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절벽 위로 간 르 코르뷔지에의 천재 소녀와 바젤리츠
2026.06.25 16:39
묀히스베르크 절벽 위 현대미술관
르코르뷔지에의 디자이너 샬롯 페리앙
오스트리아 첫 대규모 회고전
잘츠부르크 인근 작업실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말년 작업 전시‘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동시대적 화두로 끌어온 두 거장의 진면목이 지금 잘츠부르크 절벽에 있다. 잘츠부르크 도심, 웅장하게 솟아오른 절벽 묀히스베르크(Mönchsberg). 토스카니니 호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초 만에 다다른 산꼭대기엔 고풍스러운 중세의 도시 풍경 대신 미니멀한 백색 대리석으로 지은 현대적 건축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Museum der Moderne Salzburg) 본관이다.
이곳은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선다. 클래식의 도시 잘츠부르크를 이해하는 반전의 명소랄까. 고전의 우아함이 조금 지루해졌다면,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의 파노라마에 눈을 맡겨보자.
미술관 내부에 펼쳐지는 예술 작품은 짜릿한 해방감마저 건넨다. 올해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은 전 세계 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념비적인 두 전시를 동시에 선보인다. 얼마 전 타계한 현대미술의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예술적 유산과 오스트리아 최초로 열리는 프랑스 디자인의 개척자 샬롯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1. 공간을 해방시킨 여성, 샬롯 페리앙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사진가였던 샬롯 페리앙(1903~1999)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최초로 열리는 이번 페리앙 회고전은 990㎡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을 가구, 드로잉, 사진, 그리고 실물 크기의 건축 재현물로 가득 채웠다.
사람들의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는 알아도, 그의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와 가구 혁명을 이끈 수석 디자이너가 24세의 젊은 여성 샬롯 페리앙이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페리앙은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협업하며 가구 역사에 빛나는 수많은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명확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삶을 개선하는 수단이다.”
그는 강철 파이프, 알루미늄 등 당시로는 가구에 쓰이지 않던 파격적인 산업용 소재를 과감히 도입하면서도 인체의 곡선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933년의 산장: 레퓌주 비부아크Refuge Bivouac’다. 페리앙이 설계한 조립식 알루미늄 산장을 뮌헨 공대 건축학과 학생들과 잘츠부르크 응용과학대 그린빌딩학과 학생들이 협력해 전시장에 직접 세웠다.
척박한 알프스산 한가운데에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한 미니멀한 모듈러 주택은 자연을 사랑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던 페리앙의 혜안을 보여준다. 가구 회사 카시나Cassina의 후원으로 완벽하게 복원해낸 1929년의 아파트 인테리어 구조물 역시 관객이 직접 현대 디자인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입체적 경험을 선사한다.
아시아의 관람객이라면 일본의 장인들에게서 영감받은 디자인에 매료될 게 분명하다. 1940년부터 3년간 첫 체류 기간 동안 페리앙의 디자인 인생은 가장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함께 일했던 일본 건축가 사카쿠라 준조의 추천으로, 일본 상공성(현 경제산업성)의 수출 공예 무역 고문으로 초빙돼 일본을 방문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약 2달 여만에 도착한 일본 땅. 페리앙은 도쿄 제국호텔에 머물며 일본 전역의 공예 장인들과 교류했고, 야나기 소에츠가 이끌던 '민예운동(Mingei)'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1941년에는 사카쿠라 준조와 함께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선택·전통·창조》라는 기념비적인 전시를 열며 대나무와 같은 현지 소재를 활용해 유기적 디자인을 선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인해 더 이상 일본에 머물기 어려워지면서, 1942년 12월 일본을 떠나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현재의 베트남)로 이주한 그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따. 1953년부터 3년 간 프랑스인 남편의 도쿄 주거 공간을 디자인하고, 전시를 새로 기획했다.
이 시기 동안 그는 르코르뷔지에, 페르낭 레제 등의 거장들과 함께 1955년 도쿄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종합 예술전(Synthèse des Arts)》을 개최했다. 이때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오리가미)에서 영감을 얻은 유명한 흑색 합판 의자 '옴브르(Ombre, 그림자) 체어'가 탄생했다. 에어프랑스의 도쿄 오사카 지점 인테리어(1959년), 유네스코 정원의 다실(1993년) 등을 만들며 평생 일본과 깊은 유대를 유지했다.
100년 전의 디자인이라고 믿기지 않는 주방과 거실, 그의 흑백사진과 정교한 드로잉, 인체공학적 설계로 완성한 가구 디자인은 보고도 경이로움을 안긴다. 지금은 흔한 모듈형 수납장의 시초까지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2. 거꾸로 선 세계, BASELITZ JETZT
독일이 낳은 세계적 화가이자 조각가인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잘츠부르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말년을 보냈다. 88세 탄생일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이 전시의 의미가 더욱 뜻깊다. 미술관이 예술가와 생전에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다. 그 대신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치열한 예술적 집념이 말년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스페트베르크(Spätwerk, 노년기 Spät와 예술적 성과 Werk의 합성어)’에 초점을 맞춘다.
바젤리츠를 세계 미술사의 반열에 올린 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거꾸로 그린 그림auf dem Kopf stehenden Bilder’이었다. 그는 대상을 거꾸로 뒤집음으로써 관객이 그림의 내용(재현) 대신 회화 그 자체의 색채와 형태, 거친 붓 자국에 집중하게 했다. 이번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2022년 작 ‘Weißes Bett, weiß(하얀 침대, 하얗게)’다.
화면 전체를 거대한 남성의 형상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로 흰 천이 덮여 있다.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는 요양원의 병상일 수도, 영원한 휴식의 공간일 수도 있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타계와 맞물려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나이 듦과 상실,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웅에서 신화로, 얇아진 황금빛 표면의 초기 작품들이 거칠고 두꺼운 물감 덩어리로 세상과 불화했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최근의 ‘황금빛 그림goldenen Bilder’들은 전혀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인도 신화의 신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형상은 캔버스 위에서 훨씬 더 얇고, 투명하며, 가볍게 부유한다.
이는 과거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노거장의 시선이 점차 내면과 초월의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회화 24점이 걸린 묀히스베르크 본관 전시는 10월 18일까지, 구시가지의 루페르티눔 분관에선 1960년대 작가가 발표한 4개월 예술 선언문을 바탕으로 한 초기 판화와 드로잉 전시가 10월 4일까지 열린다.
잘츠부르크=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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