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부자들, 대박보다 연 8% 수익 선호
2026.06.26 00:36
코스피가 9000선을 넘어서는 등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와 곱버스 등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반면 아시아 대표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의 고액자산가들은 공격적인 수익보다 자산 보전에 초점을 맞춘 중위험·중수익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자산관리 업계와 NH자산관리컨설팅부 등에 따르면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보다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닝스타는 싱가포르 초고액자산가들이 핵심 포트폴리오의 목표 수익률을 연 8~10% 수준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자산가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익률보다 하방 위험 관리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지무트자산운용의 김형국 한국 WM 부문 대표는 “S&P500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연 8~10%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20% 수준의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날도 있다”며 “고액자산가들은 포트폴리오가 -20%를 기록하는 상황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조사업체 모닝스타 관계자도 “초고액자산가들의 투자 목적은 자산 증식보다 자산 보전인 경우가 많다”며 “핵심 포트폴리오의 80~90%는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일부 위성(Satellite) 자산만 고위험 투자에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미국 증시가 관세 이슈로 급락해 나스닥 지수가 20% 가까이 하락했을 당시에도 아지무트 고객들의 포트폴리오는 1% 안팎 하락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김 대표는 “특정 자산에 집중 투자하기보다 서로 다른 자산군에 분산 투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투자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문화도 한국과는 다른 점으로 꼽힌다. 신이슬 NH헤지자산운용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만기 8~10년 상품을 제안하면 투자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싱가포르 패밀리오피스들은 운용사 신뢰도와 투자 전략이 검증된다면 장기 상품에도 비교적 익숙하다”고 말했다.
특정 종목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글로벌 초고액자산가들의 공통적인 투자 방식으로 꼽혔다.
김 대표에 따르면 아지무트의 평균적인 고객 포트폴리오는 채권 10%, 헤지펀드 20~30%, 구조화상품 20%, ETF 자산배분 20%, 현금 10% 등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채권만으로 원하는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면서 헤지펀드와 싱가포르 리츠 등을 채권 대체 자산으로 활용하는 비중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프라이빗 크레딧(사모대출), 인프라 투자, 프라이빗에쿼티(PE) 등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권기정 NH헤지자산운용 싱가포르 법인장은 “현지 패밀리오피스들은 큰 자본차익보다 매년 안정적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최근 FCN(Fixed Coupon Note) 등 주식연계 구조화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FCN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형 기술주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일정 수준 이상 주가가 하락하지 않으면 연 8~12% 수준의 쿠폰(이자)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기초자산이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하면 해당 주식으로 상환받지만, 장기적으로 기초자산의 기업가치와 주가 상승을 믿는 투자자라면 주식을 보유하면서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시장이 횡보하거나 완만하게 상승하는 구간에서는 높은 쿠폰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싱가포르 자산가들은 엔비디아가 50% 오르는 것보다 연 8~10% 수준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며 “주가 상승에 모두 참여하기보다 일정 수준의 수익을 확보하면서 하락 위험을 관리하는 상품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투자 문화의 배경에는 싱가포르의 세제와 부동산 정책이 있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주식 매매차익과 배당소득, 증권거래세가 없는 만큼 금융자산 투자는 세금 부담이 거의 없는 반면, 부동산은 강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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