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과거로부터 부는 바람, 삶을 살려내는 바람 [.txt]
2026.06.26 05:04
위화의 에세이 ‘산곡미풍’은 두 글이 특히 좋다. 그중 하나는 ‘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헤엄치다’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위화는 하나의 갈망을 가졌는데 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헤엄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는 바닷물이 푸르게 묘사되는데 왜 내가 보는 바닷물은 누럴까? 위화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 여름 해 질 녘 푸름을 찾아 헤엄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멀리 가도 바다는 여전히 누런색이었다. 너무 멀리 나와 두려워지기 시작할 때 바다는 드디어 초록색으로 변했다. 대단한 이야기꾼인 위화는 우리를 그와 함께 푸른 물결을 찾아 먼바다를 떠돌게 만드는데 그 출발은 아주 구체적인 사물이다. 수영을 하긴 해야겠는데 입고 있던 옷은? 그는 옷을 벗어 슬리퍼로 눌러놓는다. 해류에 휩쓸려 밤새 바다를 떠돌다가 겨우 육지에 도착한 위화가 한 일은 슬리퍼를 찾아 신은 것이었다. 나는 슬리퍼로 옷을 눌러놓은 적은 없지만 슬리퍼를 날아가지 말라고 돌로 눌러놓은 적은 많다. 위화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백사장에 내 슬리퍼 두 짝이 있던, 수영을 하다 가끔 내 슬리퍼는 잘 있나 목을 길게 빼고 보던 짭조름한 바다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라는 글은 그가 맛본 특별히 좋아했던 바람에 대한 기억들이다. 산 아래 있던 친구의 아파트 베란다에 불던 산들바람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고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한 호텔의 스페인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맛봤던 바람은 조금 망설이는 것도 같고 때로는 정면으로 불다가 때로는 등 뒤에서 툭툭 나타나는 것도 같다. 이게 어떤 산들바람인지 설명할 정확한 표현을 찾지 못하니 그저 ‘아니다’로만 설명할 수밖에.
“두보의 ‘강기슭의 가녀린 풀잎을 스치는 산들바람’의 바람도 아니고 고변의 ‘수정 발이 움직이니 산들바람이 일었다’의 바람도 아니고, 풍연사의 ‘연못의 봄물에 물결이 일었네’는 ‘바람이 갑자기 부니’ 때문인데, 너무 갑작스러우니 이것도 아니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산들바람은 자기가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는 걸 알기에 겸손하고 신중하다. 그 겸손하고 신중함은 내가 소년 시절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다니던 천당풍(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과 닮았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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