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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 폭염인데 ‘에어컨 불모지’ 프랑스, 지금 무슨 일이

2026.06.25 15:00

프랑스 파리의 한 전자제품 전문 매장에서 시민들이 선풍기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출처: 로이터)

"하루 종일 외부 차양 셔터(햇빛을 막기 위해 창문 밖에 설치한 덧문 형태의 셔터)와 커튼을 모두 쳐놓고 선풍기만 계속 틀고 있어."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의 한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수도 파리와 수도권에서는 에어컨이 설치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은 낮 동안 외부 차양 셔터와 커튼을 닫아 햇빛을 차단하고, 밤에 창문을 열어 실내 열기를 빼내는 방식으로 여름을 버텨왔습니다. 한국처럼 고온다습한 날씨가 장기간 이어지지 않고, 두꺼운 석조 건물과 외부 차양 셔터 덕분에 실내에서는 비교적 더위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도 파리에서는 예년과 달리 지난 5월 말부터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돌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40도 안팎까지 치솟으며 연일 폭염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사하라 사막 열돔 현상으로 6월 이례적인 폭염이 찾아왔지만, 올해는 시기가 더 빨라졌고, 강도도 더 강해졌습니다.

■ 선풍기 332%, 에어컨 237%…폭염에 냉방기기 품귀

폭염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전역에서는 냉방기기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는 지난 22일 기준 전국에서 에어컨과 선풍기 3만 대를 판매했다고 밝혔습니다. 평소보다 1천 배 가까이 많은 규모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선풍기 판매는 332%, 에어컨 판매는 237% 증가했습니다.

재고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사연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은 장인·장모를 위해 휴대용 에어컨을 구하려고 파리와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닌 위고 씨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전자제품 전문 매장을 수차례 방문하고 유명 가전 브랜드 본사에까지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모두 같았습니다. "재고가 없습니다."

■ 프랑스에는 왜 에어컨이 없을까

프랑스 에너지전환청(ADEME)에 따르면 프랑스의 가정용 에어컨 보유율은 2023년 18%에서 지난해 24%로 증가했습니다. 에어컨 보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영국(약 5%)이나 독일(약 3~5%)보다는 높은 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네 가구 중 한 가구 정도만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마저도 니스와 마르세유 등 상대적으로 더운 남부 지역에 집중돼 있습니다. 수도 파리를 비롯한 북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에어컨 없는 집이 훨씬 많습니다.

에어컨 보유율이 더 낮은 영국과 독일은 그동안 냉방이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 기온이 비교적 온화했고, 독일 역시 냉방보다는 난방과 단열 중심의 주거 문화가 발달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과거에는 드물었던 35~40도 안팎의 폭염이 반복되면서 영국과 독일 곳곳에서 철도 운행 차질과 학교·병원의 냉방 문제 등이 잇따르며 시민들이 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냉방기기 보급률이 낮은 데에는 기후와 주거 문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 프랑스 북부 지역은 여름철 낮 기온이 25~30도 수준에 머물고 밤에는 기온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폭염이 찾아와도 며칠이면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택 구조도 냉방을 전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오래된 건물들은 두꺼운 석조 벽과 높은 천장으로 지어져 외부 열기가 쉽게 실내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창문 바깥쪽에 설치된 '볼레(volet)'라고 불리는 외부 차양 셔터를 낮 동안 내리고 밤에 환기하는 방식으로 더위를 견뎌왔습니다.

에어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낭비와 도시 열섬 현상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냉방 확대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이어졌고, 역사 보존 건물이 많은 파리에서는 실외기 설치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되면서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정치권에선 에어컨 가동을 놓고 "필수인지, 사치인지" 찬반 논쟁까지 벌어졌습니다.

■ "교실 안이 38도"…학교는 더 심각

프랑스의 한 학교 건물에 ‘교실 온도 35도, 너무 덥다. 조속히 시설을 개선하라(공사하라)

프랑스 교육 현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실외 기온은 40도에 육박하고 교실 내부 온도는 38도 가까이 오르면서 학교 건물 전체가 거대한 찜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는 폭염으로 초·중학교 약 2천 곳이 전면 또는 부분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마저 부족한 것은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부모들의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교육청과 학교의 대응이 지나치게 늦고 미흡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파리 근교 이블린주의 한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 학교에 여러 대의 선풍기와 분무 기능이 있는 호스를 지원했습니다.
이 학교의 한 학부모는 "시청에서 선풍기를 주문했다고 했지만 4~5일이 지나도록 배송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교실 온도는 35도까지 치솟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이미 폭염이 있었는데 공공기관의 사전 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시청이 보내준 건 "탁상용 선풍기 3대뿐"

프랑스 서부 낭트시에서는 학부모들이 유치원 창문에 직접 백색 차광제를 칠해 햇빛을 차단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학부모 단체 '학교 온도 35도'의 회원인 아멜리 르 프로보스트 씨는 "부모들 대부분이 매우 화가 난 상태"라며 "수년 전부터 학교에 선풍기와 차양 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낭트의 모든 학교에 서한을 보냈고 창문에 흰색 차광제를 칠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프랑스 낭트시의 한 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직접 창문에 백색 차광제를 바르고 있다. (사진 출처: 르파리지앵)

반면 파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선풍기를 기부하려 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거절했습니다. 안전 문제와 노후 전기설비 용량 부족을 이유로 시청이 제공하지 않은 전자기기를 학교에 반입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돼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우리가 시청에 요청한 것은 벽이나 천장에 설치하는 대형 선풍기와 외부 차양 시설이었지만 시청이 보내온 것은 탁상용 선풍기 세 대뿐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파리시는 뒤늦게 학교용 에어컨 1,200대 이상을 긴급 주문했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150대를 공급한 뒤 주말까지 학교마다 최소 1대씩 보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천장형 선풍기 설치도 추진 중입니다. 과거에는 외부 차양 셔터와 야간 환기만으로도 충분했던 프랑스의 여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40도 안팎의 폭염이 반복되면서 프랑스 사회는 이제 '에어컨 없는 여름'의 한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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