계와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국 왕실에 엄청난 재물과 그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던 인도 땅 전체를 능가하는 셰익스피어의 힘. 그 효능에 소스라칠 수밖에 없다. 경제 논리와 기술의 진보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상에서도 셰익스피어는 혹은 연극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화원(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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